제 1부: 희랍 철학
우리는 서구 사상사의 역사를 다룸에 있어 희랍을 시작으로 하지 않을수 없다. 희랍이 철학의 시발점이 아닐수 있어도, 희랍에서 움튼 사상들은 서구 사상의 근간가 되었고, 희랍은 서구 철학의 뿌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 1. 희랍 식민지의 철학
1 |역사적 전통
희랍 식민지대의 철학적 사료들은, 온전한 모습으로 전해저 내려오는 것이 거의 없고, 오직 전해 내려오는 학설*traditon과 인용, 타자에 의한 묘사에만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자세히 다룰수 없다.
2 |밀레토스 학파
- 탈레스 (640~550 B. C.)
- 아낙시만드로스 (610~540 B. C.)
- 아낙시메데스 (540 B. C.에 성년)
- 크세노파시스 (580~ 540 B. C.)
/ 탈레스
탈레스는 물이 만물의 원리라고 주장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전해져 내려오진 않지만. 그는 거의 최초로 세상의 구조에 대해 신화적인 관점을 빌리지 않고 설명하려 노력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
/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만드로스는 세상이 궁극적 실체의 한 양상인 불, 물, 땅, 공기에 의해 구성되었고, 이들은 확산하며 서로를 억누르며 세상을 구성하고, 결코 고정되어있지 않은 이들 세상은 계속 생멸을 반복한다고 주장했다. 아낙사만드로스는 우주관에 대해 자세한 구상을 떠올렸는다. 그에 따르면, 원통형의 지구를 무게에 따라 물과 공기와 불이 감싸고 있는데, 불이 물을 증발시켜 안개가 나타났고, 안개가 지구를 둘러싸 거대한 바퀴로 감싸 하늘이 되었고, 이 틈 사이로 보이는 불의 형상이 별과 태양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한 이 원통형 우주가 아름다운 수적 비율로 이뤄져있다고 주장했다.
/ 아낙시메데스
아낙시메데스는 아낙시만드로스보다 좀 더 정적인, 세계에 대한 설명을 제시했다. 그가 말하기를 세상은 공기로 이루어져있고, 공기의 농축화작용으로 흙과 물이, 희박화 작용으로 불이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별과 태양, 달은 공기에 고정되어있는, 희박한 공기라고 설명했다.
/ 크세노파노스
크세노파노스는 위에서 제시된 자연주의 학설들을 이용, 헤희랍 문화권 전역에 널리 퍼진다신교적 사상을 공격했다. 그는 '크레토스인에게는 크레토스인 신이 있다면 신이 있겠냐'며 의인적 신관을 부정했다.
3 |피타고라스
- 피타고라스( 580~ 550 B. C.)
4 |헤라클레이토스
5 |엘레아 학파
6 |다원론자
총평: 과학적 전통
□ 2. 아테네의 철학
1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히피아스
-프로디코스
-트라시마코스
-이소크라테스
아테네가 전성기를 맞이했을 즈음에는, 그러니까 페리클레스의 시대에서는, 세계 곳곳에서 야심찬 지식인들이 아테네로 몰려들었고, 여러 학파와 다양한 사상이 움텄다. 그러한 군중 속에 소피스트라 불리는 일파가 있었다. 소피스트들은 스스로를 지자라 부르며, 보수을 받고 수사법과, 정치학, 정치적으로 성공하는데 필요한 모든 술책을 알려주겠노라 호언장담했다. 지금에 와서는 소피스트라는 말이 지적 허영, 수사학적 허식, 천박성과 도덕적 불성실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기존 자연 중심의 철학을 인간 중심의 철학으로 옮겨놓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건 자명하다.
/ 프로타고라스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라는 말로 유명한 프로타고라스는 감각적으로 느껴지는것이야 말로 실재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어느 사람에게 실재하는것이 어느 사람에겐 실재하지 않을수 있음을 제시하며, 따라서 하나의 실재를 부정하며 실재의 상대성을 내포하는 말이고, 사람의 수 만큼의 실재의 수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고르기아스
/ 트라시마코스
정의는 강자에게 복종한다고 말한 트라시마코스는 어쩌구
2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469~339 B.C.)
소크라테스는 아무런 저술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 대해 판단할때에 그의 제자와 친구ㅡ플라톤, 아리스토파네스와 크세노폰ㅡ이 남긴 기록에 의존할수밖에 없다. 또한 플라톤이 남긴 저작중 어느정도가 소크라테스에 대한 것이고 어디까지가 그 자신의 사상에 대한것인지 판별하기가 쉽지않다.
