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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글은 추잡스럽다. 혹자가 <밤 끝>을 좀 더 지독한 <호밀밭의 파수꾼>이라고 평했던 것 같은데, 그 말이 틀리지 않으면서도 조금 더 가야 한다고 본다. <밤 끝>은 2차 대전과 나치즘 이후로 유럽이 저 그늘진 구석으로 밀어 격리시켜놔야만 했던 그 시대의 광기 어린 냉소다. 이 추잡스러운 현실을 뜯어가면서 계속 나아가는 저 손가락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하고 생각하던 이들이 기겁하며 다시 덮어버려야 했던 지적이다. 화자가 조금씩 미쳐가며 온갖 것들에게 던지는 비난을 조금씩 듣다보면, 그 방향의 끝에 나치즘 역시 있을 수 있다는 걸 현대의 누구라도 눈치챌 수 있을 테다.
처음에는 그저 가벼운 냉소로 시작했다. 젊은이라면 가질 수 있는 태도 정도로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충동적으로 입대한 이후 그 냉소는 훨씬 더 지독해지고, 점점 더 비틀어진다. 죽음에 대한 공포 뿐만은 아니고, 군대에 다녀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그 당혹스러울 정도로 자신을 소홀히 대하는 체계와 말 그대로 자신을 낭비하는 데에 있어서 어떠한 부담도 느끼지 않는 상급자들의 밑에서 화자에게 현실은 자신이 지켜야 할 뭔가가 아닌 좀 더 머나먼 무언가로 조금씩 멀어져간다. 자신을 포함한 도피성 병사들을 다시 전장으로 보내려는 저 의사들, 간호사들을 보며 자신의 죽음의 완전한 무가치성을 이해해야만 한다고 마음 속으로 열변을 토하며.
군대에서 탈영한 이후 어떻게든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보기 위해 아프리카로도 가보지만, 오히려 그곳에서 열병과 고질적인 부패와 무체계를 만나고 다시 한 번 비틀린 그가 프랑스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함께 하고 싶지는 않은 사람으로 완전히 변해 있었다. 의사 공부를 다시 시작해 마무리할 수는 있었지만, 그 뒤에도 그의 생활이 딱히 잘 풀리지는 않았고, 오히려 돈을 덜 받고 나름대로 베풀면서도 바로 그런 이유로 홀대를 당하며 추잡스러운 범죄 따위에 계속 휘말리고, 그 속에서 그는 늘 도망친다. 쾌재를 부르며. 그러다가 밤이면 밤마다 자신이 왜 그랬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제목의 <밤>이란 아마 삶 그 자체를 칭하는 단어일 테다. 이 끔찍한 삶 속에서 무슨 의미라고 할 만한 것이 있냐고 말하듯 지은 제목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얼마나 있을까? 그것도 이 책의 내용이 기실 저자의 삶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추측해낸 사람이라면. 아마 "점잖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 책을 치워버리고 싶어서 안달이 났을 테다. 예나 지금이나 그렇고, 지금은 시간이 흐르며 이에 어느 정도 성공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허나 이 무례하고 추잡스러우면서도 솔직한 책에는 기괴한 생동력이 있어, 화자가 그저 너무 비비 꼬인 것일 뿐이다, 하고 가볍게 넘기고 던져버리지는 못할 묘한 매력이 서술에서 슬쩍 드러났다가 다시 사라지곤 한다. 너무 나아갔다, 하고 혀를 차려다가, 또 그렇지만은 않은가, 하고 멈추게 되는 식으로.
아쉬운 점은 이 책이 20년 전에 나온 번역을 수정 하나 없이 그대로 가져와 다시 낸 것이라 그런지, 여러 가지로 눈에 밟히는 부분이 많다. 꽤나 긴 주석을 굳이 각주나 미주로 처리하지 않은 것도 그렇고, 외국어 표기에 있어서 기실 한국에서 이미 다른 표기법으로 통용되는 단어들도 전부 발음 그대로 번역해놓은 것이나, 잡다한 오탈자 등등. 심지어 문장이 한 번 반복된 경우도 있었는데, 혹시 원문 그대로일까 싶어서 이에 대해 더 말은 못하겠다. (실제로 원문에서도 문장이 누락되고 단어 하나만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고 주석이 달렸으니...)
이것으로 셀린의 책을 두 권 정도 봤으니, <외상 죽음>(아마 <밤 끝>처럼 기존 번역으로라도 다시 한 번 나올 수 있지 않을까?)이나 <노르망스> 역시 기회가 되면 읽어보고 싶다. 충분히 매력적인 작가다.
이보다 나치에서 멀수가 있나싶은데
시작이 군대와 애국심에 대한 환멸이었던 걸 감안하면 괴상하긴 한데 그 쉼없는 부동과 냉소의 근본이 뭔지 생각하면... 나치즘 역시 그 종착지 중 하나로 뻔하다고 봄
<노르망스>는 피네간 같은 작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