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논리학에 대한 무언가 기대가 있었어.
내가 꼴 보기 싫어하는 얘랑 논쟁해서 "네 말은 이게 틀렸어!" 하고 꼬집는 거라던가,
토론 같은데 나가서 "당신의 말은 이러이러한 논리가 잘못되었고, 무엇보다 논점 이탈의 오류를 범하는 중입니다." 라고 하면 멋있지 않을까? 하면서 논리학에 대해 공부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아.
근데 커서 보니까, 이성과 논리는 생각보다 힘이 없더라.
어렸을 때는 '사람들은 모두 이성적이고 사실을 알게 되면 자신의 행동을 바꿀 거야!'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사람들은 이성 만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더라.
나 자신은 이성을 감성보다 중요시하고 객관적인 진실이 있다면 창피함, 분노 등을 억누르고 그 진실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거든.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다 나 같지 않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야.
예전에 조별 과제 하나를 맡았던 적이 있어. 나 포함 조원 5명이서 진행하는 거였는데, 다른 조원들은 쉬운 길로 가려 했어.
그런데 나는 내가 꼭 하고 싶었던 실험이 있었거든. 그걸 밀어붙였지. 나는 내가 그걸 진행했으니 책임을 전부 맡으려고 했어. 실험도 내가 혼자 다 진행하려 했고. 실험 계획서, 실험에 필요한 기재들, 실험 장소까지 내가 다 알아보고 찾았지. 내가 걔들에게 부탁했던 건 단 한 가지. 실험 대상자를 찾아 달라는 거였어.
나는 걔들에게 논리적으로 이 일을 하는 이유를 하나하나 다 설명했어. 왜 이 실험을 하는지, 실험을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뭔지. 어떻게 측정을 할 수 있는지 등등. 반론이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늘 말했지. 걔들은 늘 답이 없었어.
그러던 어느 날, 걔들이 내가 너무 독단적으로 진행한다고 했어. 나는 그 말에 대해 처음에는 분노했지만 곧 인정했어. 조별과제니까 결국에는 같이 하는 게 맞겠지. 이렇게 생각했거든. 나는 내 책임을 나눠주려고 했어.
걔들이 원한 건 그게 아니었어. 내가 진행하는 실험 자체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거야. 어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말은 한 마디도 안 하면서.
처음에 걔들이 한 핑계는 장소를 못 찾으니 실험을 못하겠다는 것이었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든 괜찮은 장소를 구해오자 실험에 대한 신뢰가 안 간다고 했어. 나는 내일 만나 직접 실험을 진행해보고 생각하자 했고. 직접 해보니 괜찮았어. 이대로 실험을 쭉 나가도 괜찮겠다 싶었지.
그리고 조원 4명이 전부 반대해서 실험은 엎어졌어.
미치는 줄 알았어. 앞에서는 한 마디도 안 하고 모여서 내 등 뒤에 칼을 찌르네?
한참 뒤에 마음이 진정되고, 부모님과 이야기를 하고 깨달았지. 난 너무 차가운 이성만 고집했던 거라는 것을.
세상의 겉모습은 이성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감성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몰랐던 거야.
중간 중간 어떻게든 걔들에게 명시적인 동의를 받았어야만 했어. 감성에 대해 조금이라도 신경 썼어야 했다고. 그걸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걔들끼리 진행한 실험은 아주 개같이 진행됐어. 대조군도 생각 안 하고, 막 표준편차가 80 나오는 자료가 나오고.
ㅋㅋ 지금 생각해도 웃겨. 자료 3개가 표준편차 30, 50, 80 이렇게 나왔던가? 그런데 실험 보고서에다 '유의미한 결과' 이렇게 적더라고.
미쳤냐고 물어보니까 '표준편차 80이 뭐가 문제임?' 이렇게 되묻는데 와 ㅋㅋㅋ
내가 미친 듯 화내며 그거 다 고쳐서 겨우 B맞았었지.
그때의 쓰디쓴 실패로 얻은 교훈은 2가지였어.
첫째, 세상에는 이성 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
둘째, 아무리 합리적인 결론이라 하더라도 상대가 듣고자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논리학에서 절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들이지.
