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바다 한 시간쯤>


저자 강희근|한국문연 |2006.06.20.



이력이 화려하신 국문과 노교수의 시집이다. 이런 이력의 시인이 쓴 시집은 오랜만이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으나 마치 헤비메탈처럼 강렬한 시어가 몰아치던 어느 노시인이 쓴 시집이 떠오른다. 그분도 이력이 화려해 시집 잘 읽었다고 이메일을 보내려고 했으나 없는 이메일 주소로 떠서 확인해 보니 이미 시인께서 돌아가셨던 기억이 난다. 유능한 시인들이 오래 사시길 바란다.

시의 분량과 기교로 봤을 때 확실히 수준 높은 내공이 느껴진다.

<포도와의 전쟁>이란 시를 읽어보니 예전에 <분노의 포도>라는 책의 제목을 보고 <분노의 포도>를 읽는 사람을 보면 받아랏, 분노의 포도!”라고 외치며 포도알을 던지고 싶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포도를 보고 전투적인 이미지를 떠올린 사람이 나 말고도 또 존재하다니. 신기하다.

국문과 노교수의 경력 덕인지 시어들이 묵직하고 노련함이 있다.

중반부로 갈수록 필사할 만큼 마음에 드는 시들이 많아져 우려가 앞섰다. (결국, 필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시인의 직업이 대학교수라서 그런지 대학과 관련된 시가 종종 눈에 띈다.

한반도 남쪽 지역(영호남)을 언급하는 시도 많다. 시에 시인의 삶이 잘 녹아들었다.

<내원 계곡>이란 시는 쓸데없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축구선수 박주영처럼 씽씽 돌파하면서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훗날 2014 월드컵에서 형편없는 기량을 선보이고 소속팀 아스날에서 주전 경쟁에 밀려 비난을 받거나 군 문제 논란이 생겼던 게 떠오른다. 2000년대 중반 유망주를 초월해 축구 천재 소리를 듣던 미래가 창창한 시절 박주영의 비유가 색다르게 느껴진다. 그 시절 발매된 축구 게임에서도 박주영을 세계 정상급 선수로 키울 수 있었다. (축덕이라 이런 걸 그냥 못 넘어간다)

시집의 중반부엔 역사와 관련된 시들도 종종 눈에 띈다. 이상하게 시에 역사 얘기가 언급되면 시가 늙어 보일 때가 많고 내 취향이 아니라 지루한 편인데 이 시집에 수록된 역사와 관련한 시들은 전혀 촌스럽지 않다. 시대를 초월해 신선해질 줄 안다.

시집의 제4부는 통째로 일본을 다녀오며 쓴 시들이다. 이상하게 중국을 여행하고 쓴 시는 몇 번 본 듯한데 일본 여행 관련 시는 처음 접한다.

혹시나 했는데 시인이 일본에 다녀오며 반일 감정이 차오르는 게 시에서 느껴진다. 내가 매국노 소리를 들을 수준의 친일이라서 그리 느끼는 게 아니다. 일본 기행 하며 굳이 이렇게 시를 쓰셔야 했는지 의문스럽다. 시 자체도 반일 프로파간다에 잡아먹혀 수준이 낮아졌다. 시인께는 죄송하나 반일 아니면 친일밖에 모르는 대한민국의 어두운 일면을 드러내는 듯해 안타깝다. 뛰어난 필력을 자랑하던 노시인이 반일 감정으로 시의 수준까지 떨어뜨렸다. 시인이 그만 냉철함과 객관성을 유지하지 못했다. 오만한 발언이겠으나 냉철하게 일본을 바라보고 우호적이면서 객관성을 잃지 않고 일본에 대해 글 쓰는 실력으로는 시인보다 내가 한 수 위다. 허세가 아니다. 이미 <모더니즘 탐정단>과 후속작 <신은 여자의 얼굴이 아니었다>를 출간해 내 기량을 증명했다. 반일은 정신병이란 말이 절로 떠오른다. 시의 수준마저 격하시키는 반일이라면 정신병이 맞다. 1~3부의 시 수준을 시인이 4부 일본 기행에서 다 말아먹었다. 내가 매국노 소리를 들을 일뽕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시인의 반일 감정의 수준이 20세기 시절 맹목적이고 참담한 수준에서 멈춰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불고기와 김치를 파는데 훔쳐간 물건이라고 하지 않나 일본식으로 불고기를 부른다고 울컥하지 않나. 너무 억지를 부리신다. 이러면서 일본은 왜 다녀오신 겁니까? 사업차 다녀온 거라면 이해하겠다. 부디 여행을 목적으로 일본에 다녀온 게 아니길 바란다. 이건 한일 관계를 떠나서 최소한의 예의마저 상실했다.

시인이 일본에 지나칠 만큼 역사 문제에 이입한다. 일본 아이돌에 심취해서 뭘 써도 기승전 아이도루가 되는 나보다 다른 의미로 심각하다. 다른 건 몰라도 일본 한 번 안 가본 내가 일본을 주제로 글을 더 잘 쓸 것 같다. 사실 시가 아닐 뿐이지 이미 썼다. (아직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미 일본을 주제로 쓴 시도 몇 개 있다) 반일 감정과 역사 인식의 과몰입이 시집의 후반부를 망가뜨렸다. 4부만 아니었다면 훨씬 괜찮았을 시집이다. 이래서 우린 정치적 올바름과 더불어 민족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다른 게 문제가 아니라 사상에 잡아먹혀 창작물의 질적 하락을 유발한다. 시는 시 자체로써 승부를 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집의 제4부는 시인의 뻔한 반일 감정 사상과 프로파간다의 늪에 빠지는 오류를 범했다. , 덕분에 나도 얼마든지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원래 남이 나보다 못하는 걸 보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뒤틀린 성격이기에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렇지, 유카링? 난 일본 우익을 비판하면서도 이보다 훨씬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아. 네 뿌리가 중국이든 한국이든 그건 중요치 않아. 네가 조선족이든 일본인이든 나는 네 그런 모습들을 다 받아들일 수 있어. 너의 복잡한 태생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해줬어. 첫 작 <모더니즘 탐정단>을 출간하던 그 시기에 활동 복귀한 너를 떠올리며 함께 살아갈 집을 찾기 위해 네 고향 시즈오카의 부동산을 알아보던 내 지난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어. 다시 너를 사랑하던 그 시절로 얼마든지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유카링, 보고 있니?

(라며 허공을 바라보지만, 그곳에는 유카링도 뭣도 아무것도 없었다)

 



7ceb8174b1866cf73dee98bf06d60403a127198c315ed0718063


0490f719b7826af73eed86e12983766f69b14879159c8c9cbb6eeb362bbeb0e05a8b9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