소크라테스는 기존의 우주론적 사색에서 벗어나 인간에 눈길을 돌렸다는 점에서는 소피스트와 유사하다. 그는 자신의 무지를 고백했으나, 그것은 소피스트처럼 회의에 의한 상대주의나 주관주의에 의한것은 아니었으며, 지식과 어떤 판단에 대해서의 차이를 명확히 인지하였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도덕설에 있어 특히 소피스트와 구분된다. 그는 어떠한 보편적인것이 존재하고 있다고
믿었다. 또한 그는 감각적인것과 보편적인것을 구분하였고, 감각적인건 정의내릴수 없지만 감각할수 있으나. 보편적인것은 감각할수 없지만, 정의내릴수 있다고 하였다.
도덕적인 문제는 보편적인것의 문제이므로, 소크라테스는 도덕적인 인식에 있어서 감각을 경시하고 이성을 중시했다.
그는 ㅎ
그가 서구의 모든 철학의 시조라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의 별명처럼, 소크라테스는 서구 정신문명의 탄생을 도운 산파라 해도 틀린말이 아니겠다.
산파술, 정의에 관심, 회의주의?
3 |플라톤
-플라톤
플라톤은 다른 그리스 학자들과 다르게 그 자신의 철학에 대한 저술을 논문의 형식으로 남기지 않았는데, 이는 그가 철학은 논술되어질수 있는것이 아니라. 어떠한 교류와 대화를 통해서만 전해질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대화편>을 통해 그 자신의 사상을 드러냈는데, 결론을 드러내지 않는 전기의 대화편은 소크라테스의 사상이고. 후기의 대화편은 그 자신의 사상을 담았다고 보는것이 지배적이다.
*덕
플라톤은 많은 분야에 걸쳐 사상적 족적을 남겼지만, 그가 가장 골몰한 분야는 윤리학의 문제였다, 특히 인간이 살수 있는 가장 훌룡한 삶이란 무엇인지 알고자 하였다. 그는 인간의 가장 훌룡한 상태를 그저 악의 결여나 결백이 아니라, 그가 가진 잠재적 모습의 탁월한 발현, 그러니까 적극적 탁월성의 성취와 모든 능력의 이상적인 드러남으로 설명했고, 그러한 상태를 덕arete이라고 불렀다.
플라톤은 덕의 의미를 부연해서 설명했다, 인간의 천성은 유덕하지도 악하지도 않은것이고, 어느 것도 특별히 악하거나 선하지 않은것이라서, 어느것도 우위를 점해서는 안되고, 악이라고 비난해서도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덕의 성취를 위해서는 인간의 모든 능력을 총체적으로 발전시키고 통일적이고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 이들의 조화를 맞춤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플라톤은 기존에 만연하던 인식을 거부하여, 외부의 권위, 종교적인 규율이나 법과 관습등에 존중을 표하나, 그들은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도덕의 기준이 될수 없고, 그것이 예속되는 표준(standard)에 근거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본성을 고찰함에 있어 플라톤은 놀라운 유추법을 사용했는데, 그에 따르면, 도시국가는 "하늘을 배경으로 하고 확대된" 하나의 인간이나 다름 없으며, 그것이 인간보다 거대한 탓에 관찰하기 용이하며, 사회적 계급과 그에 맞는 교육, 계급에 맞는 특유한 덕과 전체로서의 국가에 유익한 덕들은 인간의 훌룡한 상태를 관찰하기에 적합하기때문에 윤리학과 정치학은 크게 다르지 않고 말했다.
플라톤은 국가를 생산자와 수호자, 통치자로 이뤄져있다고 보았으며 이들 계급은 각각의 특유한 덕을 가지고, 이는 사람의 네가지 덕에 대응된다
지혜는 통치자의 덕이며 궁극적이며 포괄적인 목적에 대한 지식이요 이상적 가치와 완전한 탁월성에 대한 지식이다.
용기는 수호자의 덕이고 용맹뿐만 아니라 향락에의 탐닉을 거부하고, 고통과 두려움을 떨쳐내는 것을 포함한다.
절재는 모두에게 필요한 독이며 균형의 원리요 타인을 존중하고 자신의 존엄성을 존중하는등 모든 활동에 있어서의 훌룡한 감식력이다.
정의(dike)는 이 모든 덕이 모두 발현어 이루는 절정의 것이며, 모든 덕이 스스로의 직분에 충실하였을때 생기는 미묘한 성질이라 보았다.
플라톤은 덕을 관념적으로는 구분할수 있어도 실제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절제 없는 용기는 도발적인 만용에 불과하며 용기없는 절제는 형편없는 평범함에 불과하고, 용기와 절제는 지혜없이 존재할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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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어려운 책은 아녔지만 대충 소화해서 써놓으니까 기억에도 잘남고 이해도 잘됨,
그런데 시간 좆같이 오래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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