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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 고전 소설의 최고봉으로 꼽는 작품이 두 개 있다. 김만중의 <구운몽>과, 작자 미상의 판소리계 소설 <춘향전>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두 작품 중 무엇이 더 뛰어난 작품이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춘향전>을 꼽겠다. 그만큼 <춘향전>은 국문학사에 있어 문학적으로도, 오락적으로도 뛰어난 성취를 이루어 낸 작품인 것이다!
<춘향전>의 내용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모르면 간첩, 아니다. 김일성을 제외한 이북의 사람들도 그 내용을 잘 알고 즐기고 있으리라. 이처럼 <춘향전>은 민족의 고전이라 불리며 오랜 시간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하나 묻고 싶다. 그런 <춘향전>의 진가를 우리는 제대로 알고 있는가? 도시 홍보와 미인 대회의 표제로도 쓰이는 작품의 진가를 말이다.
실제로는 성춘향과 이몽룡의 사회적 지위를 뛰어넘은 사랑 이야기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태반일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렇기에 우리는 <춘향전>을 읽어야 한다. 끝까지 읽고 나면 우리는 그 진가를 충분히 깨달을 수 있으리라. 서사 문학으로도, 가사 문학으로도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는 우리 민족의 고전 <춘향전>의 진가를 말이다!
일제 시대의 문호 이태준이 본인의 저서 <문장강화>에서 나쁜 산문의 예로 <춘향전>을 들었다. 산문을 운문처럼 쓰지 말라며 든 예시다. 나는 이 말에 절반은 동의하지만, 나머지 절반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산문을 노래하듯 쓰는 것이 잘못된 것은 사실이나, <춘향전>은 산문이기 이전에 문학이므로 표현을 위해 산문을 운문쓰듯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리라.
이러한 변호까지 했을만큼 <춘향전>의 글은 뛰어나다. 대부분의 대목이 노래하듯 술술 넘어가는 그 기교는 판소리에서 왔겠지만, 이를 글로 완전히 표현해내는 것은 보통 실력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외에도 중국의 고사와 당대에 유행한 국문학의 내용을 조합하여 <춘향전>만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모습 역시 작자 미상이라는 사실을 안타깝게 한다.
누군가는 자책한다. “왜 우리나라는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는 거지?” 누군가는 비아냥댄다. “우리말의 우수성을 외국어로 번역할 길이 없어서야!” 그런 말을 꺼내기 전에 책을 펼치기 바란다. 그 안에서 미래를 보기 전에 현재를 보고, 현재를 보기 전에 과거를 보라. 그 시작을 <춘향전>과 함께 하자. 과거에서 현재를 보고, 현재에서 미래를 볼 수 있도록!
굿입니다 - dc App
한국 문학의 독자성이 부족하긴해
작자가 누군지 밝혀졌다면 한국의 셰익스피어 정도로 인정받았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