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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세와 우리의 임무」 제1장은 2차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일본제국주의의 붕괴로 조선의 독립은 실현되었고, 거기에는 미·영·중·소 4개국 연합국의 역할이 컸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는 세계정세적 입장에서의 승리였을 뿐 조선 민족이 이 과정에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며, 조선 내에 혁명 세력이 약해 투쟁이 효과적이지 않음을 지적한다. 하지만 노동자와 농민 등은 진보적 민주주의국가의 건설을 희망하지만, 친일파들은 반동적 민주주의국가의 건설을 원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2장은 조선 혁명의 현 단계에 대해 설명한다. 박헌영에 따르면 당시(1945년) 조선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단계를 걷고 있으며, 시급한 것은 토지개혁이다. 이를 위해 친일민족반역자와 대지주의 토지는 무상으로 몰수하며 소작농이나 자영농이지만 토지 소유가 적은 자들에게 분배하며, 중소지주의 경우에도 자경하는 토지를 제외하고는 몰수한다. 모든 토지의 국유화가 최종 목표이다. 이외에도 언론과 출판 문제, 양성평등 문제가 제2장에서 거론되나 핵심 과제는 토지개혁이다.




제3장은 조선 공산주의 운동의 현상과 그 결점에 대해 다루고 있다. 박헌영은 그동안의 조선 공산주의 운동은 일제의 방해로 인해 지하 활동이 주력이었고, 특히 전쟁 시기에는 더욱 잔혹한 방법으로 조선 공산주의 운동은 점점 더 지하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중적이고 전투적인 운동 조직을 만들고 이러한 조직들의 대표자 회의를 통해 지도기관을 만든 후 인민들과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 앞으로의 조선 공산주의 운동의 올바른 진행 방향이자 목표라는 것이다.




제4장은 3장과 연결되는 내용으로 조선의 공산주의 운동은 앞으로 단결하여 운동의 추진력을 높여야 하며, 이를 위한 여러 운동의 세부적 진행 방향을 설명해 놓았다.




제5장은 조선에서의 혁명이 더 높은 방향으로 전개하는 문제에 대한 박헌영의 생각을 서술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박헌영은 조선의 완전독립과 토지개혁이 시작 단계인데도 최익한 일파와 이를 지지하는 동지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단계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 단계로 도입했다고 주장하며, 이 같은 주장은 큰 착각일 뿐이라며 그들을 비판한다.


이어 당시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의 연합정부 구성을 예시로 들며, 더 높은 혁명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민족적 통일전선의 수립이 중요함을 역설하며 「현 정세와 우리의 임무」는 끝을 맺는다.




당시 박헌영의 대미(美) 인식


「현 정세와 우리의 임무」에서 첫 번째로 살펴볼 부분은 ‘당시 박헌영의 대미 인식에 대한 문제’이다. 비록 해당 글이 해방 직후에 채택되었기에 박헌영의 대미 인식을 완벽히 파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1945년 9월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대외 정세가 급박히 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정세와 우리의 임무」에서 보여주고 있는 박헌영의 대외 인식은 박헌영이란 인물이 해방 이후의 조선공산당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임을 감안한다면 당시 조공의 대미 인식이라고도 볼 수 있기에 이를 알아보는 것은 중요하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박헌영은 글의 첫 부분에서 연합국 4개국에 의해 진보적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는 당시 연합국을 이끌었던 미국 역시 포함되어 있다. 이는 미국에 대한 당시 박헌영의 인식이 긍정적이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긍정적 인식을 보여야 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당시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을 감안해야 했으며, 따라서 미국과 대립하여서는 안 되며, 미국과 협조·협력이 한국독립의 밑거름이 된다는 전략적 판단이 서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박헌영은 테제 발표 이후 1945년 10월 30일 기자회견 이후의 질의응답에서 조선공산당이 원칙적으로 협력해야 함을 밝히기도 했으며, 11월 15일에도 미군 사령관 하지 중장과의 두 번째 회담에서도 미군정이 잘못된 행위를 하게 될 때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미군정의 통치에 조선공산당이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는 박헌영이 광복 직후의 시점에서는 미군정에 대해 협력하는 현실적 태도를 보였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고, 「현 정세와 우리의 임무」에는 이러한 박헌영의 대미 인식이 드러나 있는 것이다.


