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지야 또는 조지아 라고 불리는 나라가 있습니다.
역대급 학살자였던 독재자 - (그러면서 예술 애호가였던) 스탈린의 고향입니다.
소비에트 정부는 초기에 조금 희한했는데, 조지아 출신의 스탈린 & 우크라이나 출신의 흐루시초프가 집권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고향에 눈길을 주기보다는 소비에트 연방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 역시 분명한 팩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2020년대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조지아)를 침공하고 전쟁이 발발하는 근본 원인을 찾아들어가면,
그 씨앗을 스탈린과 흐루시초프가 뿌려놓았다는 것도 역시나 팩트입니다 -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동네에서 태어난 가장 유명한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시인 블라드미르 마야꼬프스끼이고,
본래 미술을 전공했던 그는 이후 문학으로 바꾸어서 '미래파'라고 하는 미술사조에서 시작한 문학 운동을 벌입니다.
그가 쓴 [미쓰쩨리야 부프]와 같은 희곡은 포스트 홀로코스트를 다루는 SF 시조에 해당하는 작품이기도 해서,
(전반적인 내용이 미래소년 코난을 연상하게 만드는 전 세계가 바다에 잠긴 대이변 이후 이야기입니다)
SF 여명기에 등장한 여러 유럽 작가들의 List에 마야꼬프스끼의 이름이 나오기도 합니다.
문제는... 하필이면 그루지야(조지아) 출신인 스탈린이 소비에트 연방 자체를 모두 장악하였다는 것입니다.
스탈린은 본래 시인으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문학청년 출신이었고, 골수 공산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시를 무척 좋아했고 (더 나아가 잘 쓸 줄도 알았고) 같은 동향 출신의 시인 마야꼬프스끼도 잘 알고 있었죠.
스탈린이 각별히 좋아했던 예술가로 손꼽히는 사람이라면 쇼스타코비치와 미하일 불가꼬프가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미하일 불가꼬프가 [개의 심장] 등의 SF를 통하여 아예 대 놓고 스탈린을 공격하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은 불가꼬프의 작품들을 높게 평가하였고 개인적으로 작가를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불가꼬프의 장편 [백위군]을 희곡으로 각색한 [뜨루빈가의 나날] 공연을 6번이나 보러 갔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고,
불가꼬프의 작품이 판금 조치가 되자 스탈린이 직접 전화를 걸어 극장 무대감독 자리를 주선해주기도 했습니다.
마야꼬프스끼는 사상적으로 스탈린과 마찬가지로 '골수 공산주의자'였고 그의 문학은 프로파간다 그 자체였습니다.
- 그가 쓴 SF라는 작품들도 공산주의 찬양에 대한 프로파간다가 너무 심해서, 이 따위가 그 전설의 작품인가 싶을 정도죠.
마야꼬프스끼는 동시대에 활약하면서 공산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순문학 작가) 미하일 불가꼬프를 무척 싫어했고,
희곡 [목욕탕]에서 대놓고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 이건 겉으로는 이데올로기 때문이었고, 실은 질투라는 설도 있습니다.
스탈린을 공격하는 작품을 쓰고 있는데도 한 없이 불가꼬프에게 너그럽게 대하는 스탈린의 모습을 보면서,
스탈린과 같은 동향 사람으로 같은 시기에 시인으로 출발했던 마야꼬프스끼가 불가꼬프에게 질투심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마야꼬프스끼는 그루지야 - 조지아 출신 답게 모스크바 등에서도 활동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 지내는 날도 많았는데,
이러한 마야꼬프스끼를 좋다고 졸졸 따라다닌 스토커같은 청년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였습니다.
훗날 [닥터 지바고]라는 (무척 서사적이고 아름답고) 소비에트 혁명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의 책을 쓰게 되는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피아노를 전공하던 청년 시절 (공산당 프로파간다로 가득찬) 마야꼬프스끼의 문학에 감동하여 음악을 포기하고 그루지야로 쫓아갑니다.
그리고 상당기간 그루지야(조지아)에 눌러 앉아 살면서 (마야꼬프스끼에게 개인적으로 문학을 사사받으며) 시를 쓰기 시작하였고,
더 나아가 그루지야(조지아) 언어로 쓰여진 좋은 시들을 발굴하여 이를 러시아어로 번역하여서는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하였습니다.
그리고 (본래 그루지야에서 태어난 시인 출신의) 스탈린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러시아어로 번역한 [그루지야 명시선]을 읽게 되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에 대해서도 크나큰 호의를 품게 되었죠 - 쇼스타코비치, 불가꼬프와 마찬가지였던 겁니다.
