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외수를 좋아했다. 에세이 등을 제외하고 구할 수 있는 모든 소설을 읽었던 유일한 작가였다. 지금의 나를 태어나게 해주고 내게 가장 영향을 끼친 작가였다. 작가의 이름만 보고 작품을 읽을 수 있었던 단 한 명이었다.
세상 그 누구보다 극단의 순수함을 추구하는 이외수의 작품 세계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꿈꾸는 식물이자 굶주린 들개가 되었고 훈장을 새긴 채 벽오금학도 너머의 세계로 떠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외수라는 이름이 지나치게 유명해졌다. 소설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장외인간을 읽은 후 작가 이외수는 매너리즘에 빠졌으며 완전변태와 보복대행전문 주식회사는 이외수라는 이름값을 살려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내가 알던 소설가로서의 이외수는 오래전에 죽었다고 생각했다.
차마 사람들 앞에서 소설가 이외수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저 소심하게 들개 같은 소설을 추천할 수 있는 게 고작이었다.
한동안 이외수를 잊고 살았다. 작품은 기억해도 작가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일부러 회피했다. 괴물을 쓴 이후의 이외수는 그저 유명인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막상 부고 소식을 들으니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동안 없던 잇몸통과 몸살이 재발했다.
결국 장례식에도 참가할 수 없었다. 밖에 나가는 행위 자체가 힘겨울 만큼 온몸이 망가져 있었다.
마침 원고 작업 중 자료 조사 탓에 바쁜 시기였다. 부담감에 부담감이 더해졌다.
그리고 죄책감이 이어졌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 한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사법 고시에 합격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아느냐고. 친한 친구의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눈 하나 까딱 안 하고 장례식에 오지 않으며 평소처럼 공부만 하는 이들이라고 하셨다.
나는 원고 작업을 할 때마다 사법 고시 공부를 한다는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런데 스스로 사법 고시에 합격할 인물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법 고시에 합격하기에는 너무나 나약했다.
부담감과 죄의식이 뇌를 짓누르는 느낌이다.
한동안 떨쳐내기 어려울 것 같다.
예전과 달리 수많은 문인 중에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이외수였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럴 자신이 없다.
앞으로도 나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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