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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리주저리 영양가 없는 잡담만 많은게 알맹이 없어서 눈으로 대충 훑어봐도 될만한 작품이였다. 대가다운 솜씨가 아니라 스타일리스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에 읽은 나보코프 꺼는 언어유희라도 있었지만 언어의 기교적인면모도 좋은것 같진 않다. 너무 겉멋에 취한것 같은 느낌이다. 소위 말하면 분위기충이랄까. 물론 문학 볼 때 인상은 중요하지만 겉멋에 취한 것 같은 인상은 별로다. 남한테 잘보이고자 하는 게 우선목표인 사람은 노예다. 정치인이든 언론인이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사람도 마찬가지고, 선거 때 춤추고 재롱 떤다. 정확히는 사람의 상상력에 잘보이고자 한다. 그 상상력은 또 미래를 왜곡한다. 그딴 상상력은 앰창미래만 있을 뿐이다. 객관적으로 성형율, 취업을 위한 스펙경쟁 죄다 남한테 잘보이고자하는 게 우선 목표인데, 결실은 종적자살과 창의력자살로 인해 국가적 앰창미래를 기약하고 있다. 다른 나라도 좆박는다고 안심하지말자 우리는 더 좆박고 있다.
왜 잘보이고자 남에 상상력을 자극하게 유도하는 게 현실로는 피폐함을 낳을까? 그것은 거짓을 지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실질강건보단 남의 호감호의호평을 얻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과장하고 비약하고 포장을 가할 수 밖에 없다. 불순한 면모는 숨기는 데 급급하여 내숭을 떨어서 몸값을 높인다. 모든 게 마케팅 용도이다. 오늘날같이 마케팅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대에 라면껍데기 처럼 어느정도 과대포장은 관례적으로 허용이 되는 데, 그래서 사고 나서 환멸감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차라리 사기 전이 더 기분이 짜릿했을 것이다. 그런 풍조가 심화된다면 인격체도 질소포장에 가까울 정도로 내용물이 부실해지고 겉만 현란할것이다. 상품은 팔려서 이윤추구가 최대목적이지 내용물은 부차적이다. 그래서 상업문화는 음악,영화,문학 따지지 않고 죄다 겉멋충들이다. 요새 팔리는 베스트셀러도 겉멋충 작품이 존나게 많다. 대표적으로 파스텔톤 북이나 시중에 불쏘시개들이 나돌고 있다. 하루키가 여성팬층을 보유한 것도 여성들이 특히나 겉치장에 집착하는 성향 덕분에 어필된 것이다. 그래서 죄악으로 인해 등장인물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문학에서 그래서 상상력의 역할은 존나 중요하다. 그 상상력은 미래를 기약하고 있다. 고전문학은 미래지향적인 작품들이다. 어떤 상상력이 건전한가? 역설적으로 남한테 잘보이고자 구라치는 협잡꾼의 상상력이 아니라 반대로 자기자신한테 잘보이고자하는 상상력일 것이다.
라면만큼 정직한 포장이 없건만.. - dc App
굽시니스트의 세계2차대전 만화에서, 하루키 책을 읽는 히틀러를 보고 "하루키 라니, 아직도 애임?"이렇게 괴링이 놀리는 장면이 있었음. 그 장면에 빵 터짐
겉멋이아닌 책 1개 추천해줘
개인적으로 노르웨이의 숲 주인공이 정말 공감되거나 하진 않았지만 난 특유의 그 분위기가 좋았음. 쓸쓸하고, 방황하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우리 어머니한테 하루키 단편 '반딧불이' 읽어보라 했었는데(반딧불이를 장편으로 늘린게 노르웨이의 숲) 평가가 재밌었음.
20~30년 전에 봤으면 재밌었을 것 같다고. 자기는 세상을 많이 살아오면서 여러가지 감정을 느끼고 경험했기에 이런 이상론적인 거에는 더 이상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고. 젊은이는 경험이 없기에 지식에 매달리고, 늙은이는 시간이 없기에 경험에 매달린다는 말이 있음. 나도 그런 것 같음. 많은 책을 읽었지만 현실에서의 경험은 적음.
