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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의 진로』는 우선 민주정치가 해방 이후 조선에 정착되어야 할 올바른 정치형태임을 밝히며, 시작한다. 그러면서 많은 공산주의자들이 조선 혁명의 현 단계에 대한 논쟁을 벌이지만, 조선의 현 상태를 서양 공산주의 이론의 도식에 맞추기는 어렵다면서, 조선을 ‘프로 민주주의 단계’로 규정할 것을 제안한다..







백남운은 이후에 ‘연합성 신민주주의론’을 제창하면서 독립된 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민족주의 세력과의 연합이 필요하다고 약설하며, 좌익과 우익이 협력할 것을 주문한다. 그 연장선으로 미·소 공위의 의미 있는 진전을 바라고 있다. 그 후 중국이 1차 국공합작 후 23년 만에야 당시 합의했던 이념을 실현하고자 한다며, ‘연합성 신민주주의론’의 역사성을 설명한다.



이후 백남운은 민주경제의 중요성을 밝히며, 민주경제 없는 민주정치란 성립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백남운은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 민족주의가 조선에서 태동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왕조가 붕괴한 이후의 일이며, 백남운 본인은 민족주의의 정치이념을 아직 조선의 민족주의자들에게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백남운 자신은 ‘외적 민족주의’ 백남운이 말하는 ‘내적 민족주의’란 외래 자본주의의 공세에 따른 수세 테세와 국내 자주독립의 의지가 고조되어, 봉건적 신분과 제한을 철폐한 민족국가가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고취되었는데, 이를 ‘내적 민족주의’라고 한다.




의 정치이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1. 지배국가의 압박을 배제하고 정치적으로 자주적인 독립국가를 건설함.”


“2. 그 정치형태는 광무(光武)년 동안의 내적 민족주의와는 달라서 자유민주주의의 대표국가인 미국식의 정권형태를 취하려는 것이다.”


“3. 후진사회인만큼 주체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실현하려는 의욕이 사회해방의 노력보다도 훨씬 농후하다. 따라서 계급대립의 관계를 민족통일의 개념으로 포섭하려는 것이다.”


“4. 전통적인 문화를 비판적으로 섭취하기보다는 그 민족문화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것이며, 사회문화의 창건을 기도하기보다도 국수적인 국민문화를 강화하려는 것이다.”








백남운은 이어서 공산주의의 정치이념에 대해 설명한다. 백남운에 따르면 공산주의 정치이념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자본주의 국가는 형식상 법률국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계급국가이기에 이를 계급투쟁으로 극복하고, 자본독재 정권을 노동독쟈 정권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2. 그 정치형태는 프로 민주주의의 유일한 대표국가인 소련식의 정권형태를 표준삼는 것이다.”


3. “생산수단의 사유제를 원칙적으로 공유제로 개편하고 원칙적으로 공동생산하여 그 생산물의 처분권은 인격적 평등 분배의 원칙하에서 부등성(不等性)의 노력에 따라 분배하는 공동경제 체제를 수립하자는 것”


“4. 사회적 생산력이 역사발전의 동력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사회경제적 성격이 도덕적 문화의 형태의 특질을 규정한다는 원칙하에, 자본주의 문화 대신 사회주의 문화를 건설하자는 것”








백남운은 다음에서는 민족주의와 공산주의가 연합할 수 있는 요소로서 민주주의, 민족해방, 민주경제의 요소 등을 예시로 들고 있다. 민주경제의 역사적 필연성을 강조한 백남운은 이후, 문화적으로 일신할 필요를 논하고 있다. 기존의 전통문화 요소인 삼강오륜은 지배계급과 양반계급을 위한 문화였다고 밝히며, 이 같은 전통문화 요소를 지켜나가면서도 모든 인민을 위한 ‘민주문화’와 ‘민주도덕’으로 모든 인민을 위해 자리잡아야 된다고 주장하며 『조선민족의 진로』를 마치고 있다.




『조선민족의 진로·재론』은 『조선민족의 진로』의 내용을 보충한 것으로, 『조선민족의 진로』 출판 1년 후에 백남운이 당시(1947년)의 정세에 대해 논한 것이 주요 냐용이다. 백남운은 당시의 언론지향이 너무 편향되었음을 지적하며 『조선민족의 진로·재론』을 시작한다. 당시 명목상으로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반공여론만이 허용되는 당시의 언론 지형을 비판하였다.


