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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녀는 한국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카자흐스탄 여대생인데



아버지가 고려인 후손이라 어렸을 때부터 한국 문화에 많은 관심이 있었고(한국어는 거의 못 하심),



한국에 와서 근대 소설들을 읽으면서 한국어를 익히다 보니, 문체가 여대생답지 않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 것 같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 작가들은 이상, 김유정이다.



그런데 외국인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한국인들은 유달리 모더니즘 문학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본녀는 이런 경향이 있는 것은 어째서일까? 하고 의문을 가져 왔는데,



대체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그 원인들을 열거해볼 수 있을 것 같다.






1. 첫 번째 이유 - 한국 문학의 뿌리가 모더니즘에 있기 때문.



- 한국 문학의 기원은 크게 보아 모더니즘과 근대적 리얼리즘으로 나뉘는데, 사실 한국의 근대적 리얼리즘 역시 큰 테두리에서 모더니즘의 한 갈래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해방 전 한국의 리얼리즘은 근대를 언어, 배경, 주제, 소재, 기법 등의 원천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물론 본격적인 모더니스트들의 작품보다는 덜 모던하지만,



대체로 매우 모던하다(전근대적 전통과의 폭력적이고 공허한 단절의 영향이 안팎에서 표출된다는 점에서 특히 모던하다).



일례로 시인 백석은 흔히 모더니스트들과 대척점에 있는 "리얼리즘 시인"으로 생각되지만,



약간 더 깊이 들여다보면 백석은 이미지즘 등을 매우 급진적으로 이용한 모더니스트였고, 실제로 백석의 모더니즘적 추구는 당대에 퇴폐적이라는 강한 비난을 받기도 했다고 알고 있다.



<백석은 서구 이미지즘의 미학적 전통을 이어받고 있지만, 단순히 그것을 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창조적으로 발전시켰다....... 백석은 다양한 기법상의 실험으로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백석이 사용한 이미지 자체는 전근대적인 것이지만, 이미지를 다루는 기법은 근대적인 것이다.> - 전봉관, "백석 시의 모더니티" 중



그러므로 한국 문학의 뿌리는 이중적으로 모던하다고 할 수 있다.



- 근대적 언어와 기법을 추구하기에 능동적으로 모던하며, 전근대적 전통과 파국적으로 단절되어 있기에 불가피하게 모던하다.






2. 두 번째 이유 - "근대화"라는 것 자체가 한국인들에게 일종의 강박관념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



조선 왕조가 자력으로 근대화에 실패한 결과 식민지가 되었던 역사를 가진 한국인들에게, "근대화"라는 개념은 매우 강박적인 것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인들의 정신 세계에서 흔히 전통(특히 조선적인 모든 전통)은 부정적인 것으로, '근대화'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표상된다.



근대화에 대한 이러한 의식적, 무의식적 강박을 바탕으로, 모더니즘 문학 역시 이전의 문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매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일까?



그래서 독일인들이 황금기 고전 문학을 기준으로 판단하듯이, 한국인들은 모더니즘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 것일까?





3. 세 번째 이유 - 그냥 전 세계적으로 모더니즘 예술이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



모더니즘 예술의 '역사적 역할'과 '개성의 폭발'에 대한 업적은 전 세계적으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다.



말하자면 인상파 전시회에서 어머니가 어린애에게 가르쳐주듯이, '인상파 이전에는 화가들이 어떤 법칙에 따라 그려야 했다면, 인상파 화가들은 역사상 최초로 자기들만의 법칙을 창조하기 시작했다......"는 식의 가치 평가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본녀는 몇 년 전 루브르 박물관을 구경한 일이 있는데,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인상파 이전 화가들의 전시실은 비교적 한산한 반면에, 인상파 컬렉션은 엄청난 인기를 끌어 관람객들로 꽉 차 있었다.



모로 미술관의 안내원 분과 잠깐 얘기를 해보기도 했었는데, 그분은 모든 사람들이 인상파에만 관심이 있고, 모로 미술관은 관광객들이 거의 찾지 않는 곳이라고 쓸쓸하게 이야기했다.





결론으로, 본녀는 이렇게 느꼈다. 한국의 문학 교육은, 단지 모더니즘만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떤 한계가 있는 것이라고.



한국의 문학 교육에 근본적으로 요구되는 과제는 모더니즘이라는 자기의 뿌리를 넘어서, 자기 모더니즘의 뿌리의 뿌리를 탐구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그럴 수 있다면 매우 놀라운 것들이 발견될 것이다.



홍명희 속에서 발자크와 톨스토이가 발견될 것이며,



백석 속에서 제임스 조이스와 엘리엇이 발견될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한국 문학의 더 깊은, 보다 근본적인 뿌리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한계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Европа без филологии — даже не Америка, это — цивилизованная Сахара, проклятая Богом, мерзость запустения. По-прежнему будут стоять европейские кремли и акрополи, готические города, соборы, похожие на леса, и куполообразные сферические храмы, но люди будут смотреть на них, не понимая их, с бессмысленным испугом недоуменно спрашивая, какая сила их возвела и какая кровь течет в жилах окружающей их мощной архитектуры.

문헌학 없는 유럽이란 - 심지어 미국조차 못 되며; 이것은 - 신에 의해 저주받은 문명의 사하라, 황폐함이 불러일으키는 혐오이다. 숲을 닮은, 유럽의 성채들과 아크로폴리스, 고딕 도시들, 대성당들, 그리고 둥근 궁륭 모양의 구형 사원들은 앞으로도 이전처럼 서 있을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것들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그것들을 바라볼 것이고, 부조리한 공포에 사로잡혀 어리둥절하여, 어떤 힘이 그것들을 세웠으며, 어떤 피가 그것들을 휘감은 강력한 건축술의 혈관들을 따라 흐르고 있는가를 질문하리라.


(만델쉬탐, 번역은 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