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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레고리를 구현하는 방식이 헐겁다는 생각이 든다. 화자가 딜도라는 건 참신하지만, '딜도를 사용하지 않는 레즈비언 커플'이라는 소재는 남성성이나 남근 중심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여성주의 소설에서 종종 차용되는 주제라는 점에서 진부하다. 딜도를 남성성이나 폭력성과 등치하는 건 표상적으로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문학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화자의 이름이 될 만큼 중요하게 다뤄지는 '무쓸모의 쓸모', 즉 배제된 존재를 호명하는 '무용성의 유용성'은 딜도가 책을 읽는 작위적인 상황에서 '재인용'의 방식으로 제시된다. 플롯과 인물을 통해 자연스럽게 구현되어야 할 핵심적인 메시지가 갑작스러운 재인용을 통해 제시된다는 건, 작품이 주제 의식을 온전히 담을 수 없을 만큼 엉성하게 짜여 있다는 걸 반증한다. 

  

  모텔을 '도서관'으로, 섹스를 '책 읽기'로 바꿔 부르는 장면은 언어를 매개로 하는 사회와 개인의 권력 관계를 보여주고, 성 엄숙주의와 이성애주의의 작동 양태를 폭로한다. 그 대안으로 명명과 호명을 통한 (박상영의 소설에서 HIV가 카일라라는 애칭으로 등장하는 것처럼) 탈억압의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좋았다. 다만 그 방식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회적 확장의 여지가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명확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딜도를 본래 목적이 아닌 안마기로 쓰기로 하면서 남성성을 긍정하거나 아예 배제하는 선택지 대신, 앞서 제시한 '무용성의 유용성'이라는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건 영리한 선택이고, 더 나아가 수상의 근거로 보인다. 하지만 이 역시 주디스 버틀러가 제시한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담론, 즉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분 자체를 해체하는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남성성과 여성성이 존재한다는 이분법적 기반 위에서, 남성성을 물질화해서 표현하니 소설의 담론이 얕고 유치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딜도가 화자로 등장했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을지 모른다. 

 

  딜도는 흥미로운 물건이다. 페니스와 같은 모양으로 생겼고, 성적 흥분을 주면서도 정작 페니스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의의라고 할 수 있는 재생산 기능은 없다. 딜도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쾌락을 인간과 도구 사이의 쾌락으로 바꾸지만, 때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쾌락을 매개하는 도구로 쓰인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그러니까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자위용 딜도와 섹스할 때의 딜도는 어떻게 다른가? 질을 손으로 애무하는 것과 딜도로 애무하는 건 본질적으로 다른 행동인가? 따위의 질문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