그리고 정치인들이 표면적인 공론 대신 민중들의 ‘숙덕공론’을 청취할 것을 강조한다. 또한 숙덕공론의 보장과 청취를 위해 보통선거를 법제화하고, 이를 위한 선결조건으로 언론집회, 또는 교통의 자유와 선전의 자유를 허용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후 두 장에 걸쳐 히틀러를 비롯한 파쇼 일당을 비판한 후, 현재 조선에도 조선의 정치를 파쇼정치로 이끌어가려는 반동세력이 있음을 경고한다. 이후 백남운은 현재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 봉건시대 당쟁과는 본질적으로 다름을 설명하면서




“당시 당쟁은 역사발전의 방향을 규정하는 실천과는 전연 몰간섭이었으나, 오늘날의 좌우정당 대립은 해방조선의 사회적 성격과 역사적 성격을 규정하려는 실천과 결부되는 것”




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에는 조선민족의 진로는 민족이 주체적으로 조선민족의 진로를 개척하여야 하며, 일반적 민주주의인 공산주의만이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어서 백남운은 경제발전의 형태로 자본주의적 요소를 이용한 계획경제, 백남운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산성이 부여된 민주주의 즉, 저선성 민주주의를 통해 경제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백남운은 미·소 공위의 속개를 바라면서, ‘즉시 자주독립’을 위한 5원칙을 밝히면서 『재론』을 마치고 있다. 5원칙은 다음과 같다.




“1. 방공용(防共用)의 경제원조를 거부하는 동시에 인민을 위한 민주경제의 건설에 전용할 경제원조를 요청할 것.”


“2. 물자운용은 인민대표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 결의에 의거하고, 내외 독점자본의 ‘카르텔’ 혹은 ‘트러스트’ 형태를 절대로 배제하여 ‘경제적 지배제’의 이식을 거부할 것.”


“3. 정권을 구성할 때는 친일파, 민족반역자 등의 일련의 불순 반동분자를 제외할 것.”“4. 반민주적인 각종 테러단체는 해체할 것.”


5. “미·소 양군은 즉시 철퇴할 것”






3. 『조선민족의 진로· 재론』에서 도출 가능한 요소




백남운의 ‘연합성 신민주주의’에 대한 분석




백남운은 『진로』에서 ‘연합성 민주주의’에 대해 거론하고 있다. ‘연합성 민주주의’는 『진로』를 관통하는 핵심 정치이념이라 할 수 있다. 백남운은 ‘연합성 신민주주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연합성 신민주주의’는 조선사회의 혁명적 세력에 의거한 좌우익의 정치적 연합의 가능성을 규정한 것이다.”





해당 부분만 살펴보자면 백남운은 단순히 좌익과 우익의 합작만을 언급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를 분석하면 ‘연합성 신민주주의’가 단순히 좌익과 우익의 연합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백남운은 해방 이후 건설될 신국가가 민주정치, 민주경제, 민주문화, 민주도덕을 골자로 하는 민주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하여 민족주의적 자산가계급과도 연합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


게다가 백남운은 기존의 민주주의 형태들(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마오쩌둥의 신민주주의)를 망라하여 전후 세계는 민주주의가 역사적 발전의 정치적 범주가 되었음을 강조하면서, 이를 ‘민주주의의 국제성’이라 표현하였다.


그러나 백남운은 이러한 민주주의 형태가 민족의 특수성에 맞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조선 민족의 특수성에 맞는 새로운 민주주의 정치형태로 ‘연합성 신민주주의’를 주장했던 것이다.




‘연합성 신민주주의’의 정치형태의 중요한 특징은 ‘전위정당’을 설정하지 않은 것이다. 원래 공산주의 혁명 이론에서 전위정당(공산당)이 차지하는 역할을 고려해본다면 ‘연합성 신민주주의론’은 일반적인 공산주의 정치이론과 구별되는 정치이론임을 알 수 있다. 백남운이 전위정당을 설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자본가들의 정당 또한 인정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는 백남운이 공산당 일당독재를 부정하고, 대의적 정당정치의 길을 긍정하였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즉 백남운의 ‘연합성 신민주주의론’ 에서 자본가 계급은 새로운 민주국가 건설을 위해 협력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백남운은 자본가 계급을 협력의 대상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백남운이 생각하는 신국가의 경제체제는 사회주의를 모델로 했다. 백남운은 『진로』에서




“민주경제의 요지는 생산력 담당자에게 생산력을 발휘하도록 생산수단을 부여하는 것이며 생산수단의 재분배로써 갱생의 민족경제를 수립하려는 것이다.” .






