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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항-문.. 아니 학문이 있도다. 


수학, 물리학, 공학 등등이 존재하는 궁극적 목표는 결국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이해하고 잘 살아보겠다는 것 아닐까 하노라. 


이건 뭐 학문 뿐 아니라,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의 목적이기도 하겠지. 


삶. 목적도 영문도 듀토리얼도 없이 주어진, 단 한 번의 기회. 

어지간해선 어리버리 헛지랄 하다 날려버릴 가능성이 몹시 높은 

이 단판의 기회를 낭비하지 않으려는 잔머리들의 누적과 총합이 곧 학문이 아닐까 하노라.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많고 많은 학문 중에 '인생 자체'에 대한 학문은 없다는 것이노라. 



이해야 되지.

삶의 양태란 학문적 정합이 불가능할 정도로 다양하고 주관적이노라. 

삶의 목적이든 가장 바람직한 방법론이든, 이는 시대와 당대 인간의 수준에 따라 

숨 가쁘게 변화해왔고, 어찌 보면 이 난잡한 다양성과 체계화할 수 없음이 

인류의 삶을 인간 외 다른 생명의 그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의미 있는 것이 되게 한 조건이었노라. 


삶의 정석, 전형, 완벽한 모범 답안을 원하는가?

하지만 천둥벌거숭이마냥 뛰댕기다 방금 싼 지 똥을 퍼먹은 혀로 주인 볼을 핥는 똥강아지의 자태가 박제된 명견보다 싱그럽고

수챗구멍서 홀씨를 피워올린 민들레 한 송이의 현재가 신화 속 황금꽃 보다 더 찬란하며, 

오늘 왠지 나한테만 상냥해준 편의점 알바 아가씨의 눈웃음이 하드 속 데이터로 존재하는 전세계의 헐벗은 수천 미녀보다 우릴 행복하게 하는 법이나니, 


우리 인간이 그토록 잘 살아내길 원하는 것이자, 생존의 목적 그 자체인 '삶'은

포르말린과 굳은 잉크 냄새로 가득한 학문적 방법론으론 도저히 잡을 수 없는 생물이로다. 



그런데 또 재미있는 건, 저 신기루 같은 '바람직한 삶의 모범에 대한 학문', 내 맘대로 이름 붙이면 '삶학'이라 할 학문이 

존내 예전부터 존재했었다는 것이로다. 


이 삶학은 곧 '이야기'노라. 나아가 '소설'이기도 하징. 


고래로부터 지금까지, 


인간들 중에서 저 포착하기 힘든 천갈래 만갈래 이지러진 '바람직한 삶의 맥락과 전형'을 잡아채고 꿰뚫어볼 줄 알았던, 

겨울밤 아랫목의 수많은 할머니들, 장님들, 무기보단 리라를 들어야 했던 약골들, 무당들과 간질병자들, 근시와 약시들, 

룸펜과 패배자들, 난봉꾼이자 불신자였다가 회심자가 된 이들, 엉망진창이 된 본인의 삶에 대한 면죄나 핑계가 필요했던 이들, 

실제 세상에 만족할 수 없는 아귀 같은 뱃구레를 가졌으나 원하는 세상을 건설할 능력은 없는 바보들은, 


누가 시켜서든 그냥 하고 싶어서든 자신의 삶을 바쳐 '이야기'라는 방법론을 통해 

증명도 불가능하고 보수나 명예도 따라오지 않는 '삶'이라는 대상을 연구해 왔고 이를 구전과 문자로 남겼노라. 


그거시 문학이고 소설이로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이야기 꾼들과 작가들이 

다양성과 주관, 열등감과 아쉬움과 비겁한 변명, 고집과 아집 등등 

온갖 잡스럽고 치졸하고 우스운 동기들로 삶을 사는 대신 삶을 관조하고 생각해 만들어낸 삶 자체에 대한 독자연구들이 

누적되고 쌓이고 반복되어 현재에 이르렀으며, 


이는 다른 삶, 보다 나은 삶을 원하거나

'나'라는 천형의 감옥 밖 타인의 삶을 이해하길 바라는 읽는 자들에게 


지루한 수업 속, 선생들의 닳아빠진 우스개 예화 하나가 그러하듯, 


'삶에 대한 완벽한 통찰'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읽기 전보단 나아진 통찰'을 확실히 제공하여 주는 도다. 



그리하여 다시 말하건데, 소설은 곧 '삶의 학문'이란 불가능한 목적을 향해 날아간 수천 수억의 삶들의, 

가장 아름답게 낙하한 포물선으로 그려진, 언젠가 우리가 이 불가해한 삶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낙관의 무지개 같은 것이로다. 



그러니 소설 효용성 충들은 벌어진 항-문을 응깃 닫고 

이청준과 코맥 매카시와 도끼와 오웰과 미시마 유키오 등을 경건한 마음으로 읽고 또 읽으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