나는 논리학은 취준생의 옷장에 걸려있는 양복 같다 생각해.
언젠가 필요할 거라 생각해 걸어두는데 그 때가 언젠지 모르고 영원히 안 올지도 몰라.
거기다 사용하기 위해서는 늘 빳빳이 다려 놓지 않으면 안 되고.
그런데 정작 웃긴 것은, 양복을 입고 면접에 간다 하더라도 꼭 취업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거야.
그리고 면접에서 떨어지는 이유의 대다수는 양복 때문이 아니지. 첫 인상을 잘못 심어줬거나, 상대 기분을 상하게 했거나, 그 외 이유도 수두룩해.
웃기지 않아? 언젠가 사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그 많은 자원을 투자했는데 실제로는 사용할 기회도 별로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는 것이.
그냥 교양 수준인 거야.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크게 나쁘지 않은.
나는 그 날 이후로 더 이상 논리학 책을 읽지 않아.
갤로그 레전드네 그냥 게임이나 하러 가세요
돌겜 접은지 꽤 됐는데;
크립키나 데이비슨, 퍼트남을 주로 파서 논리학도 파긴 했는데... 그거 유용성으로 파려면 헛수고 한 거지 사실. 애초에 논리학은 남을 설득하기 위한 거 아니라고? 그런 목적이었으면 수사학을 시작해서 논증 쪽으로 갔어야지. 다만 대륙이든 영미 쪽이든 논리학을 파야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도움이 되지.
괜히 들뢰즈나 지젝 파는 원생들도 논리학 기초 수업 청강하는 거 아니다.
그런 이름들을 내가 못 들어본걸로 봐 확실히 공부가 부족하긴 했던듯... 내 자만심 때문에 정말 비싼 교훈을 얻었음 ㅠㅠ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논리학이 흥미롭고 재미있지만 예전에 비해 많이 관심이 떨어졌다, 라고 생각하는데 본문에서 너무 단정적으로 적은 것 같음.
그 교훈 덕에 학문이나 취미를 유용성을 이유로 쫒아서는 안 된다는 것도 배웠음. 내가 먼저 발전해야 논리학이 내게 도움이 되는 건데 논리학을 배우면 내가 발전한다고 잘못 생각했었음. 혹시 책 추천해줄 수 있음? 꼭 논리학이 아니더라도 그냥 흥미롭게 본 책이라도.
논리학은 뭐랄까, 진짜 공부하기 위해서 파거나 흥미로 파는 건데... 솔직히 재미없잖아, 논리학? 그래서 공부 위주로 파서 조언하기가 힘드네. 그나마 하나 교양 서적으로 권하자면 '논리적 생각의 핵심 개념들'? 그나마 구할 수 있는 거라면야... 아니면 이해 못하더라도 논리학을 철학적으로 궁리한 책을 함 보겠다면 그레일링의 '철학적 논리학'이나 '거짓말쟁이의 역설' 같은 게 있긴 함. 그냥 보는 거지 공부하려면 빡세고.
제목만 봐도 피곤해지는 책들이네 ㅋㅋㅋ 나중에 한 번 찾아봐야겠다 답변 ㄳㄳ
논리를 남과 대화에서 이기려는 도구로써만 활용하니 나부라지는 거라 생각합니다. 이건 논리의 잘못이 아닌 그것의 쓰임새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네요. 님의 상처 받은 경험 역시 논리보단 감성의 작용이니까요. 논리는 사실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저도 이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칼을 잘못 들어 손이 베였다고 칼의 잘못이 아니듯이요.. 스스로 생각하고 통찰하며 자기 수련을 충분히 했다 생각했었지만, 여전히 저는 오만하고 배울게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지금은 더 이상 대화에서 상대를 꼭 설득시키려거나 혹은 상대가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는 것 같네요. 관계를 맺은 다음에야 상대가 나의 논리를 들어주는 것인데, 뛰어난 논리가 있어야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논리만으로 상대를 설득시키려고 하면 싸움만 일어날 뿐인데 말이죠.