그래서 이런 막연한 불안감, 미래에 대한 약간의 환상 등을 표현한 책이 좋았음. 개인적으로 나는 노르웨이의 숲이 겉면만 화려한, 그런 묘사에만 치중한 작품은 아니라 생각함. 나는 정말 이런 감정묘사에 공감하고 슬펐기 때문임. 물론 관점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리고 본문 내용을 이야기하자면, 논리에 비약이 좀 있는듯. 1문단에서 자신의 거짓된 모습을 꾸며 상대의 상상력에 잘 보이고자 한다, 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게 어떻게 상상력 자살과 연관되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더 망하고 있다는 것이랑 관련되는지?(우리나라가 잘났다가 아니라, 논리가 어떻게 연관되는지)
또한 '겉멋문화'에 대해 비판하며 '고전문학'을 고평가하는데, 고전문학은 언어의 화려한 기교에만 기대는 작품이 없다는 의미인지? 걸리버 여행기, 로빈슨 크루소의 원제를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는 것 같음. 그리고 또한 과거의 작품을 되짚을때 중요하다 생각하는건 '좋은 작품이 과거에 쓰여졌다'가 아니라, '과거에 쓰여진 작품이 좋았기에 현재까지 남았다'
이걸 감안해야한다 생각함. 과거에도 쓰레기같은 작품들이 많았고, 기교에 기대는 작품이 있었을 거임. 그렇지만 시간이라는 체에 걸러지고 걸러져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은 것만이 현대에 살아남았다 생각함. 결코 과거의 작품이 현대보다 우월한 것이 아님.
개인적으로 논리에서 가장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노르웨이의 숲의 어떤 부분의 어떤 표현, 혹은 어디를 묘사하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논리의 비약을 통해 현대문학에 대한 총체적인 비판으로 넘어간다는 거임. 노르웨이의 숲은 1987년 소설임. 벌써 35년전 소설인거임.
만약 설령 노르웨이의 숲이 화려한 기교 외의 아무 가치가 없는 소설이라 하더라도, 그게 현대 문화의 겉모습만 쫒는 것으로 치환할 수 있는 거임? 최소한 현재 있던 문학 혹은 문화 상품 한 두 가지를 근거로 들고 이런 점 때문에 과거에 비해 현대에 기교가 더 중요시되는 것 같다, 정도로 연관지었어야 했다 생각함.
그리고 설령 현대 문화가 겉모습만 추구한다 하더라도, 모든 문화작품이 그렇다는 거임? 또 여성 하루키 소설에 여성 팬층이 많은 이유가 겉치장을 중시하기 때문이라 했는데, 이것도 논리의 비약이 꽤 심하다 생각함. 논리에 대한 근거가 없기 때문임. 하루키 소설에 여성 팬층이 많다는 이야기는 나도 예전에 봤던 것 같음. 그렇지만 이게 겉치장때문에 그렇냐?
'현대 문학이 겉모습만 중시한다'라고 하는 본문 주장도 근거가 '하루키 소설은 알맹이가 없었다' 하나에서 시작된 거였음. 그런데 이 주장을 다른 근거 하나 없이 더더욱 발전시켜 '여자는 겉치장을 중요시해 하루키 소설을 좋아한다!'라고 결론 짓는건 무리가 있다 생각함.
개인적으론 본문 주제에 동의하는 부분도,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었음. 그렇지만 주장에 근거가 너무 미약하고, 하나 있는 근거조차 주장을 확실하게 뒷받힘하는 근거라고 볼 수 없음(35년전 작품에다 외국 작품임). 거기다 논리의 비약까지 너무 심하다 생각함.
내 생각에는 하루키 작품이 왜 내용이 없다 생각했는지(본문 내용을 몇 가져오면 더 좋을듯), 현대 작품에 기교만 있는 베스트셀러 작품들이 무엇들이 있는지, 또한 여성이 겉치장만을 중요시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근거는 뭔지 등을 알려줘야 논리적으로 납득이 가능할 거라 생각함.
개인적으로 현재 20 초반으로서 방황하는 나에겐 큰 공감이 되는 책이었음. 성에 대한 보수적인 가치관과, 쾌락 위주의 삶을 살고 싶은 나의 갈등이 공감하는데 도움이 됨. 근데 나는 애정업ㄱ는 섹스 하면 현타 많이 오던데 주인공은 안오는거 같아서 신기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