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에 의하면 18세기를 지나며 점점 실용적인 지식에 대한 요구가 가속화됨. 프랑스혁명으로 신사 문화가 박살 났고 기계가 발달했기 때문.

한국은 그걸 더 압축적으로 급격하게 겪었지. 중1고딩들 한국사 배울 때 유교 좆까 실학자들 최고ㅜㅜ 이러는 것도 어느정도 비슷한 맥락이 아닌가 함. 물론 조선 말기 성리학은 존나 고이고 썩은건 맞음ㅇㅇ

암튼 러셀은 말함.

"이제 지식은 그 자체로 좋은 것, 혹은 폭넓고 인간적인 인생관을 세우는 수단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전문적 기능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러셀은 직접적 실용성뿐만 아니라 간접적 실용성도 있다고 얘기함. 세계를 조금이라도 개선하려면 간접성 실용성을 더 가르치라는게 러셀좌의 생각임.

독갤의 주기적 떡밥인 독서무용론,소설무용론을 보고 있노라면 러셀의 얘기가 번뜩 떠오른단 말이디.

조센징들은 뭘하든간에 효용을 존나게들 찾아대는데... 다수의 갤러들이 택하는 "응 난 그냥 재밌어서 읽는거야~" 전략은 스스로는 납득될지 몰라도 어그로들한텐 할말없는 쿨찐 취급받기 십상임.

독서의 즐거움을 모르는 어그로들을 무시해버리겠다면 상관없다만...

만일 반박을 하고 싶다면 다음부턴 영국 신사답게 품위있는 태도로 간접성 실용성을 들먹여보는건 어떨까?

"좁은 의미의 실용적 교육은 인간의 기능뿐 아니라 인간의 목적도 교육되어야 한다는 점을 무시한다."

"'무용한' 지식의 가장 중요한 이점은 아마도 숙고하는 습관을 조성해 준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것에만 한정된 생활은 언젠가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보다 큰 우주를 향하여 마음의 창을 활짝 열어야 인생의 비극적인 단면을 이겨 나갈 수 있다."

"개인적인 불행이든 공적인 불행이든, 의지와 지성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극복될 수 있다. 의지에는 악을 피하고 비현실적인 해결책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가 포함된다. 지성에는 그 악을 이해하고, 치유가 가능하다면 치유책을 찾아내고, 만일 불가능하다면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되 그것을 벗어난 다른 영역, 다른 시대, 행성 간의 공간에 놓인 심연들에는 무엇이 놓여 있나를 되돌아봄으로써 그 악을 참고 살만한 것으로 만드는 일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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