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권을 구성하는 것들 중 어떤 것은 형성적 권리다. -여기서 형성적이라는 건 법학적으로 형성법과 동의어가 아니다. 다만 내 어휘의 빈곤함으로 인해 여기서 같은 단어를 쓰는 것이다-이건 자연권과는 달리 법적으로 인정을 받을 때 비로서 나타나는 권리라고 할 수 있다. 가령 한국에서는 상속에 있어 유류분이라는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하는데 이는 유언과 무관하게 유족의 혈족에게 유산의 일부분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법률로서 인정되는 것이다.
저작권에 있어 지적재산권도 비슷한 원리라 할 수 있다. 지적재산권을 어떻게, 얼마나 인정하는가는 자연권에서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내에서 법률적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저작권을 인정하는데 있어 그 범위와 기간은 국가마다 조금씩 다르다. 지적재산권의 일부라 할 수 있는 대여권은 여러 국가에서 최초 판매의 원칙이 적용된다. 저작권자가 저작물을 판매한다면 그 판매된 저작물의 대여권 역시 판매되는 것으로 의제된다. 이는 재산권으로서 대여권을 저자권자에게 인정하는 것보다 그것이 일반에 대여되는 것이 더 공동체에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즉, 대여권이라는 재산권을 인정함으로서 보호되는 저자권자의 이익보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저작물이 공공에 사용되는 것이 다 낫다는 판단 아래 현행 제도가 시행되는 것이다.
공대권을 주장하는 이들은 현행 제도가 저자권자의 재산권의 침해라 주장한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대여권이라는 재산권은 애초에 우리나라에서 존재한 적도 없으며, 존재한 바 없는 권리가 침해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이 말하는 재산권으로서의 대여권은 허상이다.
그렇다면 '이제 공대권이라는 것을 인정함으로서 공공의 이익이 증진되는가?'를 물어야 한다. 난 단연코 아니라고 말한다. 도서의 가치는 그것이 소비됨에 있다. 단지 시중에 그것이 사용 가능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 실제로 읽혀 도서에 담긴 생각과 사상이 공유되어야 한다. 공대권의 인정은 공공도서관의 부담을 증가시키고 각 지자체가 공공도서관의 운영을 꺼리게 만들 것이다.
관련 예산을 증가시킬 것이란 입발린 말을 믿지는 말기 바란다. 도대체 도서관의 운영이 예산배정에 있어 우선순위가 되는 한국이란게 현재에나 미래에나 존재할 것 같은가?
도서정가제부터 공공대출권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흐름은 하향세인 국내 도서시장에서 지금 최대한 내 몫을 빨아먹겠다는 기성 세대의 흡혈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독서인구는 갈수록 줄어드는데 도서에 대한 접근성을 오히려 줄여나가는게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되겠는가? 난파선에서 한몫 챙기고 이후는 나몰라라 하는 행동에 불과하다. 결국 상처입는 건 평범한 독서인 장삼이사일 것이다.
도정제 통과될때도 이상한 뽕 줏어쳐먹은 놈들이 가슴 부풀어올라가지고는 출판사들 그럴싸한 개소리 여기저기 퍼나르면서 큰 힘이 돼줬었겠지.. 저게 통과되면 이제 도서관이 존재한다는것만으로도 예산이 몇배가 더 쓰일지도 모르는데 상식적으로 그걸 누가 운영하려고 하겠음?
현상의 한치 앞도 못보는 주제에 뭔 불쌍한 예술가들 돕는다고 또 무슨 소녀상 하나 더 만들고 뭉클 울컥 난리굿을 떨려고.. 떼잉
딱봐도 도서관에 빨대 꼽고 기생하려고 저러는거지 저자만 받는 것도 아니고 좆같은 출판사 끼워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