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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핫한 SF작가 스타니스와프 렘의 대표적인 SF 소설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다.
그동안 국내에선 2008년에 나온 폴란드어->프랑스어->영어->한국어를 거친 오멜라스판 중역본이 최신 판본이었는데 이마저도 절판된 후 한때 중고가가 10만 원 넘게 치솟는 걸 보기도 했다.
그 구하기 힘들던 솔라리스가 저자 스타니스와프 렘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민음사에 의해 다시 재출간된 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번엔 폴란드어 원전을 그대로 한국어로 번역한 직역본이어서 출간 소식이 들렸던 작년부터 독갤에서도 기대가 컸다. 나는 솔라리스의 전자책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4월 1일에 전자책으로 출간되자마자 바로 구입했다.
인류가 우주에 진출한 미래, 우주 변방에서 발견된 솔라리스라는 행성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일들을 다룬다. 솔라리스는 점액질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 점액질 바다가 지구의 바다와는 다르게 인간의 접촉에 움찔거리며 반응하기도 하고, 표면에서 끊임없이 어떤 기괴한 형태를 만들어냈다 소멸시키는 등, 단순한 점액질 덩어리로 보기엔 범상치 않은 행동을 보인다. 이 행성의 바다는 마치 지능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솔라리스의 점액질 바다 표면에 나타나는 다양한 형성체들의 모습. 책 속의 텍스트 묘사만으론 이해하기 힘들어 구글링해가며 찾아본 이미지들이다. 이해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솔라리스는 이 미지의 바다와 인류와의 접촉을 그린 퍼스트 콘택트(외계 문명과 인류와의 첫 접촉) 소설이다. 퍼스트 콘택트는 SF의 단골 소재로, 이를 소재로 한 SF 소설은 매우 흔하다. 하지만 저자는 특유의 재능과 상상력으로 진부한 클리셰를 거부하며 솔라리스를 독창적이고 유니크한 소설로 탄생시켰다. 저자는 '의인화'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외계인을 '바다'로 설정했다고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든 머릿속에서만 꿈꿔봤던 은밀한 생각들이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누군가와 섹스를 하고 싶다는 내밀한 성적 소망이 가장 흔할 것이고, 오래전 사별한 연인과 다시 만나고 싶다는 소망일 수도 있다. 개인이 머릿속에서 어떤 상상을 하든, 이것은 자유로우며 제한받지 않는다. 남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머릿속에 들어가 캐볼수도 없으니까.
그러나 솔라리스에선 달랐다. 머릿속에서만 상상하던 것들이 물질로 실체화되어 현실로 찾아온다. 달리 말하면 인간에게 가장 비밀스런 공간이던 머릿속 생각조차 더 이상 남에게 숨길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이들을 '손님'이라고 부른다.
솔라리스의 바다가 창조했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이 불가사의한 '손님'들은 불멸의 육체를 가지고 있고 솔라리스의 바다에 어느 정도 통제당하고 있지만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정신적으로는 인간과 완전히 똑같은 모습을 보인다.
자살한 옛 연인인 하레이를 늘 그리워하던 주인공 켈빈에게는 죽은 하레이가 그 시절 그대로의 모습으로 찾아왔고 죽은 사람이 되살아날 리 없기에 주인공은 이 '손님'들의 존재에 혼란스러워하며 공포를 느낀다.
다른 등장인물인 사르토리우스나 스나우트에겐 솔라리스의 창조물이 치욕적이고 부끄러운 존재여서 이들을 숨기려 애쓰고 없애려고 한다. 작중에서 구체적으로 묘사되진 않으나 사르토리우스의 경우 손님이 발가벗은 아동의 형태로 나타난 것 같은데 이를 통해 추측건대 사르토리우스는 아동성애자인 듯싶다. 스나우트의 손님에 대해선 작중에서 아예 묘사되지 않지만 숨기려고 애쓰는 걸 보면 그의 손님 역시 떳떳한 존재는 아닌 게 분명하다.
