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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글을 읽기 전에 먼저 용기 있게 감상평을 쓰고 이세카이로 떠난 어느 독붕이에게 조의를 표한다.


그는 비록 이 세상을 감당하지 못하고 박제가 되어버렸지만 그 천재성은 살아있기에 날개가 되어 팔짝팔짝 날아오를 것이다.






1. 임솔아 - 초파리 돌보기



어느 주부를 바라보는 딸의 이야기다. 주요 등장 인물은 지온과 치온인데 아마 자유와 치유(혹은 체온)을 암시하지 않을까.


한평생 잡다한 일을 하면서 살아왔지만 단순 노무직이기에 무경력이었던 주부는 이제 대학원에서 초파리 돌보는 일을 한다.


그러다가 어떤 사건을 기준으로 시름시름 앓는다. 그렇게 11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딸은 어머니가 아픈 원인을 그제서야 찾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어머니는 자신이 진행했던 초파리 실험에서 로열젤리(먹으면 여왕벌이 된다.)가 효과가 좋다는 걸 보고 치유가 된다.


물론 이 치유는 완전하지 않다. 어쩌면 그냥 딸이 쓰는 소설일 수도있고 실제 어머니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적어도 치유되었다.


아마 어머니가 아팠던 진짜 이유는 딸과 같이 잊어버리지 못하고 모든 것을 기억했기때문이 아닐까.



평가 : 괜찮았음. 소재 하나하나가 매듭처럼 묶여있어서 하나하나 다시 되돌아가야했지만 그래야했던 이유가 있었음. 대상 받을만함.





2. 김멜라 - 저녁놀



아주 좆같은 소설이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여성 동성애자 커플을 바라보는 모형 페니스(딜도)의 이야기니까.


동거하던 둘은 전동 딜도를 사게 된다. 독붕이와 해설은 이게 남성성을 암시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둘은 남성을 갈망한다는 줄거리가 되는데.


아무튼 즉홍적으로 샀던 딜도는 2년째 처박혀있게 되었다. 다시 꺼내진것도 짐정리하다가 우연히 나온거고 결론은 갖다 버리는 것이다.


분노한 딜도는 선언한다. 당신들은 자연적인 질서를 거부하니 당신들도 쓸모없긴 매한가지라고. 그러니 내가 먼저 당신들을 거부할거라고.



이런 스토리였으면 탈락했을 것이다. 작가도 중간에 마음이 바뀐다. 어느 비 내리던 날. 딜도는 안마기로서의 기능을 발견한다.


그렇게 다른 용도를 지닌 딜도는 과일과 채소가 그려진 안마기가 된다. 그러면서 등장인물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몰랐음을 알게 된다.


비가 그친다. 둘은 밖으로 나갔다. 새로운 용도로서 존재를 보장받은 딜도는 이제 그들을 증오하지 않는다.



평가 : 아슬아슬하게 좆같은 소설 테크트리를 타다가 '장마' 테크로 전환해서 겨우 살아남은 작품이다. 증오는 소모적인 감정이다. 우리 모두 자신이 가진 것을 한번 쯤 인정하고 다시 보도록 하자.





3. 김병운 - 기다릴때 우리가 하던 말



소감 말 안할거임. 난 LGBT까지는 개인의 권리라고 보지만 그 이상 뭔 이상한 성적 정체성 운운하는거 엄청 싫어함.


댁들도 최저임금받으면서 하루 12시간을 갖다버리면 성적 끌림이 없어질꺼예요.


부르주아지 새끼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독붕이와 나의 의견이 일치한다.)




4. 김지연 - 공원에서



본인은 정떡충이지만 82년생 김지영을 고평가하지만 그와 별개로 아주 개같은 소설이다. (작중에도 똑같은 표현이 등장한다.)


뭐 제딴에는 도덕적인 결함을 가진 여성이 법적인 피해를 입어서 당당해야하면서도 당당하지 못하는 그런걸 말하고싶었나본데.


같잖은 여성이 피해를 입었는데 남성은 무시한다. 82년생은 뭐 최소한 자료 찾아보고 있을법한 이야기 끄적거리고 있음.


근데 이 소설은 뭐임? 앞뒤가 안맞고 이미 비슷한 이야기에서 수십번 했던 소재들 어설프게 따라하는게 고작임.

사람이 많이 다니는데 어두운 공원이 존재할 수 있을까. 뭐 있겠지. 근데 거기를 술 취한 남성이 지나가는게 가능해요?


내가 용서할 수 없는건 다른 수상작들이 그래도 뭘 하긴 하는데 이 소설 주인공은 뭘 할 생각조차 안함.


내가 피해입었으니 니가 해줘 잉잉. 수도권에 거주하는 중산층의 자폐성을 알 수 있는 단편이었다.





5. 김혜진 - 미애



미애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싱글맘이다. 그들이 기존 거주자들에게서 배척받지 않을거라는 걸 확인하고서야 안심하는 모습은 서럽다.


그들은 기존 클럽에 합류하면서 '수여받는 위치'가 된다. 미애는 그 이면에 숨겨진 우월심리를 모르지는 않지만 그것이 필요하기에 받는다.


그 과정에서 미애는 살아가면서 필요한 여러 정보를 받고(저소득층은 정보 습득에도 불리하다.) 딸은 그들과 같이 교육을 받는다.


그렇다. 미애는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받아야한다. 그래서 180만원을 50일 뒤에 260만원으로 갚아야하는 사채까지 끌여들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어머니와 언니가 더 비참하게 살아간다는 것도 알게 된다.


