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1월 20일, 4385명의 조선인 대학생이 일본의 학병으로 징용되었다.
대학을 다니던 당대 최고 엘리트들은 중국/버마/남양군도 등 세계 각지로 보내졌고,
이들은 전쟁 중에 죽기도 하고, 탈출을 감행하기도 하고, 살아돌아오기도 했다.
해외를 떠돌다 간신히 살아돌아온 이 엘리트 젊은이들.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체험이 이들의 무기였으니, 소위 ‘학병세대’라 일컫는다.
학병 세대는 건국 이후 남과 북 국가를 설립하는 데 주축이 된 세대로, 정치, 종교, 언론의 굵직한 요직에 이들이 있었다. 즉, 그들은 “어떤 국가를 만들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실천하던 ‘건국세대’인 것.
그러나 문학계에서 이 세대는 찬밥신세였으니,
1) 38년 제3차교육령으로 인해 한글을 배우지 못한 세대이기 때문. (정확히는 학병세대부터 전후세대까지.)
2) 문단 구 기득권층인 기성세대(김동리, 서정주)와 신 기득권층인 4.19세대=순한글세대(김현, 김승옥)의 사이에 끼어 있었기 때문.
그러나 학병세대는 그 압도적인 인생 체험을 바탕으로 한 문학적 포텐셜을 갖고 있었으니,
농경 사회를 바탕으로 한 기성세대의 김동리식 샤머니즘이나, 분단 이후에 성인이 된 4.19 세대의 내성문학과는 전혀 다른 가능성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쓰인 작품이 이병주의 <관부연락선>이었던 것. 그는 서문에서 “청산문학”을 표방하는데, 이는 결국 기성세대의 잔재를 해체하고 신세대로 나아가는 통로 역할을 자처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관부연락선>은 일제 말부터 한국전쟁까지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중심에 오는 것은 ‘학병 체험’이다.
메이지대학 전문부 문창과에 다니다 학병으로 끌려가 중국 수저우 주둔 일본군 60사단에서 치중병으로 근무하고, 해방 후 상하이에서 부산항으로 돌아온 이병주의 체험이 서려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8월의 사상>에선 학병체험을 향한 콤플렉스를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먼 훗날
살아서 너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더라도
사람으로서 행세할 생각은 말라
돼지를 배워 살을 찌우고
개를 배워 개처럼 짖어라
- <8월의 사상> 中
다소 부끄러운 시를 지을 정도로, 이병주에게 학병 콤플렉스는 컸다.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에서 유학해, 일본의 군대에 끌려간 조선인’이라는 열등감은 쉽게 지워질만한 것이 아니었다.
이와 비교해, 또 한명의 학병세대 선우휘는 어떠한가.
분명한 한 가지는 외면하거나 도피하지는 않을 것이다. 외면하지 않고 어떻든 정면으로 대처하자. 도피할 수가 없도록 절박한 이 처지. 정면으로 대하도록 기어코 상황은 바싹 내 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에 꽃밭의 시대는 끝난 것이다.
-<불꽃> 69p
이병주와는 달리,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극복해낼 것을 역설한다. 어째서 선우휘는 이렇게 쿨한 태도를 보일 수 있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가 ‘학병 없는 학병’ 팀이기 때문이다.
조선인 학병에서 사범계와 이공계는 제외되었고, 선우휘는 사범계였던 것. 어디까지나 간접체험이었다.
때문에, 어느 정도의 고증 오류를 품을 수밖에 없었지만, 대신 객관화에는 성공할 수 있었던 것.
학병 콤플렉스에 매달리는 이병주를 ‘학병세대의 구심력’이라 한다면, 학병 콤플렉스의 극복으로 나아가는 선우휘는 ‘학병세대의 원심력’이라 할 수 있겠다.
이 구심력을 끝까지 밀고 나간 작품이 이병주의 <지리산>, 반대로 원심력을 끝까지 밀고 나간 작품이 선우휘의 <외면>이다.
학병 거부를 위해 지리산에 숨어든 ‘의병’들을 한국전쟁의 파르티잔으로까지 연결시키는 것.
이병주와 친분이 있던 실존인물 하준수(조선인민유격대 지휘관)을 모티브로 삼아, 학병세대의 자의식을 “어떤 국가를 만들어야 하느냐”는 물음으로까지 확장시킨 것. 다름아닌 <지리산>이 갖는 학병세대의 구심력이다.
그렇다면 미 국무성 초청으로 미국 시찰, 도쿄대학에서의 연수, 세계일주 등을 겪은 선우휘는 또 어했는가.
<외면>은 일본의 패전 이후 B급 전범으로 억울하게 처형된 실존인물 조문상을 모티브로 한다. 강제로 학병에 끌려갔더니, 전범으로 취급되어 처형당한 사내. 선우휘는 그 인물의 이면에 담긴 미군의 시선에 주목한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시점에서 미군의 한 중위의 아시아에 관한 지식은 코리안이 어떤 인종인지를 얼른 알아차리지 못했다. 우드 중위는 한참 동안 이쯔끼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코리안이 일본군에게 편입되어 전쟁에 참가하게 된 내력을 알게 되었지만 일본인과 코리안의 관계와 그 인종적인 차이점을 분명히 실감하기는 힘들었다.
-<외면> 387p
선우휘가 주목한 것은 세계 속의 코리안. 그 ‘별 볼일 없음’이었다.
학병을 통해 대한민국 건국의 근본까지 건드리는 이병주의 구심력,
학병을 통해 세계 속 코리안의 초라함에 주목한 선우휘의 원심력.
김동리식 샤머니즘과 4.19를 잇는 문학사의 중간 연결점이지만, 여기서 다시 구심력과 원심력으로 갈라지는 것이다.
슬슬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 연재도 끝이 보이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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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실베 고로시 담당 알바가 좋아할 form인데.. 납치 기원합니다.
실베는 누구에게나 통하는 보편적인 화제가 있어야 돼서 이런 연재글은 잘 안가더라구
예전에 내가 조지오웰 글 썼는데 납치당한 적 있음 ㅋㅋㅋ
이거도 오랜만이네 ㅋㅋㅋ 요즘 갤에 이런 글 별로 없어서 심심했는데
구심력...? 원심력...? 이과 죽어어
서북 실향민들 중에 왜 이리 똑똑한 사람들이 많았음?? 숫자도 얼마 안 되었을 텐데. 고구려의 기상인가??
https://www.google.com/am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4/05/2017040500074.html%3foutputType=amp
저 짤은 이 기사에서 퍼온건데, 이 글에서 다루는 학병문제하곤 크게 관련이 없음. 저 기사 참고해 보심 될듯
와 연재 되게 많이 했네 나중에 몰아서 봐야지
ㅇ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