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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슬그머니 드러낼 거 같으면 차라리 대놓고 드러내세요. 꼴볼견 같습니다.>

 

<인물>

-이원영: 환갑. 권지유의 어머니. 과학기술원에서 초파리 사육 일을 하다가 질환을 겪으며 그만둔다.

-권지유: 이원영의 딸. 소설가. 이원영이 아픈 것을 산재라고 생각하며, 소설 자료를 이유삼아 이원영에게서 관련 정보를 캐려 한다.

-신치온: 소설가. 소설의 시작점을 종종 잊어버린다.

 

<줄거리_Spoiler>

이원영은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미선의 소개로 과학기술원에서 초파리를 사육하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머리가 빠지는 등의 이상 증세를 겪게 되고, 일을 그만두게 된다. 그녀의 딸 권지유는 이원영이 아픈 것이 산재라고 생각하며, 이에 대해 알기 위해서 원영에게 소설의 자료를 모은다는 빌미로 정보를 수집한다. 그리고 권지유는 원영에 대한 소설을 쓴다.

 

<서평>

‘2022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심사 경위를 보면,

 

이 상의 목적은 기존의 어법과 이해에 반발하거나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세대의 글쓰기를 조명하는 데 있다.’

 

라고 적혀 있다. 이러한 기준에 비추어 본다면, 대상을 탄 이유도 나름 납득은 간다. 정말 말 그대로 기존의 어법과 이해에 맞불을 놓은 듯한, 오히려 나에게 있어서는 왜 기존의 어법과 이해가 있어 왔는지에 대해 알 수 있게 해 준 작품이다. 이런 점에서는 고맙게 생각한다.

 

본격적으로 내용을 보기 전에, 내가 생각하는 좋은 문학이란 작가의 주장, 사상과는 별개로 그것을 얼마나 잘 나타내었는가, 감성에 호소함에 있어 사람들을 얼마나 감정적으로 납득시킬 수 있느냐를 충족하는 작품이다. 거기에 더불어 작가의 의도가 잘 전달되었는가도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동력은 원영과 지유의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지유는 원영의 병이 산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원영에게 원영을 소재로 한소설을 쓴다고 말하며 정보를 얻으려 하고, 원영은 이러한 지유의 말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신이 원하는 소설의 내용을 말한다.

 

정말 툭 까놓고 말해서, 원영과 지유가 갈등하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작가가 말하고자 싶은 게 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작품이 실제 사연을 소재로 한 것이라면 그렇다 쳐도, 가상의 스토리라면 무언가 의도가 있지 않을까.

 

제목은 왜 초파리 돌보기일까. 이 작품에서 초파리가 하는 역할이라고는 얼마 없다. 나열해 본다 쳐도, 원영이 새로운 직장을 얻게 된 곳이 초파리를 기르는 곳이고, 권지유가 케이크를 먹지 않게 만드는 장치일 뿐이다. 이 작품의 주 서사는 초파리에 있지 않다.

 

정말 많이 양보해서, 여러 굳은 일을 겪으며 살아온 원영이 소설가인 딸, 권지유가 쓴 소설을 통해 나름의 치유를 받는다는 것이 서사의 전부가 아닐까.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는데, 그 회복의 과정이 너무나 미약하다. 작중 원영이 권지유에게 해피엔딩인 소설을 써 달라고 하는데, 무언가 큰 갈등 없이 그러한 결말을 낸 것으로 회복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독자들을 납득시킬까?

 

그나마 약간의 갈등을 보이는 부분이라면, “소설은 소설일 뿐인데.”라고 말하는 지유와, “소설일 뿐이면, 왜 써?”라고 말하는 원영의 대화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 외의 것을 채우는 것은 여러 주제에서 벗어난, 아니, ‘내가 생각하기에 주제에서 벗어났고’ ‘작가가 실제로 전면에 내세우려 한여러 내용일 뿐이다.

 

잠시 다른 이야기로 새서, 최근 본 영화 중에 <더 배트맨>이 있다. 마블, DC 등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배트맨과 관련된 영화라고는 <다크 나이트> 밖에 본 게 없던 내가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작중에서 배트맨과 리들러가 각각 히어로와 빌런으로써 대치하나, 그 사이에 낀 캣우먼이 비중이 애매해졌다는 것이다. 이 책의 신치온이 딱 그렇다.

 

신치온은 이 작품에서 딱 2장면 등장하는데, 나와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는 소설을 쓰는데 시작점이 기억나지 않는다’, ‘자신은 소설을 쓰지만 그것이 냉정하게 평가받는 시장이 무섭다’, ‘나 딸기에 PTSD 있다이렇게 3개 정도지, 더 큰 역할을 한 게 없다. 마치 작가가 자기를 투영한 인물을 만들어 넣은 듯, 주제와는 동떨어진, 작품 밖에서 나올 것 같은 이야기를 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이미 많은 이야기가 나왔고, 이것은 서평이니 크게 이야기하지는 않겠으나, ‘소설을 쓰는데 시작점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 작가 본인의 문제라면, 작가노트에 적혀 있는 너무 열심히 쓰지 말라던 말은 흘려 들으시고, 예술병 걸린 것처럼 느긋하게 살기보다는 열심히 사는 것을 추천드린다. 나도 그렇게 해서 원하는 대학 갔으니까.

 

그리고, ‘자신이 쓴 소설이 냉정하게 평가받는 시장이 두렵다는 말은, 도서정가제 등의 여러 안건들을 기억나게 함과 동시에, 이러한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 보여주는 듯하여 참 아쉽다.

 

이 작품의 문제점을 하나로 압축하면, 주제 외의 것들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장 원영의 과거와 주변 사람들의 반응(전부는 아니다. 과해서 그렇지.), 몇 번 언급되는 원영의 ’, 신치온의 존재, 굳이 ‘2013이라고 밝히는 정권교체에 관한 이야기, 작품의 주제에 융합되지 못한 초파리들의 존재.

 

참고로, 읽으면서 든 생각인데 과학기술원이나 되는 곳이 하버드, 예일 대학 등에 보내는 초파리를 학교 관련자도 아닌, 그저 일반인에 불과한 사람에게 맡긴다는 게 약간 이해가 안되는 것도 있었다.

 

정리하자면,

 

1. 작가의 진정한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점

2. 주제 외의 민감한 요소를 지나치게 편향되게 넣었다는 점

3. 감정적으로 납득되기에는 기반이 부실하다는 점

4. 제목도 초파리이고 시작도 초파리이나 초파리여야 할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이정도가 문제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해설로 첨부되어 있는 해피엔드를 다시 생각하기또한, 차라리 이게 없었더라면 조금 더 나은 평을 남길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초파리를 사육하는 것자녀를 키우는 것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는, 그리고 그저 한쪽으로 치우쳐 있을 뿐인 평론가를 보며, 기존의 내 생각이 다시 단단해지는 작업이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