토지개혁 문제


토지개혁은 해방 이후 좌익 세력의 주요 의제 중 하나였다. 그래서 박헌영 역시 해당 글에서 토지 개혁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그러나 토지 개혁에 있어서 8월 20일에 발표된 초안의 입장과의 비교는 여러 논제를 도출할 수 있는 요소이다.

8월 20일 초안의 경우, 토지 개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 대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하여 토지 없는 농민들에게 분배하여야 한다.”



8월에 발표된 초안에서는 대지주의 토지만 몰수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9월에 발표된 「현 정세와 우리의 임무」에서는 중소지주의 토지까지 몰수하는 것으로 좀 더 급진적인 정책 같지만 제4장에서 농민 운동의 세부 지침을 밝히면서


“소작료를 삼할 개 칠할로 인하하고, 이것을 화폐지대로 정할 것이요. 소작관계에 있어 봉건적 잔재를 일소하자.”


라고 명시한 것을 볼 때, 박헌영 자신도 급진적인 토지 몰수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음을 인정했음을 알 수 있다. 앞서 박헌영이 미군정에 협력하려는 의지를 보였음을 연결해 생각한다면 토지 개혁에 대한 다소 현실적 입장을 보이는 이유도 추정이 가능하다. 자본주의 체제의 국가설립을 목표로 하는 미군정이 조공의 급진적 토지 몰수에 의한 개혁을 허용할 리가 없기에 급진적 토지 개혁을 실행하려 했다간 미군정과의 갈등이 깊어질 수밖에 없고, 박헌영과 조공 세력을 정치적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8월에 발표한 글에 비해 토지 몰수의 범위가 늘어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이유는 「현 정세와 우리의 임무」가 소책자로 출판되어 대중에게 공개된 것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박헌영은 후일 조선공산당의 강력한 지지 세력이 될 수 있는 소작농들에게 토지 개혁의 구체적 대상을 공개하여 민심을 얻고자 한 것이다. 거기에 박헌영은 3장에서 공산주의 운동이 대중과 괴리됨을 현 조선 공산주의 운동의 문제점으로 꼽았기에 더더욱 소작농들의 민심을 잡을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종합적으로, 「현 정세와 우리의 임무」의 토지 개혁 대상과 방법이 8월 초안과 다른 것은 미군정과의 관계와 소작농들의 지지를 생각해야 하는 박헌영과 조선공산당의 입장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민족주의 진영에 대한 인식


「현 정세와 우리의 임무」에서는 해방 직후 박헌영이 민족주의 진영을 어떻게 봐왔는지도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박헌영은 제5장에서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의 연합정권을 언급하며, 아직 조선에서 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이 완수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박헌영, 위의 책, 43~44쪽.

박헌영의 이 같은 입장은 민족주의 진영에 대해 유화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2장에서 송진우와 김성수가 중심이 된 한국민주당을 ‘반동적 정당’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는 것을 볼 때, 5장에서의 유화적인 문구는 통합정부 구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단 문광석이 지적했듯이, 당시 인공이나 평남 확대위원회 결정문에는 민족부르주아지를 그처럼 강하게 비판하는 내용이 없었다는 점은 박헌영의 강도 높은 비판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한다. 박헌영은 해방 직후만 하더라도 미군정에 협력할 생각을 하고 있었고, 한국민주당은 조선공산당보다 친미(親美) 정당이었기 때문이다.


종합적으로 박헌영의 현 정세와 우리의 임무는 공산주의 혁명 방식을 따를 것을 천명하고 있으면서도, 당시의 혼란한 정세와 조선공산당의 상황에 맞춰 조선공산당의 향후 정치 노선을 정한 글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