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관계에 두려움이 많은 사람임.
중학교때 원만한 학창생활을 하지 못했고, 그랬기에 책과 게임에 탐욕스럽게 빠져들었었음.
지금도 마찬가지임. 예전에 비해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훨씬 나아졌지만 여전히 내면 한 켠에 배신과 관계의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 있음.

그래서인지 나는 스스로가 게와 같다 생각함.
물렁한 내면을 지키기 위한 단단한 껍질로 둘러쌓인 작은 겁쟁이.
내 감정은 마음 속 깊은 곳에 있고, 그 밖은 방어기제들로 둘러쌓여있음.
상처는 받지 않지만, 사랑 또한 받지 못함. 누군가 나에게 우정, 사랑, 존경 같은 감정을 보내도 나는 그걸 머리로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마음으로 느끼진 못함.
내가 유일하게 마음으로 무언가를 느낄 때는 독서할 때임.

나는 토지에서 귀녀가 죽기 전 참회할 때 울었고, 노르웨이의 숲의 주인공이 나오코와 처음 관계를 맺었을 때 쓸쓸하면서도 씁쓸한 사랑을 느꼈음.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는 우정을, 안나 카레니나에서는 비극적인 사랑을 봤음. 롤리타에서는 잘못된 사랑과 집착이 불러일으키는 상처를 느꼈음.
나는 독서를 할 때면 살아 숨쉬는 감정을 느낌.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동요해 희노애락을 느끼며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것은 말 그 이상의 느낌임.

그런데 이들에게 공감함과 동시에 나는 내가 공감하지 못하는 인물들도 봄. 노르웨이의 숲의 나가사와 선배, 안나 카레니나의 브론스키 같은 이들이 있음. 이들은 나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임. 나는 그들을 이성적으로는 이해하지만, 감성적으로 공감할 수는 없음.
그렇지만 나는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음. 그렇기에 그들의 캐릭터성에 감탄하고, 더 나아가 그들의 악행을 받아들이고 용서할 수 있음.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성장함을 느낌.

나는 여전히 두려움이 많은 사람임.
그렇지만 수많은 책을 읽으며 나는 내 상황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더 나아가 두려움 많은 나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었음. 나는 또한 다른 사람 또한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음. 왜냐하면 그들이 처해있는, 혹은 처해있을 거라 예상되는 상황을 마음 속 깊이 받아들이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임.

나는 독서를 통해 나 스스로에 대해 사색할 수 있었고 나 스스로를 인정하고 남들 또한 받아들일 수 있었음. 만약 나같은 사람이 있다고 하면, 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용기를 얻었으면 함.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