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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예전에 폴라니와 하이에크의 복지정책에 대한 관점, 그리고 기본소득제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요즘 지정학 분야가 흥미롭게 돌아간다고 내가 느끼고,

<거대한 전환>이 역사적 배경 지식이 없으면 처음부터 읽기 힘들기 때문에 혹시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글을 쓴다.


칼 폴라니는 19세기 자유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자이자, 20세기 초 금본위제의 붕괴로 등장한 공산주의, 전체주의를 단순한 '자유의 쇠퇴'가 아니라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으로 분석한 개성적인 학자이기도 하다.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이란 재밌는 개념인데 인터넷 검색하면 많이 나오니 참고하길 바란다.


이 글에서는 폴라니의 저서 <거대한 전환>이 비판한 '19세기 문명'의 네 가지 기둥


1. 세력균형 체제

2. 자유주의적 국가

3. 자기조정 시장

4. 국제 금본위제


가운데에서 '세력균형 체제'를 중심으로 이야기 하고자 한다.


세력균형이란 다음과 같은 메커니즘으로 굴러가는 제도이다.


1. 균형상태

2. 한 국가가 강해짐

3. 다른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약해짐

4. 그 국가들은 힘을 되찾기 위해 연합하여 강해진 국가를 공격함

5. 강해졌던 국가는 패배해 이전으로 복귀함

결과적으로 다시 1의 균형상태에 도달하고 같은 과정을 반복함


이것이 유럽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은 30년 전쟁(1618-164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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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쟁은 종교 전쟁의 탈을 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더 강해지려는 합스부르크 가문과 이를 저지하려는 세력의 대결이었다.

결국 합스부르크 가문은 사실상 패배해 신성로마제국 내에서 진정한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고, 자신의 영토였던 네덜란드의 독립을 받아들였으며, 후일 합스부르크를 독일에서 쫓아낸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를 방치했다. 결정적으로 앞으로 국제정치에서 결코 프랑스나 영국보다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이 전쟁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전쟁을 벌여서는 안 된다'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정신을 못 차렸는지 유럽은 30년 전쟁 이후 50년정도 지나자 100년 내내 전쟁을 벌인다.


굵직한 것만 모으면 이 정도이다.


1. 스페인 왕위계승전쟁(1701-1714), 프랑스와 그 반대연합의 싸움

2.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1740-1748), 7년 전쟁의 전초전

3. 7년 전쟁(1756-1763), 프로이센과 그 반대연합의 싸움

4. 나폴레옹 전쟁(1803-1815), 프랑스와 그 반대연합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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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정도 서로 살육을 하고 드디어 정신을 차린 것인지 나폴레옹 전쟁 이후 유럽은 국지전이 대체로 일어나되 전면전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고, 설령 일어나도 그 기간이 매우 짧았다. 유럽인들은 나폴레옹 전쟁과 제1차 세계 대전 사이 100년의 평화를 '벨 에포크'라 부르며 밝은 미래를 꿈꿨다.


이런 평화가 달성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이전에는 전쟁으로 세력균형을 유지했으나

2. 19세기 들어 염전 정서가 강해지고, 자본주의 발달과 자유무역의 확산으로 평화의 가치가 상승함

3. 따라서 조직을 이용하는 방식이 등장함

4. 19세기 전반기엔 '신성동맹', 19세기 후반기엔 '유럽 협조 체제'가 그것임


신성동맹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기간: 1815-1864

2. 가맹국: 영국,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 프랑스(1818년 가입)

3. 구조: 봉건제, 교회로 대표되는 구체제로 복고하려는 반동적 조직

4. 반발: 1830년 혁명, 1848년 혁명

5. 붕괴: 1864년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덴마크 침공


유럽 협조 체제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기간: 1870년대-1914

2. 구조: 독일 수상 비스마르크와 영국, 그리고 오트 피낭스(대금융가)에 의한 평화유지 체제

3. 반발: 보호무역 정책과 제국주의의 확산으로 서서히 긴장이 높아짐

4. 붕괴: 제1차 세계 대전


두 가지 정도 신경 쓰이는 점을 시간 순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첫 번째로 왜 '신성동맹'에서 '유럽 협조 체제'로 바뀌었는가?

이는 1830년부터 1870년대까지 유럽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대략 살펴보면 알 수 있다.


1. 1830년 혁명으로 복고에 대한 반발이 시작되었다.

2. 1848년 혁명으로 전유럽에 자유주의, 민주주의, 내셔널리즘이 터져 나왔다.

3. 또한 이 시기 이탈리아와 독일은 내셔널리즘을 기치로 통일을 완수해 근대적 국민국가를 탄생시켰다.

4. 봉건제, 교회로 대표되는 구체제는 자유주의, 민주주의, 내셔널리즘으로 대체되어야 했다.


두 번째로 오트 피낭스란 무엇인가?

오트 피낭스는 폴라니가 만든 독자적인 개념이다. 그 의미와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경제 시스템을 창출하거나 변동하는 것으로 이익을 얻는 대형 금융 자본의 활동으로 정의됨

2. 국가로부터 독립해 국제적인 독자성을 갖음

3. 여러 정부와 기업 및 은행과 긴밀히 연결되어 영향력을 행사

4. 전유럽에 자금이 묶인 그들은 이윤을 위해 '우연히' 유럽의 전면전을 막는 역할을 함


가장 대표적인 오트 피낭스는 로스차일드 가문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가 창립했다고 전해지며 가문 구성원들 간 비밀 네트워크를 통한 국제정보망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이들은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가문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나폴레옹 전쟁 이전부터 소유한 막대한 자금으로 19세기 금융가를 지배했다.


이들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일화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과 그 동맹국에게 전쟁자금 조달

2. 수에즈 운하 사업에 자금 조달

3.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려던 브라질에게 필요한 배상금 조달

4. 아프리카 로디지아 식민지 사업에 자금 조달

5. 러일전쟁 당시 일본에게 전쟁자금 조달


유럽 협조 체제도 균형 외교를 펼치던 독일 수상 비스마르크의 실각, 경제위기에 대해 블록경제로 대처하기, 제국주의 열강들의 경쟁 등으로 붕괴 직전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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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대전쟁으로 유럽은 붕괴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럽이 택한 방식은 전혀 효과가 없는 것으로 금방 드러났다.


먼저 폴라니가 제시한 베르사유 조약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1. 패전국들의 강요된 비무장으로 세력 균형이 붕괴됨

2. 균형상태를 유지해야 할 국제연맹은 실질적으로 작동되지 못함

3. 독일에 대한 가혹한 조치는 나치즘의 등장으로 이어짐


두 번째로 폴라니가 제시한 당시 금본위제의 심각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1. 승전국들은 패전국 및 약소국에게 금본위제 복원을 위해 자금을 빌려줌

2. 패전국 및 약소국이 안정화되자 승전국들의 통화가치가 요동침

3. 미국은 유럽의 자본이 미국으로 이동하는 걸 막기 위해 자국의 이자율을 낮춤

4. 그러나 미국은 당시 해로운 인플레이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자율을 높일 필요가 있었음

5.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결국 불황이 오자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대공황이 오게 됨


대공황 극복을 위해 영국과 프랑스는 블록경제를 다시 택했고, 독일과 이탈리아는 파시즘을 택했고, 러시아는 공산주의를 택했고, 미국은 뉴딜을 택했다. 폴라니는 이들 모두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으로 분석했으며 이것이 19세기를 지탱했던 이기적인 개인이 무의식적으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킬 것이란 믿음 즉, '보이지 않은 손'의 붕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