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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작가의 책을 잘 읽지 않았다. 아름다운 미사여구로 점철된 문학을 별로 즐기지 않았기도 하고, 각종 문학상을 휩쓴 서구 거장들의 책을 놔두고 한국작가 책을 왜 보냐는 생각(편견일지도)이 컸기 때문인 듯하다.


그런데 어쩌다 이 책의 광고 문구를 보게 됐는데 그 내용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

외계인들이 쓴 인류에 관한 보고서. 인류는 욕심 때문에 서로 죽이는 미개 생명체라는 것이 외계인 사이 중론이다. 그런데 최근 인류의 독특한 행동이 보고되는데, 바로 ‘헌혈’이다. 외계인들은 인류가 이렇듯 이타적이고 아름다운 일을 할 리가 없다고 보고, 헌혈한 뒤에 받는 빵이라는 음식물에 무언가 비밀이 있을 거라며 연구하기 시작한다.

- 출판사 제공 책 소개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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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목록에서 가끔 보던 작가의 새 책이었는데 책 소개 내용이 병맛이지만 유쾌해서 재미있겠다 싶었다. 내가 접한 곽재식 작가의 책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사서 보니 단편소설 모음집이었고 총 열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돼 있었다. 첫 단편은 생각보다 분량이 짧긴 했지만 강렬했다. 뒤이어 다른 단편들을 계속해서 읽었고 흡인력이 강해서 쭉쭉 읽어 완독해 버렸다.


앞서 말했듯이 난 한국 작가의 책을 별로 읽지 않아서 배경지식이 없으면 공감하기 어려운 서구권의 얘기들만 보다가 모처럼 한국인으로서 공감할 만한 내용들이 나오는 책을 읽으니 새로웠다.



특히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당해봤을 관공서 사이트와 액티브 X의 횡포를 그린 단편에선 박장대소를 하며 읽었다. 액티브 X를 깔고, 회원가입을 하고, 하란 대로 다 했는데 어째서인지 먹통이 되고, 컴퓨터를 재부팅해 처음부터 다시 시도하고, 가까스로 공인인증서 인증을 통과해서 서류를 발급받아 출력하기까지의 과정만으로 한 편의 단편소설을 써냈다.



나도 이 고통스러운 일들을 수없이 겪었었지만 이걸로 소설을 쓸 생각은 전혀 못했다. 이런 일상적인 내용으로 소설 한 편을 뚝딱 써냈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이게 일반인과 작가의 차이인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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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열려있는 모든 브라우저를 닫습니다."라는 개 같은 소리를 하면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하도록 강요하는 대목에선 격한 공감은 물론이거니와 저자 스스로도 감정이입을 하고선 분노를 드러내며 쓴 게 보여서 웃음이 터졌다.


이외에도 한국인이거나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크게 공감할 여러 단편 이야기들을 간결하고 유쾌하게 풀고 있어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또 마냥 코믹하거나 병맛스런 글만 실린 것은 아니고 미스터리나 한국 근현대사 관련 꽤 진지한 단편도 있어서 저자의 글 쓰는 스펙트럼 폭이 상당히 넓다 싶었다.


반면 너무 뻔해서 애걔?.. 싶은 단편도 있기도 했다. 책 말미의 저자의 말에서 저자 스스로도 아쉽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느낀 단편들이 있다고 언급하기도 하니 이해할만하다. 다작을 하는데 모든 작품이 대단한 작가는 별로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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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전체적으론 다 재미있고 읽을만했다. 좋은 작가의 좋은 글을 만나 기분이 좋아지는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책이 많이 나온다면 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