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는 완전한 농본주의 + 유교 사회라 생산물 거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자급자족 가내수공업 위주라 경제자체가 거의 없는수준이었다고 보면됨 그래서 애초에 자본주의 공산주의 논의 자체가 불가능함
익명(211.220)2022-03-26 17:29:00
조선은 시장 열어달라고 하면 차라리 이거먹고 떨어져! 했을 정도로 상업 극혐한건 맞는데 그거랑 비교해서 고려가 자본주의정도로 차이나진 않는듯. 중앙집권이 좀 덜된 조선 느낌
익명(211.59)2022-03-26 17:32:00
고려시대가 조선시대보다 상업이 발달했을거라 생각하는거 자체가 병신같은 국사교육이 만든 편견이다. 생산력, 잉여 생산품이 조선이 월등하게 높은데 무슨. 걍 수도 중심으로 고려 지배층(문벌, 사원, 향리)이 사치를 열심히 했던거임
sksk(dnjsxordl9887)2022-03-26 17:38:00
답글
그리고 고려의 상업은 중국시장에 종속된 형태였음. 송과 무역할땐 송의 은으로 교역하고, 원의 속국된 다음엔 교초 무역하다 팍스 몽골리카 붕괴하면서 국가가 거덜나버림. 위에 유동새끼들은 조선시대 경제사 개론서라도 좀 찾아읽고 와라
sksk(dnjsxordl9887)2022-03-26 17: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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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무역자체가 거의 없는 수준이었고 시장도 안열리는 나라였는데 무슨ㅋㅋ
익명(211.220)2022-03-26 17: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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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선후기 제외하고 고려보다 생산력, 잉여 생산품이 높았다는 자료좀 보여주라
익명(211.220)2022-03-26 17: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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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대부분의 중세경제사 연구자들이 말기에야 인구 500만따리, 연근해 지대는 아직 제대로 개간도 못했고 촌락이 산악지대에 형성되어 있었을 확률이 높은 고려시대 생산성을 대단히 낮게 평가함. 대표적으로 농업사 연구자 위은숙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고려는 말기나 가서야 농민 4인가족 자급자족이 가능해졌음. 이거 때문에 고려시대 정치, 경제사 연구자들은 고려시대 가족제도를 대가족으로 추정함. 고려시대엔 인구와 경작지 부터가 월등히 적었고 대규모 인력을 통한 개간이 가능해진게 고려 후기 권문세족 등장 이후라서 생산성이 높을 수가 없음
sksk(dnjsxordl9887)2022-03-26 17: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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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데 인구 낮은게 생산성이 낮은거랑 무슨관계임? 생산량이 낮은거겠지 그리고 조선은 철저한 농본주의 사회인데 쌀 생산량이 높은건 당연한거 아님? 애초에 조선이란 나라는 반찬도 없이 밥그릇에 쌀밥만 3공기 분량으로 퍼먹고 살던 나라였음
익명(211.220)2022-03-26 17: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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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인구의 절반이 노비였고 일부 양반 계층만 공부하고 방구석에서 실없는 소리나 하고살던 나라가 조선이였음
익명(211.220)2022-03-26 18: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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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과 인구와 잉여생산물의 관계도 모르면서 상업이 어쩌고 저쩌고 논하고 있었단말야. 조선도 고려도 심지어 에도시대 일본도 철저한 농본주의 사회야. 이 무식한 새끼야. 상업이 발달하려면 자유시장에 흘러가는 잉여생산물이 많아야 하는데 조선은 고려보다 생산물은 훨씬 많았지만 이걸 재분배에 활용했기 때문에 대동법으로 지방재정을 일신하기 전까지는 자유시장에 흘러가는 잉여생산물에 제한이 걸려 있었던거고 고려는 딱 안죽을 정도로 수취한 생산물을 상류층 고급문화와 사치에 활용하니 사치품 수요를 위한 교역이 발달해서 얼핏 더 활발해 보이는거고. 하지만 전체 생산력이 조선보다 훨씬 미약하니 중국에 철저히 종속된 형태로 가다가 원의 교초 체제가 흔들릴때 나라 곳간도 같이 거덜났고
sksk(dnjsxordl9887)2022-03-26 18: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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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무인정권+대몽 항쟁 30년 거치면서 파탄 국가화 되었는데, 망하기 직전에도 20만 대군을 운용해서 홍건적을 격파하는 등의 모습을 보면 기본적으로는 조선보다 훨씬 부유하긴 했던 거 같은데..... 농업 생산량 면에서는 조선과 비교할 수 없었겠지만, 뭔가 돈줄이 있었을 거라고 보는 게 타당할 거라 생각함. 대송 무역 관련 연구들을 보면 신라 시대부터 서해안에 무역을 통해 성장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세력이 많이 관찰되는 데 반해, 무역 자체에 대한 기록은 남은 게 없어서 구체적인 연구는 힘든 실정이라고 알고 있음. 그냥 자료가 없음.
