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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소설도 쓰고 있는데 글 잘 쓰는 사람들 볼 때마다 나같은게 무슨 글을 쓰냐는 생각이 수십 번도 넘게 든다.
여튼 한 번 읽어보고 그냥 어떤지 솔직하게 얘기좀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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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못 생긴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
세상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잘 생긴 사람과 못 생긴 사람. 그리고 그냥 평범한 사람.
세상엔 두 종류의 여자가 있다. 예쁜 여자 그리고 못 생긴 여자.
인류 아니 생명체가 생겨남과 동시에 아름다움이 생겨났다. 자아분열 단계를 지나간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이성과 결합이 필요했다. 그리고 자신이 다른 경쟁자보다 더 낫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가장 1차원적인 시각적인 효과가 필요했기 때문에 자신을 남보다 아름답고 강하게 보이기 위한 수단이 필요했다. 짝짓기 시 공작이(물론 공작은 수컷이 암컷보다 아름답지만)자신의 꼬리를 펼치는 행위부터 사춘기를 지나는 소녀들이 화장을 시작하는 행위는 다 이런 것과 맞닿아있다. 그리고 아름답지 못 한 생명체는 점점 도퇴되는게 적자생존에서는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렇게 도퇴되어버린 여성은 정말 사랑하고 사랑받을 권리조차 없는 것일까.
사실 우리 모두는 아름다운 사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아름답지 못 한 것을 보면 불쾌한 감정을 느낀다. 이는 어른들보다 아이들에게서 더 심하게 나타나며 이로 미루어 유추해봤을 때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후천적으로 학습된 것이 아닌 선천적인 본성이다. 따라서 못 생기게 태어나서 남에게 천시받으며 사는 것은 이성적인 관점에서는 불합리하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생태계적인 관점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못 생겼다고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는게 옳은 것은 아니다.
작가도 얘기했지만 우리네의 소설 드라마 영화는 모두 아름다운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로 가득차있다. 못 생긴 사람이 드라마에 나와서 연기한다면 하다 못해 미운오리새끼마냥 처음엔 보기 흉해도 극이 끝날 떄쯤은 아름다워져야 우리는 극에 집중한다. 아름답지 못 한 사람이 사랑받는 스토리는 그다지 많지 않다. 슈렉같은 만화영화에서 잠시나마 피오나 공주가 그 고정관념을 깨주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다시 모든 애니메이션은 엘사(얼음왕국의 주인공)처럼 아름다움을 베이스로 한 주인공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파반느의 여자 주인공은, 내가 실제로 보지는 못 했지만, 작가의 묘사에 의하면 세상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못 생긴 사람 중 한 명이다. 얼굴만 봐도 \"얼굴이 무기다\"라는 말을 당연시 들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인물이다. 그리고 그런 못 생긴 여자를 영화배우인 아버지를 닮아 잘 생긴 남자 주인공이 사랑한다. 참으로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물론 이에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못 생긴 자기 어머니를 버린 잘 생긴 아버지 이야기를 초반부에 넣었지만서도 이는 참으로 비현실적이다. 심지어 남자주인공은 사실상 여자주인공을 보고 첫 눈에 반한다.(물론 소설에는 그런 표현은 없지만 말 한마디 나누어보지 않은 여자한테 먼저 호감을 느끼고 접근한다는 것부터가 첫 눈에 반했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본다.) 우연한 계기로 친해지면서 상대방의 다른 장점을 보면서 사랑에 빠진 것도 아니고 이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감정의 타당성을 미루어두고 이러한 상황의 의의에 대해서는 생각해볼만하다. 우리가 美와 醜에 대해 얼마나 잔인하게 대하고 있는지 그래서 우리는 못 생겼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얼마나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고 있는지 다시금 뒤돌아보게 해준다. 그리고 추녀도 다른 미녀들처럼 누군가에게는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인격체라는 사실을 인지시켜준다.
사실 소설은 나에게 너무나도 지루했다. 특히 주인공의 말도 안 되는 행동(못 생긴 여자에게 첫 눈에 반하는 것)을 합리화시키위해 소설의 대부분을 사용하다보니 증명 안 되는 수식을 억지로 증명하려는 것처럼 공감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뒷부분부터는 전개가 흥미로워서 비교적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를 다 이해하고 공감했지만 난 아직도 아름다운 사람이 좋다. 아니 못 생긴 사람을 좋아하게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첫 눈에 반할 일은 없을 것이다.
'도퇴'가 뭐예요? 이과 맞아요?
그리고 중학생 수준의 감상문은 좀 읽기 곤란하네요
서평은 일반인 장삼이사가 다 할 수 있는, 러프한 수준이 생각이 아니라, 남다른 생각이 단 한 줄이라도 들어 있어야 읽어줄만 하거든요
ㅇㅣ과생이라 합리화하지만 그전에 국어 공부부터 제대로..
일부러 글 못써서 막 이과생 깍아내리네ㅡㅡ
공격적인 애들이 많네. 그래도 개똥같이 주제의식에 벗어나고 자기과시가 아닌척 과시하는 여기 애새키들 똥글보단 나은데. 이 책에 글 귀 중 하나인 [결국 열등감이란 가지지 못했거나 존재감이 없는 인간들의 몫이야. 추녀를 부끄러워 하고 공격하는 건 대부분 추남들이야] 라는 부분이 있는데 위에 애들이랑 맥락을 같이 하네 재밌어
ㄴ쿨한척 논리적인척 오지네ㅋㅋ이게 열등감으로 보이냐?
ㄴ [결국은 두려움이 모든 일의 근원이라는 느낌이 든다. 자신의 자리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은 남들을 경시하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지 않는다.] 알랭 드 보통 -불안-
ㄴ인용하고자하면 상황에 맞게 인용을 하던가. 글못쓴거를 못쓴거라 햇는데 그게 경시하는거냐
맞춤법 검사 안 한 건 내 잘못이 맞다 도태지 미쳤나봐. 여튼 평 고맙다. 안 좋은 평이라고 해도 아무런 댓글도 안 달린 것보단 좋음.
난 이 작품이 소설의 의의라고 생각함. 인간은 시각정보에 가장 기대고, 그런만큼 시각적으로 화려하고 고도의 기술을 선보이는 작품일수록 루키즘에서 벗어날 수 없음. 하지만 소설은 텍스트이기 때문에 추녀, 라는 개념만 주입하고 그대로 이야기를 이어가도 독자들은 거부감이 없음. 물론 못생긴 얼굴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지만 그건 작가의 선택(혹은 역량)이지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님.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이 좋았음.
여기애들 열등감 and 급식들 많아서 이해해
근데 넌 표절작가 작품을 왜 읽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