우리 예술을 사랑하는 강철의 사나이 스탈린은, (자신이 좋아하는 몇몇 예술가를 제외하면)
러시아 혁명이나 소비에트의 볼쇼비키 정부에 반대 의견을 눈꼽만큼이라도 비춘 예술가에 대해서는
그들을 잡아서 가차없이 처형하거나, 수용소 수감 및 강제노동을 시키거나, (관용적으로) 추방을 실행하였습니다.
푸쉬킨, 고골리, 도스토예프스끼, 톨스토이, 체홉으로 이어진 세계 최고의 압도적인 레벨이었던 러시아 문학의 맥은
스탈린이라는 시인 출신의 독재자 단 한 사람의 손에 의해 산산히 부서져서 철저히 탄압되어 사라져 버립니다.
스탈린의 무자비한 칼날이 번뜩이던 시절,
1) 그와 동향이었던 마야꼬프스끼는 자살을 선택합니다.
- 그는 평생 동안 프로파간다 문학으로 공산주의 선전에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 정치적 스탠스가 조금만 삐끗해도 숙청되어 버리던 초강경 독재의 시대에, 불행하게도 스탈린의 노여움을 샀습니다.
- 본래 불같은 성격으로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다 말하고 써내던 마야꼬프스끼의 스타일이 화를 불렀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2) 마야꼬프스끼를 졸졸 따라다니다가 시인이 된 파스테르나크는 침묵을 선택합니다.
- 스탈린에게 불려가서 독대하면서 (살려둘지) 면접을 보았는데, 말길을 못알아 듣는 얼간이 연기를 해서 살아남았다는 설도 있습니다.
- 스탈린은 파스테르나크가 번역한 [그루지야 명시선]을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어차피 살려둘 생각이었다는 설도 타당해 보입니다.
- 스탈린이 세상을 떠난 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닥터 지바고]를 써내어 세상을 놀라게 했고, 노벨상 수상자로 지목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닥터 지바고]는 소련(러시아) 땅에서의 공식 출간은 1980년대 고르바초프 집권기에 이르러 겨우 허가되었습니다.
3) 미하일 불가꼬프는 작품 발표가 막혔고, 열심히 써도 공개할 방법이 없어서 침묵을 강요당합니다.
- 스탈린이 그를 좋아한다는 것을 세상이 다 알고 있어서 목숨은 부지했지만, 그럼에도 지독한 탄압을 받습니다.
- 의욕과 건강을 잃어가면서도 최후의 대작이자 러시아 포스트모던의 대표작, 러시아 팬터지의 정점을 써냅니다.
- 생전에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지만 정부를 적대하는 (조금 요령이 없는) B+ 또는 A- 레벨의 작가 정도로 취급되었지만,
1980년대 고르바초프 시절 유작 [거장과 마르가리타]가 공개된 이후 20세기 최대 러시아 작가의 레벨로 격상됩니다.
[Summary]
- 스탈린은 시인 출신으로 예술 애호가였지만, 공산당 독재를 위해 (위대한) 러시아 문학의 전통을 박살냄
- 스탈린과 같이 골수 공산주의자로 그와 길을 갔던 동향 출신의 마야꼬프스끼는 그의 노여움을 사서 자살함
- 스탈린과 소비에트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던 불가꼬프는 스탈린이 좋아하여 살아남았고, 불멸의 걸작을 남김
- 스탈린의 고향의 시를 모아 번역한 덕분에 살아남은 파스테르나크는, 스탈린 시대의 어둠을 예술로 승화시킨 걸작을 남김
푸틴의 우크라이나, 조지아 침공을 보면서, 스탈린의 재래를 느끼고 있습니다.
푸틴 시대의 예술가들은 어찌 지내고 있을지, 지금 러시아에 창작의 자유는 존재하는 것인지,
그를 비판하면 마야꼬프스끼처럼 자살로 내몰리거나, 처형되거나, 감금되거나, 추방되는 것인지, 또는 독차 한 잔을 받는 것인지,
그리고 스탈린 사후 그 시대에 고통받았던 예술가들이 불멸의 걸작을 남겼듯이 푸틴 시대의 어둠이 앞으로 어떤 예술로 승화될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족]
1980년대 고르바초프 시대에 이르러서야 러시아어로 완전한 모습의 책이 처음 출간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와 미하일 불가꼬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가치를 깨닫고,
이 두 작품을 한국에서 가장 먼저 러시아어 직역으로 번역 출간한 사람은 고려대학교 박형규 교수였습니다.
그런데 이 두 작품의 번역은 잊혀지고, 주로 '톨스토이 전문 번역자'로 알려지고 있는 것 역시 아이러니입니다.
스탈린이 못조진 유일한 예술가가 고리키뿐이라던데 진짠진 모르겟슴
고리키도 암살 썰이 많음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를 보면, 고리키 부인이 미망인이 되어서도 여전한 남편의 영향을 활용하여 사람들을 지옥에서 구해 준 이야기가 한 없이 많이 나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