익명(61.72)2022-03-26 18: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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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노비 진짜. 일일히 대답해주기도 지친다 진짜. 조선시대 양반은 잔반 나부랭이 아닌 이상 남자든 여자든 농업경영, 회계, 인력 관리 등 방대한 경제적 능력을 필수적으로 갖춰서 경제활동 했고, 조선시대 노비는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증감이 달라지는데 연산군이 개판쳐 놓는 바람에 16세기에 늘었다가 17세기 이후로 작개제에서 병작제로 바뀌면서 계속 감소하는 추세였고, 고려시대에 노비가 적은건 천민 평민 구분없이 똑같이 향리 밑에서 쥐어짜서 굳이 늘이고 말고 할 필요가 없었다
sksk(dnjsxordl9887)2022-03-26 18: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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븅신련이 조선은 애초에 분업사회가 아니어서 인구가 생산성과 상관관계를 가지지 못하는데 떠들고있노 그리고 거의 모든 동양의 국가들이 농업생산이 주였지만 고려는 그정도가 조선보다 훨씬 덜했고 농업이 아닌 수공업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마을도 여러군데 있었고 무역이나 시장활성화, 군사력도 조선보다 훨씬 뛰어났다 병신새끼야
익명(211.220)2022-03-26 18: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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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군? 걍 지역마다 원수 파병해서 징발하고, 지역 하나 통째로 떼주고, 대농장주들 제한없이 풀어주고, 사병 인정해주면 조선도 충분히 나온다. 그게 풍족한 나라일까? 고려사보면 최영이 양광도는 내 관할이라고 발끈한 기록이 나옴, 동북면은 이성계 관할이었고. 국가에서 걍 기득권층에 개간사업 핑계로 땅 다 떼주고 사병 인정해주니 그 대농장주들이 사병 끌고 와서 모인게 그 대병력. 당연한 말이지만 백성들에 대한 보호장치는 단 하나도 없음
sksk(dnjsxordl9887)2022-03-26 18: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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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조선은 소작농이 대부분에 조선후기 부정부패 때문에 백성개개인의 착취는 훨씬 심했는데 뭔소리하노
익명(211.220)2022-03-26 18: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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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는 구체적인 무역 관련 자료가 빈약하므로 추정을 할 수밖에 없는데 중기에 20만 대군으로 여진 정벌을 하는 등의 모습을 보면 고려가 뭔가 농업 외에 상당한 돈줄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합당한 추측일 것이라고 봄. 중기에는 대농장 이런 것도 없었다며? 20만으로 대외 원정을 가서 보급하고 성 쌓고 전쟁을 하고 이런 정도의 경제력은 조선이 전성기에도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이잖음. 선조도 왜란 전에 조선의 가난함을 한탄하면서 고려 때 어떻게 20만 병력을 운용할 수 있었는지 놀라워했다는 기록마저 있는데 뭔가 돈줄이 있었을 거라는 추론 자체는 합당하다고 봄.
익명(61.72)2022-03-26 18: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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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기적으로 농사짓는 백성들 끌고와서 군대 근무시키고 삼지창같은 개좇같은 장비에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다털린 병신군대보다 고려가 훨씬 효율적인 시스템 같은데?