'손님'들이 등장하기까지 책의 초반부는 음산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매우 인상적이다. 주인공을 비롯한 작중 등장인물들은 '손님'의 존재에 당혹해하며 끊임없이 묻는다. 솔라리스의 바다는 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인가? 독자의 입장에서도 솔라리스의 바다가 보여주는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야~ 이렇게까지 하나?", "피드백도 없는데 이 바다는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지?" 하며 읽었다.
그게 저자의 의도대로였다. 저자는 솔라리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 우리 인간은 인간이 아닌 존재를 이해할 수 없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인간은 자꾸만 지구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현상을 이해하려 한다. 하지만 지구와의 접점이 전혀 없는 비인간적 유기체(심지어 유기체인지조차 확실치 않다)인 솔라리스의 바다와 마주쳤을 때 인간이 이를 이해하려는 모든 경험적 시도는 무의미하게 되었다. 저자는 작중 인물의 입을 빌려 오감에 의존하는 인간의 생리학적 한계와 약점 때문에 인간과 인간이 아닌 문명과의 접촉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주인공 켈빈은 눈앞의 하레이의 존재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하레이와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점차 하레이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고 스스로도 갈팡질팡하게 되는데 다음과 같은 독백으로 그 고뇌를 표현한다.
"내 속에는 나 자신도 모르는 생각과 의도와 희망, 그리고 때로는 잔인하고, 때로는 훌륭하고, 또한 때로는 치명적인 바람들이 도사리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내부에 있는 어두운 구석이나 미로, 막다른 골목, 깊은 우물, 그리고 굳게 닫힌 시커먼 문들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세계, 다른 문명과 접촉하기 위해 머나먼 행성까지 진출하고야 말았다."
이를 통해 저자는 인간이 다른 문명은 물론이고 인간 자기 자신의 깊은 내면, 즉 잠재의식조차도 명백하게 인식하기 어렵다며 인간 인지능력의 한계를 꼬집고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을 비판한다.
아직까지 외계 생명체를 만나보지 못한 우리로선 지구 밖 생명체가 어떻게 생겼을지조차 짐작할 수조차 없다. 미디어에 흔히 나오는 인간형의 난쟁이 그레이 외계인들조차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의 결과물이다. 외계 생명체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을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며 실제 외계 생명체는 솔라리스의 바다보다 더 난해한 형태일 수도 있다. 이런 고정관념을 버리지 않는 이상 미래의 인류는 솔라리스의 등장인물들처럼 외계 생명체와 조우하더라도 그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스타워즈에서처럼 여러 문명이 공존하는 우주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나같은 SF팬에겐 암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디 훗날 인류는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만큼 성숙하여 서로 소통할 방법을 찾아내길 바랄 뿐이다.
주인공 일행이 겪는 불가사의한 사건 이야기 외에도 솔라리스를 탐구한 역사를 설명하는 부분은 매우 흥미로웠다. 소설 전체 분량의 1/3 정도가 솔라리스의 바다에 대한 설정과 이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이야기이다.
솔라리스의 바다가 저자가 창조해낸 가상의 존재이긴 하지만 그 설정이 상당히 구체적이었고, 학자들이 온갖 과학적 연구 방법을 동원해 솔라리스를 탐사하는 모습과 솔라리스의 바다에 대한 접근법이 바뀌어가는 모습은 꽤나 현실적이어서 한 편의 과학사 연대기를 읽는 느낌이었다. 또한 솔라리스의 바다가 보여주는 다양한 형성체들의 명칭에 한자 번역문과 외래어 고유명사가 동시에 사용된 걸 보면서 이걸 번역한 번역자의 고민 역시 상당했을 것임이 느껴졌다.
하지만 반중력 기술을 사용하면서 광속을 넘어 이동하는 능력을 갖추고 우주 이곳저곳에 식민지를 구축한 인류가 아직도 연필과 종이, 모스부호, 암실에서 현상하는 셀룰로이드 필름 등 아날로그 방식의 구식 기술들을 사용하는 모순은 좀 아쉬웠다. 인류가 아직 우주에 나가보지도 못한 60년대 초반에 쓰인 소설이니 시대적 배경은 어느 정도 감안하고 읽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이런 60년대 감성이 작중의 공포 분위기를 살리는 데는 도움을 줬다고 생각한다.
