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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숭배와 재주술화


막스 베버는 종교적 심성에서 세속적 합리주의로의 전환이 ‘탈주술화’를 불러왔으며, 이를 근대의 특징이라 꼽았다. 그러나 베버는 근대의 ‘재주술화’ 과정에도 주목했다. 루이 15세 때 세운 전통 종교 신전이 프랑스 혁명 이후 정치종교의 신전으로 탈바꿈한 팡테옹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탈주술화는 재주술화의 과정이기도 했다. 전사자 숭배의 신화가 프랑스혁명과 더불어 시작되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가해자에서 희생자로


역사 속 실재의 세계에서 가해자였던 이들이 상상 속 기억의 세계에서 희생자로 둔갑하는 일은 흔하다. 이탈리아인들도 자신들을 파시스트의 희생자라고 생각했다. 파시즘 바깥에서 강요한 정치 이념일 뿐, ‘진정한’ 이탈리아에는 생소할 수밖에 없는 이념이라고 여겼다. 그들에게 이탈리아 파시즘은 독일 나치즘과 비교하면 유순하기 짝이 없고, 모든 도덕적 끔찍함이나 물리적 잔학행위는 독일군이나 마약중독자, 동성애자, 사디스트 들이 저지른 것이었다. 한마디로 ‘좋은 이탈리아인’과 ‘나쁜 파시스트’는 반드시 구분되어야 하며, 좋은 이탈리아인인 보통 사람들에게 파시스트들의 잔학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거나 죄를 추궁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전후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은 이렇게 과거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 지워졌다. 이탈리아의 뉘른베르크는 애당초 불가능했던 것이다.


‘세계 유일의 피폭국’인 일본의 경우 가해의 역사가 피해의 기억으로 바뀌기에 더 유리한 조건이었다. 일본인이 인류 역사에서 유일한 원자폭탄 희생자였다는 자명한 사실이 일본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희생을 자국의 전쟁범죄와 가해행위를 상쇄하고도 남는 희생으로 여기게끔 만들었다. 그들에게 아우슈비츠와 더불어 히로시마는 인간이 저지른 가장 끔찍한 범죄행위의 상징이었다. 때마침 도쿄 전범재판의 인도인 판사 라다비노드 팔(Radhabinod Pal)은 미국의 원폭 투하야말로 나치의 전쟁범죄에 가장 근접한 잔학행위라고 말했다. 




경쟁하는 희생자의식


1990년대 이후 민족주의적 영웅 숭배에서 희생자를 신성화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간 기억 문화는 ‘홀로코스트의 코즈모폴리턴화’라는 한마디로 압축되기도 한다. 자기 민족이야말로 진정한 희생자였다고 강조하는 거의 모든 기억이 홀로코스트를 참조와 비교의 준거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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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유대계 지식인은 이런 사례들이 홀로코스트를 너무 사소하게 느끼도록 만든다고 불평했지만, 홀로코스트의 코즈모폴리턴화는 막을 수 없었다. 미국의 보수 기독교도들은 낙태의 합법화를 ‘미국의 홀로코스트’로 규정했고, 동물 보호론자들은 모피 농장에서 동물을 대상으로 ‘홀로코스트’가 벌어지고 있다고 흥분했다. 게이 운동가들은 사회의 무관심 속에 ‘에이즈에 의한 홀로코스트’가 일어나고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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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계 폴란드인 역사가 비톨트 쿨라(Witold Kula)는 1980년대 초 어느 날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예전에는 유대인들이 가진 돈과 자질, 지위 그리고 국제적인 연줄 때문에 그들을 질시했다면, 오늘날에는 강제수용소의 시체 소각로 때문에 유대인들을 질시한다.”


누가 더 큰 희생자였는가를 놓고 경쟁하는 21세기 지구적 기억 공간의 현실을 이만큼 섬뜩하게 예견했다니, 대가는 대가다. 




살아남은 자의 무게 


안동원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직후 기독교청년회(YMCA)의 후원으로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났다. 태극서관에서 발간한 <세계일주기-붕정십만리>가 바로 그 여행 기록이다.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이 여행기에는 그가 런던에서 뜻밖의 봉변을 당한 일이 나와 있다. 한 영국인이 “유, 코리안?”하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다짜고짜 “빠가야로, 빠가야로”하면서 때릴 듯이 달려들더라는 것이다. 자신은 ‘쨉’이 아니라 한국인이라고 항변했지만, 그 영국인은 한국 놈이 더 나쁘다며 막무가내였다. 알고 보니 그는 일본군이 싱가포르를 함락할 당시 사로잡혀 포로수용소에서 3년을 보낸 영국군 포로 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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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 포로들이 수용소에서 늘 마주치던 상대는 일본군 지휘부가 아니라 현장의 조선인 간수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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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가해자가 민족의 이름으로 희생자 집단에 숨어 희생자로 둔갑하는 기억의 마술은 위험한 속임수다. 식민지 피지배 민족 혹은 피점령 국가의 일원이었다는 이유로 개인의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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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로 동원되었다고는 하지만, 일본군 ‘육군 특별지원병제도’에 지원한 조선인 경쟁률이 1938년 7.3 대 1에서 1942년 62.4 대 1, 1943년 48.1 대 1로 치솟았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용서하는 자, 용서받는 자 


그런데 ‘국민의 한 사람’인 나는 그들의 사과를 받아들일 수도 용서할 수도 없다. 그들의 행태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는 하지만, 그들이 사과할 정도로 나에게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게는 대한항공의 사무장이나 광고대행사 임직원을 대신해서 그들을 용서할 권한도 없다. 


조씨 자매가 국민이라는 익명의 다수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도 우습지만, 누군가 나서서 ‘다 같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을 용서해주겠다고 한다면 더 황당할 것이다. 그 누군가가 설혹 국민의 대표라 해도 결코 용서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 


항상 자기보다 더 큰 권력을 무서워해야 한다는 힘의 논리에 익숙한 이 작은 권력자들은 이번에도 더 큰 권력에 머리를 숙였을 뿐이다.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되는 공권력을 의식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에필로그


한나 아렌트는 단지 독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임을 묻는 ‘집합적 유죄’라는 개념에 단호하게 반대했다. 독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묻는다면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강제수용소로 보낸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논리적으로 다를 바 없다는 게 아렌트의 항변이었다.


그러나 기억 전쟁에서는 ‘집합적 유죄’의 논리로 가해 민족 전부를 단죄하거나 피해 민족 모두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집단 심성이 그야말로 완강하다. 독일의 전후 세대에게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임을 묻거나 일본의 전후 세대에게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벌어진다. 이유는 그들이 독일인 혹은 일본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스라엘이나 폴란드, 한국의 전후 세대는 참으로 떳떳하다. 희생자 민족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강의 도중 학생들한테서도 그런 태도를 발견할 때가 적지 않다.


그때마다 나는 학생들에게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양민 학살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지를 묻는다. 베트남전쟁이 끝나고도 20여 년이 지나 태어난 세대이니, 까마득한 옛날 일을 책임질 수 없다고 답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면 나는 다시 묻는다. “베트남전쟁에서 벌어진 한국군의 잔학행위에 대해 자네들은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왜 1945년 이후에 태어난 일본의 전후 세대에게는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끝난 일본 제국주의의 잔학한 통치에 대한 책임을 묻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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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의 실마리는 과거에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과 과거를 기억할 책임을 구분하는 데서 찾을 있다는 생각이다. 실존적으로 전후 세대는 과거에 벌어진 일에 대해 책임이 없다. 그러나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는 지금 여기의 문제이니, 전적으로 전후 세대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