익명(211.220)2022-03-26 18: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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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조선은 인구절반 노비나 백성이나 양반 할거없이 전부 가난하고 큰전쟁에서 한번도 제대로 못싸운 개좇그지병신 국가였어ㅋㅋㅋ 그만 부정해
익명(211.220)2022-03-26 18: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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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렇게 살아서 내수경제와 무역이 활성화 되고 백성들도 경제적으로 활발히 활동해서 부유한 나라가 된 건데 북조선 개새끼들이 자본주의 땜에 대한민국 망했다는 잠꼬대 하는 소릴 쳐하고 있냐 에혀ㅜ 전주이씨 탈레반 씹새끼들 진짜 전부 잡아다가 사지를 찢어버리든가 해야지ㅉㅉ
ㅎㅎ(175.223)2022-04-05 14: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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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말하기를, 고려(高麗) 때에는 밥을 먹이는 중[僧]이 3만 명이었으니, 당시에[고려]는 나라가 부유(富裕)해서 그렇게 했던가? 지금이야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성종실록 67권, 성종 7년 5월 12일 갑인 5번째기사』
"천하에 어찌 이처럼 가난한 나라(조선)가 있겠는가. 흡사 여염의 궁핍한 집과 같아 하나의 진보(鎭堡)를 경영하기도 이처럼 쉽지 않다. 내가 보건대 전조(고려)에는 매우 부유하였는데 우리 나라는 어째서 이처럼 가난한 지 알 수가 없다. 산에는 나무만 있고 물에는 돌만 있을 뿐이라서 중원(中原)에 비하면 1도(道)에도 미치지 못한다. 중원의 1도는 극히 부성(富盛)하여 우리 나라의 물력으로는 미칠 수가 없다. 왜국 역시 우리 나라처럼 가난하지는 않다"《선조실록》
ㅎㅎ(175.223)2022-04-05 14: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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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이 개만도 못한 탈레반 찌꺼기 새끼 캬악 퉤
ㅎㅎ(175.223)2022-04-05 14:44:00
역스퍼거 시끠들 역시 뭐만 나오면 물고뜯고ㅋㅋ 철스퍼거랑 역스퍼거 보는재미로 온다ㅋㅋ
oo(218.232)2022-03-26 18:11:00
다른 건 차치하고서라도 조선은 사실 문화적, 정신적 측면에서만 해도 최악의 시대였지. 조선 미감은 정말 최악. 유교적 합리주의를 위해 이전까지의 문화 예술적 성취를 다 날려버렸지.
어떤 곳에서의 담론인지 물어봐도 돼? 순수한 궁금증임 비꼬는 게 아니라
븅신새끼ㅋㅋ
조선시대는 완전한 농본주의 + 유교 사회라 생산물 거래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자급자족 가내수공업 위주라 경제자체가 거의 없는수준이었다고 보면됨 그래서 애초에 자본주의 공산주의 논의 자체가 불가능함