근데 본문의 글 자체는 충분히 감정적으로 동화되는 일화였던 거 같아요. 논리라는 개념 특성상 절대적인 답안을 찾은 것 같은데 또 다시 막다른 길을 마주했을 때 드는 허망함이란.. 비약이지만 그래서 문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의 행동을 바라볼때 더더욱 엄격해지고 논리적으로 잘못된 점을 바라봐야 하는데.. 여전히 힘드네요.
그런데 그게 꼭 님의 문제만은 아닐 겁니다. 다수가 옳은 것은 아니니까요. 옳은 게 옳은 것임을 상기하면 감정적으로 받는 피로감이나 상처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저 스스로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네요.
논리학은 도구임. 도구를 어떻게 쓰느냐는 쓰는 사람에 달린거지
논쟁을 이기고 지는걸로 생각하는 것도 문제고.. 논리는 나의 힘 읽어보셈. 논리학 내용 자체는 가벼운데 얻어갈건 있을듯
유치했던 과거 생각이 최근까지도 남아 있었던듯. 답변 고마움
장애인
합리적이라 생각하지만 상대방이 따르지 않으면
뭔가 이상하지 않음? 이성을 움직이는 건 뭘까? 이성은 뭘까? 결국 이성의 동작의 원인은 감성임. 애초에 전제부터 잘못되었으니 그 위에 쌓은 게 헛수고일 수 밖에. 왜 다른 애들의 목적도 '학점을 잘 받는 거'라고 생각함? 뭐 표면적으로는 그렇다고 주장하겠지. 그러나 그 사람의 정신이 온전히 그 한 방향을 위해서, 마치 자석처럼 움직일까? 전혀. 그리고 데이비드슨 퍼트남 이름 한 번도 못 들어좠다면서 이성 운운하는 거 보면 저 독단적이라는 팀원들의 말도 일말의 진실은 포함하고 있을겅
이성 그 자체로는 존재하기만 할 뿐임.
참고로 이 글은 최대한 집약적으로 욱여넣기 위해서 큰 그림의 일부를 조금 잘라서 크게 펼치고 일반화해서 적용한 것이므로 화두에 불과함. 더 궁금하면 작접 파는 수 밖에.
ㅇㅇ 내가 잘못 이성과 감성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도 맞고 독단적으로 행동했던 것도 맞음. 글 자체도 너무 단정적으로 적은 것 같기도 함.
마지막 줄 표현은 확실하게 끝맺으려고 저렇게 적긴 했는데, 정확한 표현은 '예전에 비해 중요하게 논리를 쌓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음, 그래서 현재는 논리학 서적이 흥미롭지 않아 읽지 않음.'이었을 것 같음. 우매함의 봉우리에 있었던 것 같아 ㅋㅋ
이성과 감성은 분리되어 있는 게 아님. 네가 이성적으로 행동했다고 생각했겠지만 글만 봐도 굉장히 감정적임. 걔들이 잘했다는 뜻은 절대 아니지만, 나는 아주 이성적인 인간인데 세상 사람들은 나와 달리 감정에 휩싸여 있어서 충돌이 생긴다, 뭐 이런 오만 비슷한 것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음. 원래 자신과 타인의 욕구나 감정이 맞지 않으면 충돌이 생기는 거잖음.
ㅇㅇ 나도 대학교 생활에서 조별과제 저렇게 진행 안 됐으면 깨닫지 못했을 사실임. 나 스스로는 그렇지 않다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나도 저 조원들과 똑같더라고.
아마 다음에 조별 과제를 진행한다면 조원들의 이야기도 더 듣고, 그들의 동의도 받아내고 할 것 같음. 내가 너무 오만했어
이성은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
누구 말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쇼펜하우어 철학을 공부하는 세르멘 님이 한 말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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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ㅆㅇㅈ 근데 저 사건은 내 잘못도 커서; 조원들이 밉긴 한데 나 스스로 돌아볼 점도 많았다 생각함.
논리학을 남과의 언쟁에서 이기려는 수단으로써 활용할 수도 있지만 본인의 사고를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 쓰기에도 매우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배우는 의미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