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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에서 피할 수 없는 이름 세 글자가 있는데, 바로 ‘박정희’라는 이름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리는 인물이기도 하며, 지금의 사회가 현재의 모습을 가지는 데 상당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런 인물이 만든 정권이 걸어온 행적을 돌아보며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서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책이다.

5.16쿠데타 이후, 선거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집권 기간 동안 한국의 경제구조를 크게 바꿨으며, 근대화와 산업화를 국가 주도로 밀어붙여 나갔다, 또한 한국 사람들의 애국심과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집권을 정당화해나갔다. 이러한 행동을 했었던 이유는 박정희 정권의 사실상 시초였던 ‘쿠데타 세력’이 바로 사실상 무력을 앞세웠던 세력이기에 취약한 정통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조국 근대화’를 모토로 삼아 근대화와 산업화를 밀어붙여 취약한 정통성을 무마하고 자신들이 집권하는 정당성을 설파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국가 주도로 경제개발을 강력하게 추진한 결과 급격한 산업화를 통해 한국의 경제구조는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수많은 부작용을 불러왔으며, 그중 일부는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와중에도 한국 사회는 점점 변해갔다. 개발이 몰고 온 새로운 삶의 양식, 그리고 비교적 풍요로워진 생활 속에서 새로운 문화가 사회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증가한 대학생 숫자, 외국 문화의 유입 또한 이러한 현상에 영향을 줬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에 대응하는 국가의 대응 방식은 ‘훈육’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실제로 장발단속, 사족계획운동을 통해 훈육을 통해 국가를 자신들의 의도대로 통제하려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정권의 특성상,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변화는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모순적이게도,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변화로 인해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 사람들은 점차 그것을 만들어 낸 체제와 극단적으로 대치하게 되었다.

박정희 정권은 결국 ‘외부의 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현실에 존재하고 있고, 여전히 다수의 국민들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북한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와 같은 ‘외부의 위험’을 부풀려 만들었고 이를 이용해 자신들의 장기집권을 정당화했으며, 반발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급격하게 변화해가는 사회에서 부당함을 말하는 목소리를 모조리 ‘이적행위’로 취급하며, 계속해서 탄압을 지속해나갔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박정희 정권은 1972년 10월 17일, 비상계엄령을 내리고 국민투표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치렀다. 그 후 선출된 대의원들이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장충체육관에서 연 결과 박정희는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결과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이 국회의원 정수의 1/3에 해당하는 의원 및 법관의 임명권까지 갖게 만들었다. 그동안 집권 과정에서 거추장스러웠던 선거도 헌법 개정을 통해 맞게 고쳐 사실상 종신집권을 가능케 만든 것이다. 의희는 사실상 무력화되었고, 거기에 더해 반정부적인 비판 보도를 하는 기자에 대한 협박과 고문을 통해 공포로 언론에 대한 통제 분위기를 조성해, 사실상 반대를 허용하지 않는 체제를 만들었다. 물론 단순히 강압적인 폭력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새마을운동과 같이 도시 지역에 비해서 낙후된 농촌문제 개선을 위한 행동도 있었으나, 이 새마을운동조차 일종의 행정적 동원이 같이 동반되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프로파간다’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1975년, 남베트남 공화국이 무너지는 등 해외 정세가 급변하자, 이를 유심히 살핀 박정희 정권은 이를 이용해 반공 분위기를 사회에 적극적으로 확산시킨다. 그리고 마침내 ‘긴급조치 9호’가 1975년 5월 13일에 선포되었다. 유신헌법에 대해 사실상 ‘성역화’를 시킨 셈이다. 이 조치는 철폐될 때까지 수많은 구속자를 낳았다. 심지어 최상위 계층에만 있었던 군 출신이 박정희 대통령의 조치로 인해 사관학교 출신 장교가 특채 시험을 통해 국가공무원 사무관으로 임용되는 제도까지 실시되어, 국가행정기구의 중간관리자까지 군 출신이 폭넓게 등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보도 지침을 내리거나, 중앙정보부 요원이 언론사에 상주하는 등의 언론 탄압은 이제 일종의 관례 행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회 전체적으로 정치권력을 견제할 장치는 사실상 마비되었으며, 일종의 ‘암흑기’와 같았다. 이 암흑기는 10월 26일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에 살해당하기 전까지 지속된다.

박정희 정권의 시초였던 군사쿠데타 세력은 처음에는 4.19 혁명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등 자신들이 시민들의 의지를 반영할 것이라는 일종의 ‘환상’같은 언행이라도 했으나, ‘근대화’를 통한 사회의 군대식 조직화는 정권의 폭압성과 지나치게 암울한 사회의 어두운 면들을 만들어냈고 그것은 이에 저항하는 세력의 확대를 불러왔다.

또한 박정희 정권은 ‘군인’이라는 존재가 중심에 섰다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비록 군대가 무력을 이용해 권력을 가질 수는 있더라도, 온 국가를 군대와 같이 만들어 박정희 정권이 목표로 했던 급격한 산업화를 추진하기 위해 ‘군대식 개발동원체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는 수많은 강압과 폭력이 따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국가에서 군대는 필수 불가결의 존재와 같지만, 군대의 규율과 가치관을 온 국민이 자발적으로 따르게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자, 박정희 정권은 자신들이 모토로 내세우던 ‘조국 근대화’의 모습을 만드는 것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으나, 동시에 여러 비상조치를 남발하는 경향을 보여 국민적 지지기반이 매우 불안정했음을 어느 정도 보여준다. 그들은 한계로 인해 폭주했고, 한계로 인해 몰락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대학생의 숫자가 크게 증가하고, 그리고 도시 인구가 빠르게 늘어간다는 통계를 보며 사회가 얼마나 빠르게 변화했는지를 느꼈다. 오히려 이런 사회상을 만드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박정희 정권이 쫓아가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을 정도로 당대 한국 사회는 정말로 빠르게 변한 거 같았다.

그러면서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린 기억이 있다. 종종 학교에서, 아니면 주변에서 지긋이 나이를 드신 분들이 그때를 회상하며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면 박정희는 마치 인간이 아닌 ‘반인반신’에 가까운 능력을 가진 것처럼 느껴졌으며, 그리고 그분들이 말하는 태도를 보면 단순히 존경하는 인물의 행적을 말하는 정도가 아닌, 거의 ‘종교’에 가까울 정도로 숭배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완벽한 인간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동서고금의 진리에 따라, 우리는 잠시 하늘에 있는 박정희를 땅으로 끌어내릴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를 지상의 기록에 따라 냉엄하게 판단하고, 앞으로 그가 지금의 한국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흘러갔으면 한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망을 가슴속에 품는다.

[출처]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 조희연 지음, 역사비평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