조선은 시장 열어달라고 하면 차라리 이거먹고 떨어져! 했을 정도로 상업 극혐한건 맞는데 그거랑 비교해서 고려가 자본주의정도로 차이나진 않는듯. 중앙집권이 좀 덜된 조선 느낌
고려시대가 조선시대보다 상업이 발달했을거라 생각하는거 자체가 병신같은 국사교육이 만든 편견이다. 생산력, 잉여 생산품이 조선이 월등하게 높은데 무슨. 걍 수도 중심으로 고려 지배층(문벌, 사원, 향리)이 사치를 열심히 했던거임
그리고 고려의 상업은 중국시장에 종속된 형태였음. 송과 무역할땐 송의 은으로 교역하고, 원의 속국된 다음엔 교초 무역하다 팍스 몽골리카 붕괴하면서 국가가 거덜나버림. 위에 유동새끼들은 조선시대 경제사 개론서라도 좀 찾아읽고 와라
조선은 무역자체가 거의 없는 수준이었고 시장도 안열리는 나라였는데 무슨ㅋㅋ
그리고 조선후기 제외하고 고려보다 생산력, 잉여 생산품이 높았다는 자료좀 보여주라
거의 대부분의 중세경제사 연구자들이 말기에야 인구 500만따리, 연근해 지대는 아직 제대로 개간도 못했고 촌락이 산악지대에 형성되어 있었을 확률이 높은 고려시대 생산성을 대단히 낮게 평가함. 대표적으로 농업사 연구자 위은숙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고려는 말기나 가서야 농민 4인가족 자급자족이 가능해졌음. 이거 때문에 고려시대 정치, 경제사 연구자들은 고려시대 가족제도를 대가족으로 추정함. 고려시대엔 인구와 경작지 부터가 월등히 적었고 대규모 인력을 통한 개간이 가능해진게 고려 후기 권문세족 등장 이후라서 생산성이 높을 수가 없음
미안한데 인구 낮은게 생산성이 낮은거랑 무슨관계임? 생산량이 낮은거겠지 그리고 조선은 철저한 농본주의 사회인데 쌀 생산량이 높은건 당연한거 아님? 애초에 조선이란 나라는 반찬도 없이 밥그릇에 쌀밥만 3공기 분량으로 퍼먹고 살던 나라였음
그리고 인구의 절반이 노비였고 일부 양반 계층만 공부하고 방구석에서 실없는 소리나 하고살던 나라가 조선이였음
상업과 인구와 잉여생산물의 관계도 모르면서 상업이 어쩌고 저쩌고 논하고 있었단말야. 조선도 고려도 심지어 에도시대 일본도 철저한 농본주의 사회야. 이 무식한 새끼야. 상업이 발달하려면 자유시장에 흘러가는 잉여생산물이 많아야 하는데 조선은 고려보다 생산물은 훨씬 많았지만 이걸 재분배에 활용했기 때문에 대동법으로 지방재정을 일신하기 전까지는 자유시장에 흘러가는 잉여생산물에 제한이 걸려 있었던거고 고려는 딱 안죽을 정도로 수취한 생산물을 상류층 고급문화와 사치에 활용하니 사치품 수요를 위한 교역이 발달해서 얼핏 더 활발해 보이는거고. 하지만 전체 생산력이 조선보다 훨씬 미약하니 중국에 철저히 종속된 형태로 가다가 원의 교초 체제가 흔들릴때 나라 곳간도 같이 거덜났고
고려는 무인정권+대몽 항쟁 30년 거치면서 파탄 국가화 되었는데, 망하기 직전에도 20만 대군을 운용해서 홍건적을 격파하는 등의 모습을 보면 기본적으로는 조선보다 훨씬 부유하긴 했던 거 같은데..... 농업 생산량 면에서는 조선과 비교할 수 없었겠지만, 뭔가 돈줄이 있었을 거라고 보는 게 타당할 거라 생각함. 대송 무역 관련 연구들을 보면 신라 시대부터 서해안에 무역을 통해 성장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세력이 많이 관찰되는 데 반해, 무역 자체에 대한 기록은 남은 게 없어서 구체적인 연구는 힘든 실정이라고 알고 있음. 그냥 자료가 없음.
