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들어가기에 앞서, 이 글은 필자의 경험과 뇌피셜에 근거한 주장이라는 것을 짚고 넘어갈게.

내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각자의 주장은 나름의 근거가 있고 존중되어야 한다 생각해.

내 주장의 부족한 점에 대한 지적은 언제나 환영이야. 시작할게.


최근 독갤에 올라온 이런 질문이 올라왔었어.

'인터넷 신문이나 전공 서적을 읽는 것도 문학 작품을 읽는 것만큼 독해 능력을 키워줌?'

우선 이걸 먼저 짚고 갈게. 나는 '독해력'이라는 단어가 너무 포괄적이고 모호한 단어라 생각해.

소설을 이해하는데 쓰이는 독해력, 교양 서적을 이해하는데 쓰이는 독해력, 논설문을 이해하는데 쓰이는 독해력 등이 다 다르다는 거지.

내 책장에서 꺼낸 책들로 예를 들어볼게.


할 수 없이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다른 입구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하지만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다. 한 시간쯤 후 우리는 다시 바위더미 앞에 모여서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풀이 죽어버렸다. 

-이영도, 드래곤 라자 5권 127p


하지만 우선 평균이 얼마나 많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지, 그리고 아프리카 내에서도 국가 간 차이가 얼마나 큰지 다들 잘 알고 있지 않는가. 아프리카 국가들이 모두 뒤처지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 중에서도 5개국, 곧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리비아, 이집트는 기대 수명이 세계 평균인 72세보다 높다. 이들 나라의 기대 수명은 1970년의 스웨덴 수준이다.

-한스 로슬링, 팩트풀니스 243p


셋째 주석 : 유독 하나의 범주, 곧 세 번째 항 중에 있는 상호성의 범주와 관련해서는, 논리적 기능들의 표에서 그에 대응하는 선언적 판단 형식과의 상응함이, 여타의 범주들에서처럼 그렇게 뚜렷하게 드러나지가 않는다.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 1권 303p


드래곤 라자부터 볼까. 이 작품을 읽는데 가장 중요한 능력은 뭘까? 상상력이겠지. 

주위 풍경이 어떨지, 앞에 있는 바위더미의 생김새는 어떨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풀이 죽었다는데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등.

팩트풀니스는 어떤 능력이 필요할까? 난 이해력이라 생각해.

이 글이 쓸모가 있으려면 독자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과 새로 얻은 정보를 비교해보며 취사 선택하는 능력이 있어야겠지.

순수이성비판은? 이런 복잡한 글은 복합적인 능력을 필요로 한다 생각해.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단어를 쓴 이유가 무엇인지, 필자가 말하려는 것은 뭐고 내 기존의 생각과 어떻게 다른지 등.

이런 복잡한 능력이야 말로 진정한 '독해력'이 요구된다고 볼 수 있겠지.


그러면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어.

'그러면 한 종류의 책을 읽는 것은 다른 분류의 책을 읽는 것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거냐?'

이해를 돕기 위해 풀어 말하면,

'소설책만 읽는 사람이 교양 서적을 시도했을 때, 기존의 '독해력'이 새로운 책의 이해에 도움이 전혀 안 되나?'


이 질문에 답하자면, 도움이 되긴 하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부분'(독해력)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무슨 뜻이냐, 드래곤 라자와 팩트풀니스를 예로 들게.

드래곤 라자, 그 8권 짜리 책을 여러 번 읽은 사람은 당연히 책을 여러 번 읽어봤다 볼 수 있겠지?

그렇다면 그림 없는 활자를 오랜 시간 본다던지, 본문 내용에 대해 기존 자신의 생각들과 비교해 본다던지, 혹은 활자를 보며 무언가 상상한다던지 하는 능력이 책을 안 읽는 사람에 비해 훨씬 뛰어날 거야. 그렇다면 새로운 책을 대할 때도 책을 아예 안 읽는 사람보다 편하게 대할 수 있겠지.

요약하자면, 책을 자주 읽는 사람은 독서하며 키워진 '독해력' 때문에 새로운 책을 더 잘 읽는 것이 아니라, 독서하며 키워진 '독서에 대한 태도', '독서를 좀 더 편안하게 느끼는 마음' 덕분에 새로운 책을 더 잘 읽는 거라 생각해.


이제 처음의 논의로 돌아가 볼게.

'인터넷 신문이나 전공 서적을 읽는 것이 문학 작품만큼 독해력을 늘려주냐?' 라고 하는 질문에 나는 아니라고 답하고 싶어.

인터넷 신문이나 전공 서적이 더 못나기 때문이 아니야. 문학 작품과 그들이(인터넷 신문과 전공 서적 또한 요구하는 독해력이 다르겠지만) 발전시키고, 또한 요구하는 독해력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문학 작품을 자주 본다면 다른 문학 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더 쉬워질 거야. 인터넷 신문이나 전공 서적을 주로 본다면 그것들을 이해하는 것이 더 쉬워질 거고.

그렇기에 둘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고, 자기가 주로 읽고 싶은 책이 뭔지에 따라 읽어야 하는 책이 달라진다 생각해.


물론 상호 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는 있겠지.

그렇지만 그건 원카드를 주로 하던 사람이 포커로 넘어갔을 때 수준의 도움 정도밖에 안 된다고 생각해.

그러면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어.

'웹소설, 라노벨을 많이 읽는 사람이 문학 소설을 시도했을 때 별로 도움이 안 된단 말이냐?'

그 질문에 답하자면, 미안하지만, 그렇다고 생각해.

내 친구들 중에도 라노벨과 웹소설을 즐겨 읽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걔들은 그 수준에서 머무르고 그런 책들만 찾아 읽더라고.(여기서 말하는 수준이란 표현을 너무 고깝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 심슨 가족은 세익스피어의 연극에 비해 수준이 떨어진다고 표현할 때 그게 심슨 가족이 문학적인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니니까.)

만약 라노벨이나 웹소설을 주로 읽으면서 고전 소설 또한 찾아 읽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은 고전 소설에 대해 특별히 흥미가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해.

라노벨, 웹소설로 키워진 독해력이 고전 소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진 않았을 거라 생각하고.


지금까지의 주장을 요약해볼게.

1. 독해력은 하나의 능력이 아닌, 복합적인 능력을 의미하고 책마다 키워지는 독해력의 종류가 다르다.

2.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새로운 책을 더 쉽게 읽는 것은 독해력이 키워져서가 아닌, 독서를 대하는 태도가 발전했기 때문이다.

3. 한 종류의 책을 주로 읽는 것이 다른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크게 도움이 되진 않을 거다.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 궁금증이나 의견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