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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외수가 어제 자로 별세했다.


나는 이외수라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이중적인 인간이라던가 화천군 세금을 꿀단지처럼 퍼먹고 살던 어용 지식인이라는 정체성 이전에


그의 책이 정말 끔찍하게 나와 맞지 않던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가 해방문학으로 점철된 국내 문학계에 톡 쏘는 사이다 같은 역할을 자처했다는 평론가들의 의미부여와 별개로


내가 느낀 이외수의 소설은 사회와 단절되어 현실감각을 상실한 글쟁이 특유의 나이브함으로 가득했고


읽기 힘든 수준의 개연성 파탄과 순수를 향한 교조주의를 보고 있자면 절로 ‘나무야 미안해’를 읊조리게 될 수 밖에 없었다.


군대 이동도서관에서 잠깐 펴본 그의 베스트샐러 수필 하악하악은 특히 그랬다.


밈을 공부해서 쓰는 것 처럼 힙한 척하려는 인위적 불협화음은 이게 돈 주고 팔 수 있는 물건인가 싶은 얕은 감성과 섞여


어지간히 똥독 오른 이상한 책도 꾸역꾸역 잘 읽던 나를 반절도 못 읽고 포기하게끔 만들었다.



그런 그가 대중적 셀럽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은 아마도 특유의 기인 콘셉트가 주효하지 않았을까 싶다.


역술인처럼 길게 늘어뜨린 장발과 멋지게 다듬은 수염은 이외수라는 사람의 비규격적인 이미지를 구체화했고


때마침 불던 트위터 SNS 열풍이 그 허상을 폭발적으로 부풀리기 시작했다.


글 밥 먹고 살면 뭔가 지식인 대접을 해주던 당시의 분위기와 맞물려


자유인 이외수, 할 말은 하는 살아있는 양심 이외수, 기인 이외수는 틈만 나면 공중파 방송에 출연해 대중적 인지도를 쌓는다.


그는 그렇게 한국갤럽 기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1위가 된다.



문학적으로 큰 발자취를 남겼다기엔 인정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상업적 재미만 따진다 한들 제대로 제작된 2차 창작 컨탠츠가 없다.


요즘 시대로 따지면 럭키 염따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데


(힙합 가수가 노래보다 밈과 티셔츠를 많이 팔아서 유명세를 얻었던 사례)


유명한 것으로 유명해진 대문호 이외수는 문학 관광 마을을 추진하던 화천군 군수의 제의를 받고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후 이외수는 75억을 쏟아부어 만든 문학관에 입주해 요트도 사고 싱글벙글 폼나는 라이프 스타일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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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억 짜리 문학관)


당연한 얘기지만 후학을 키워내는 것도 아니고 관광객 오면 노래 좀 부르다 이따금 트위터에 정치 얘기하는 것이 고작이었기에


‘돌에게도 생명과 감정이 있습니다.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지 마세요’라던지


한국 축구 국가대표가 경기에서 좀 졌다고 ‘세월호처럼 침몰했다’든지 미친 소리를 하며 감성마을의 이미지를 주기적으로 초토화 하곤 했지만.




그러나 개중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은 혼외자 양육비 소송이었다.


강제로 양육비 포기각서를 쓰게 했다는 주장과 함께 외도로 낳은 아이의 밀린 양육비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월 50만 원을 줬느니 마느니 하는 일련의 법정 공방은 힙하고 호감적이었던 이외수의 기인 이미지를 완전히 박살 내고 만다.


아내는 졸혼이라는 명목으로 떠나버렸고(지금은 간병을 위해 돌아옴)


이후는 으레 그렇듯 조X 수호도 하고 문XX 찬양도 하다가 특정 대선 후보 지지를 마지막 대외 소통으로 병환이 악화하여 세상을 뜨게 된다.



이외수는 눈을 감는 순간 본인의 인생을 돌이켜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되는대로, 욕망대로 살다 운이 좋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으니 그 자체로 충만감을 느꼈을까?


아니면 반평생을 기만적이게 자기를 포장해왔던 것에 대한 허무함이 앞섰을까?


이 정도면 최선을 다했다 믿고 받아들이는 초연한 죽음은 아니었을까?


당연히 나는 모른다.


이외수는 솔직히 말해 비겁한 인간이다.


책임 앞에서 도망치기 바빴고 크롬 은박지처럼 자기를 번쩍번쩍 과시했지만 고작해야 SNS 팔로워일 뿐,


속은 텅 비어 실질적 권력은 제대로 쥐어본 적 없던 사람이다.


외로움에 고통받고 관심을 갈구하던 나약한 인간 이외수.


그의 마지막에 유독 감상적이게 되는 것은 초인이 아닌 내 입장에서 초인이 되지 못한 채 떠나는 그의 뒷모습에 내 미래를 투영하게 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