그놈의 노비 진짜. 일일히 대답해주기도 지친다 진짜. 조선시대 양반은 잔반 나부랭이 아닌 이상 남자든 여자든 농업경영, 회계, 인력 관리 등 방대한 경제적 능력을 필수적으로 갖춰서 경제활동 했고, 조선시대 노비는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증감이 달라지는데 연산군이 개판쳐 놓는 바람에 16세기에 늘었다가 17세기 이후로 작개제에서 병작제로 바뀌면서 계속 감소하는 추세였고, 고려시대에 노비가 적은건 천민 평민 구분없이 똑같이 향리 밑에서 쥐어짜서 굳이 늘이고 말고 할 필요가 없었다
븅신련이 조선은 애초에 분업사회가 아니어서 인구가 생산성과 상관관계를 가지지 못하는데 떠들고있노 그리고 거의 모든 동양의 국가들이 농업생산이 주였지만 고려는 그정도가 조선보다 훨씬 덜했고 농업이 아닌 수공업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마을도 여러군데 있었고 무역이나 시장활성화, 군사력도 조선보다 훨씬 뛰어났다 병신새끼야
그 대군? 걍 지역마다 원수 파병해서 징발하고, 지역 하나 통째로 떼주고, 대농장주들 제한없이 풀어주고, 사병 인정해주면 조선도 충분히 나온다. 그게 풍족한 나라일까? 고려사보면 최영이 양광도는 내 관할이라고 발끈한 기록이 나옴, 동북면은 이성계 관할이었고. 국가에서 걍 기득권층에 개간사업 핑계로 땅 다 떼주고 사병 인정해주니 그 대농장주들이 사병 끌고 와서 모인게 그 대병력. 당연한 말이지만 백성들에 대한 보호장치는 단 하나도 없음
그리고 조선은 소작농이 대부분에 조선후기 부정부패 때문에 백성개개인의 착취는 훨씬 심했는데 뭔소리하노
남아 있는 구체적인 무역 관련 자료가 빈약하므로 추정을 할 수밖에 없는데 중기에 20만 대군으로 여진 정벌을 하는 등의 모습을 보면 고려가 뭔가 농업 외에 상당한 돈줄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합당한 추측일 것이라고 봄. 중기에는 대농장 이런 것도 없었다며? 20만으로 대외 원정을 가서 보급하고 성 쌓고 전쟁을 하고 이런 정도의 경제력은 조선이 전성기에도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이잖음. 선조도 왜란 전에 조선의 가난함을 한탄하면서 고려 때 어떻게 20만 병력을 운용할 수 있었는지 놀라워했다는 기록마저 있는데 뭔가 돈줄이 있었을 거라는 추론 자체는 합당하다고 봄.
그리고 주기적으로 농사짓는 백성들 끌고와서 군대 근무시키고 삼지창같은 개좇같은 장비에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다털린 병신군대보다 고려가 훨씬 효율적인 시스템 같은데?
그냥 조선은 인구절반 노비나 백성이나 양반 할거없이 전부 가난하고 큰전쟁에서 한번도 제대로 못싸운 개좇그지병신 국가였어ㅋㅋㅋ 그만 부정해
) 저렇게 살아서 내수경제와 무역이 활성화 되고 백성들도 경제적으로 활발히 활동해서 부유한 나라가 된 건데 북조선 개새끼들이 자본주의 땜에 대한민국 망했다는 잠꼬대 하는 소릴 쳐하고 있냐 에혀ㅜ 전주이씨 탈레반 씹새끼들 진짜 전부 잡아다가 사지를 찢어버리든가 해야지ㅉㅉ
"임금이 말하기를, 고려(高麗) 때에는 밥을 먹이는 중[僧]이 3만 명이었으니, 당시에[고려]는 나라가 부유(富裕)해서 그렇게 했던가? 지금이야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성종실록 67권, 성종 7년 5월 12일 갑인 5번째기사』 "천하에 어찌 이처럼 가난한 나라(조선)가 있겠는가. 흡사 여염의 궁핍한 집과 같아 하나의 진보(鎭堡)를 경영하기도 이처럼 쉽지 않다. 내가 보건대 전조(고려)에는 매우 부유하였는데 우리 나라는 어째서 이처럼 가난한 지 알 수가 없다. 산에는 나무만 있고 물에는 돌만 있을 뿐이라서 중원(中原)에 비하면 1도(道)에도 미치지 못한다. 중원의 1도는 극히 부성(富盛)하여 우리 나라의 물력으로는 미칠 수가 없다. 왜국 역시 우리 나라처럼 가난하지는 않다"《선조실록》
어휴 이 개만도 못한 탈레반 찌꺼기 새끼 캬악 퉤
역스퍼거 시끠들 역시 뭐만 나오면 물고뜯고ㅋㅋ 철스퍼거랑 역스퍼거 보는재미로 온다ㅋㅋ
다른 건 차치하고서라도 조선은 사실 문화적, 정신적 측면에서만 해도 최악의 시대였지. 조선 미감은 정말 최악. 유교적 합리주의를 위해 이전까지의 문화 예술적 성취를 다 날려버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