책 말미에는 솔라리스의 폴란드어 원전을 최초로 한국어로 직역한 번역자 최성은 교수의 말이 실렸다. 이 책에 담긴 수많은 의미들을 되새기며 강조하고 있으며, 솔라리스를 번역하면서 "위대한 작가의 위대한 문장들 앞에서 텍스트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오랜만에 매우 기분 좋게 읽은 명작이었다.
책을 덮으며 내가 솔라리스에 간다면 내게 찾아오는 손님은 과연 어떤 형태일지 가볍게 생각해 보았다. 내가 평소 강하게 열망하는 대상은 누구일까?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의 주인공 험버트라면 당연히 돌로레스의 모습으로 찾아올 것이다.
나도 한때는 누군가를 강렬히 열망하기도 했었지만 지금의 나는 딱히 누군가를 마음속 깊이 열망하진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역시 자기 기만일까. 나의 무의식은 나 자신도 모르는 생각과 의도를 가지고 있기에 누군가를 어렴풋이 떠올릴 듯 말 듯 하고 있으나 내 의식의 양심이 이를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올리기를 거부하는 것 같다........
여기 지구에서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들킬 염려 없이 자유롭기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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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ㅇ 사실 나도 섹스 왜안하나 하면서 봄
이거 진짜 명작임. 장르를 넘어선 작품
솔직히 소설도 좋았고,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도 좋았음. 군복무 시절 그리폰북스로 나온 솔라리스 번역본을 사 읽었는데, 군대 시절이라는 환경 때문인지 더 크게 감흥을 느낄 수 있었음. 이후 영화를 보고 싶어져서 성베네딕트수도원에서 출시된 비디오를 국립영상자료원까지 찾아가서 보았는데... 큰 감동을 받았음.
그리폰이나 오멜라스는 오역 투성이에 누락된 부분도 많다고 함.
그럼 이번에 나온 새 직역본도 읽어보면 좋아하겠네. 그때 읽은거랑 좀 다를거야
그리폰으로 읽은 후 이번에 민음판으로 다시 읽었는데 진짜 다른 작품 읽는 줄 알았음. 여주 이름도 다르고
그리폰 및 오멜라스 역자분이 일부러 번역을 누락하거나 오역을 하는 사람은 아님. 원문의 내용을 죄다 살리고, 한국어 표현까지 고려하여 가장 정확하면서도 유려한 단어를 고르는 사람임. 그 사람이 번역한 버전이 오역과 누락이 많다면, 그것을 여러 나라 언어로 건너건너 번역되면서 벌어진 중역의 한계일 듯
ㄴㅇㅇ 맞아 역자가 빠트린게 아니라 프랑스어->영어로 중역과정에서 이미 누락돼있었다하네
오해의 소지가 있게 말을 했는데 내 말이 그 말임. 몇 번의 중역을 거치면서 누락되고 오역이 생겨나고 그렇다는 거임. 김상훈 번역가야 이쪽에선 알아주는 번역가인데 그런 실수를 할 리가 없겠지.
이렇게 초식이 되어갑니다
렘이 요즘 핫하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SF 소설가 중에서 이 사람만큼 사유가 깊은 분이 없고 생각하고, 뭐 영화화도 되었고 그래서 아주 유명한 분인 줄 알았는데요.
내 말은 sf마니아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얘기. 그동안은 국내번역된 책 구하기도 힘들었는데 작년부터 렘 단편집도 나오고 이번에 솔라리스 비롯한 직역본 3권도 나오고 그랬자너
생각해보니 이 책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읽었네... 예전 독갤에서 알라딘 중고매장에 하나 풀려서 새벽에 나가서 대기탔는데 이미 여성 한분이 계셨다던 썰 생각하면 알거 같다
솔라리스 ㄷㅅㅂ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