돌아온 미애는 자신의 딸과 같이 지내던 친구가 사라진 것을 알고 충격받는다. 일행은 30분만에 아파트 단지 안에서 발견되지만 관계는 끝난다.



왜일까? 내 생각은 이렇다. 아랫층과의 철저하게 일방적인 교류에서만 가능하다. 아랫놈들이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건 용납해서는 안된다.


미애와 같이 지내던 선우는 클럽에 임대아파트 출신은 받으면 안된다고 주장하기까지한다. 아연실색한 클럽은 이를 거부한다.


하지만 미애는 그걸 거부하고 선우에게 화해를 요청하지만 미애는 자신의 편견을 확인했다면서 그를 거부한다.


욕을 하면서 돌아오는 미애에게 딸은 자신의 친구에게 편지를 쓰겠다고 한다. 어른들은 글러먹었지만 자식들은 아니다.


좋은 교육을 받은게 무쓸모는 아닌것같다.



평가 :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문학. 중산층 작가들 빈곤 코스프레 잉잉하는거 꼴보기싫었는데 이건 진짜였음. 나한테는 이게 대상감.





6. 서수진 - 골드러쉬



호주에 영주권 획득을 위해 이민간 진우는 7년간 멀쩡했던 적이 없었다.


비자를 얻기 위해 한인 농장주 밑에서 2년간 착취당하고 아내 서인의 이름으로 영주권을 발급받지만 아내는 바람이 났다.


왜냐고 물으니 내가 일만해서 얼마나 외로웠는지 아냐고 물었다. 참고로 소설 첫 부분에 캥거루를 쇠파이프로 내려치는게 묘사된다.



덕분에 결혼은 사실상 파장났다. 진우는 정이 다 떨어졌지만 영주권 갱신이 필요해서 무릎을 꿇어야했다.


그 이후 어찌어찌 몇년을 더 살았지만 서로간의 관계는 완전히 끝장났다. 서인은 채소를 가꾸지만 진우는 죽어도 그 채소로 만든건 먹지 않는다.


결국 서인은 채소 가꾸기를 포기하고 잡초가 무릎까지 자란다. 어느쪽이 더 끔찍한건지 진우는 알 수 없다.


서인은 이후에도 관계를 어떻게든 회복할려고 노력했지만 진우는 그것을 완강하게 거부한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절망이라는 감정조차도. 그는 그냥 집에 돌아가고싶을 뿐이다. 그 집은 한국과 호주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평가 : 슬프기 그지 없다. 금가루를 캐기 위하여갔지만 그건 일종의 사기극이었다. 그들은 한국을 버리고 왔지만 호주 역시 그들을 받아줄 이유는 없다.





7. 서이제 - 두개골의 안과 밖



우리가 살아오는 삶은 철저하게 타인을 짓밟아야만 기능할 수 있다. 여기서는 새가 그 매개체다.


조류 바이러스가 발생한다. 사람들은 가금류를 죽인다. 가금류를 죽이고 죽이지만 전염병이 사그라드는 대신 이상한 소문이 퍼진다.


변이 바이러스가 사람을 새로 만든다고. 사실인지는 알수 없다. 우리는 새를 잡아먹기 위해 살처분할 뿐이다.



닭은 닭은 닭은 닭은 닭은 닭은 닭은 닭은 닭은 닭은 닭은 닭은 닭은 닭은 닭은 닭은 닭은 닭은 닭은 닭은 닭은 닭은 닭은 닭은 닭은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우리는 그것을 기억하고 그들을 말하고싶어하지만 새는 사람처럼 말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한단말인가.


그런 와중에 기괴한 동영상이 퍼진다. 사람이 새로 변하는 모습이었다. 한편 화자는 글을 썼다가 지우지만 글을 지웠다는 사실까지는 지울 수 없다.



어느 날, 누군가가 살처분 현장에서 도망친다. 멀리멀리 도망치던 그를 지켜보던 사람은 그가 마치 새처럼 팔을 퍼덕이는것을 보게 된다.


그는 즉각 사살당한다. 그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새일 뿐이다.



평가 : 살아서는 새와 사람은 동일할 수 없다. 오로지 죽음을 통해서만 둘은 교집합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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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 독붕이는 왜 그렇게 젊은작가상에 가시 돋힌 말을 내세웠을까?


우리는 이미 답변을 알고 있다.


원래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도 사서 젊작상의 현위치를 좀 더 정확하게 알고 싶었는데 통장 잔고가 없어서 그만...


그렇다, 그는 가난하다. 아시다시피 요즘 시대에 현대 한국문학은 사실 사치스러운 취미다. 넷플릭스가 더 싸게 먹힌다.


하지만 그는 인간이고 싶다. 인간이기를 갈망했으나 그가 본 세상은 파시스트 인간이 아니라 빨갱이 돼지들뿐이었다.


그는 가금류 살처분 세상에서는 살아남을 수 있었으나 가축 살처분 세상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것을 깨닫고 차도에 뛰어들어 이세카이로 떠난게 아날까 싶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기억해야한다. 그의 마음을 알고 그의 환경을 깨달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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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조지 오웰의 처녀작으로 하층민의 생활을 분석한 르포르타주 "런던과 파리의 밑바닥 생활"을 읽어보시지 않겠습니까?


1970년대부터 한국어 번역본이 나온 띵작중의 띵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