그러나 백남운이 말하는 민주경제가 유산계급을 완전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백남운은 『제론』에서 ‘자산성 민주주의’를 거론하며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을 한다.




“자본주의 경제를 전체적으로 육성하는 것이 아니고, 자본주의적 요소를 이용하는 것이다. 동시에, 계획경제의 원칙하에 민주경제의 비약적 발전을 촉성하는 의미에서, 어느 산업 부문의 종별에 따라 여러 형태의 기업가를 보호육성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백남운은 민주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계획경제 체제 하에도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민주문화와 민주도덕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공론의 중시와 보통선거의 긍정, 전통적 도덕에 대한 평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살펴보았다시피, 백남운은 조선 민중의 진정한 공론인 숙덕공론을 중시한다. 또한 이를 위해 언론집회의 자유와 이에 기반한 보통선거를 주장한다.


앞서 살펴본 ‘민주정치’와 ‘민주경제’의 내용을 고려해본다면, 백남운이 말하는 언론자유는 좌익이나 우익, 어느 한쪽에 편향된 ‘명목상의 언론자유’가 아니라 정치이념에 상관없이 누구나 공론을 형성하고 이에 대한 토론이 가능한 ‘진정한 의미의 언론자유’라고 추정할 수 있다.


백남운은 봉건시대의 전통도덕인 삼강오륜에 대하여 ‘지배도덕’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동시에 ‘민주도덕’은 이러한 전통도덕의 기반 위에 뿌리내려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서 그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전통적 도덕요소에 대해 설명하였는데, 대표적으로 백남운이 말하는 ‘진정한 민주주의 시대의 인(仁)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1. 타인에 대한 착취를 부정하는 것”


“2. 생산자로서의 근로대중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


“3. 금수초목을 포함하여 인간과 민족과 생산자를 사랑하는 것” 






이상의 사례를 살펴보면, 백남운이 봉건적 도덕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면서도, 이것이 민족적으로 내려온 도덕관습이기에 부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민족의 진로· 재론』전반에 걸쳐 백남운은 민족을 중요시하고 있다. 결국 ‘연합성 신민주주의론’에는 조선 민족이 힘을 합쳐 단일민족 신(新)국가를 건설하기를 바라는 그의 열망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를 실현하기 위해 백남운은 ‘민족’을 계급투쟁보다 우선순위에 두었다. 이는 전통적 공산주의 혁명이론을 통해 신(新)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박헌영과 대비되는 점이다.




박헌영의 『8월 테제』와의 비교




박헌영은 해방 직후 『8월 테제』를 발표하여 조선공산당의 정치 노선을 정립하였다. 『8월 테제』는 전반적으로 공산주의의 혁명단계를 충실히 이행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박헌영은 “금일 조선은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의 계단을 걸어가고 있다.”


라고 주장한다. 이는 박헌영이 이후 프롤레타리아 혁명 단계까지 도달하여 조선에서의 혁명을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반면 백남운은 공산혁명의 단계에 대하여 『조선민족의 진로· 재론』에서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자본가 계급과 우익정당에 대해서도 『8월 테제』에서는 “송진우와 김성수를 중심으로 한 한국민주당은 반동적 정당이다.”


고 하며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지만, 백남운은 민주경제의 달성을 위해서는 자본가 육성을 주장했을 정도로 자본가 계급에 대하여 유화적이었다. 또한 앞서 살펴본 것처럼 우익정당을 정치적 연합의 대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조선민족의 진로· 재론』과 『8월 테제』와의 차이점은 결국 전통적 공산주의 사상과 백남운 사상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학문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권위자라 할 수 있는 백남운이 전통적 마르크스주의 국가건설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국가건설론을 주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여러 논의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