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7e9f8373b3806af623ecf7e3439c701fc790c2c5ff7515b1f2289cc3b6e82d5cd2576da4e1f7528e0624f0dea726e095f3fc181b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에 수록된 이 단편을 한 줄로 요약한다면, ‘사춘기 소년의 절망’일 것이다. 소년에게는 좋아하는 소녀가 있다. 소년은 소녀와 함께 바자에 가고 싶다. 좋아하는 소녀와의 동행! 소녀의 모습을 바라만 보아도 “내 사랑!”을 연호하는 소년에게 동행이란 곧 데이트다. 연인들이 함께 길을 거닐고, 대화하며 식사하기도 하는 그 데이트나 다름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동행은 무산된다. 소녀가 다니는 수도원 학교에서 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년은 그런 소녀에게 바자에 가서 뭐라도 사다주겠노라 약속한다. 그때부터 소년의 일상은 지루함 그 자체였다. 바자에 가서 소녀에게 어울릴 법한 물건을 사다주며 호감을 쌓는다니, 그 얼마나 완벽한 계획인가? 그렇게 소년은 바자가 열리는 날이 올 때까지 지루한 하루하루를 손꼽아 기다린다.

그러나 소년에 계획에는 먹구름이 낀다. 시작부터 바자에 늦게 된 것이다. 그렇게 끝나가는 바자에 도착한 소년은 결국 번민과 분노로 불타오르게 된다. 왁자지껄한 손님들, 정중한 직원들, 번쩍이는 상가의 불빛들은 없다. 소년의 눈동자에 비친 것은 다 꺼져가는 불빛과 남아있는 몇몇 상점들, 그리고 귀찮은 듯이 구는 직원 뿐이다. 그렇게 소년은 깨져버린 환상 속에서 소녀의 모습조차 찾지 못한채 마비된다.

소년에게 더 이상 환상은 없다. 이는 작가 제임스 조이스도 마찬가지다. 조이스가 출판업자들과의 불화로 더블린을 떠났을 때, 그는 고향에 대한 환상을 영영 잃어버렸다. 모든 것이 마비되어 식민지로만 기능하던 모국 역시 조이스에게는 최악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렇게 환상을 잃어버린 제임스 조이스는 자신의 고향을 영영 찾지 않은 채, 떠돌이로 생을 마쳤다.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