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대 앞 신고서점에 드나들었던 것이 2000 년 무렵이었고,
아무래도 거리가 있고 교통편이 그리 편리하지 않아서 자주 가지 못하다가...
코로나 와중에 그 지역이 재개발하게 되어 쌍문동 덕성여대 교문 앞으로 이사한 것을 알게 됨.
마음 먹고 쌍문동 신고서점으로 출발함.
아기공룡 둘리에서나 접했던 쌍문동을 직접 가는 것도 나름 재미이긴 했는데,
역시나 거리가 있어서 서울 근무지에서 출발했는데도 쌍문동까지 1시간 꼬박 걸림.
경전철 우이신설선을 처음 타 봤는데 너무 좁고 사람이 많아서 이동하기 편리한 것도 아니었고...
그런데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신고서점에 도착하여 방문하고는, 놀라움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음.
20 여 년 동안 머리 속으로만 생각했던 헌책방의 이상적인 모습이 다 있었음.
일단 지상4층~지하1층 모두 5개 층의 건물 전체를 헌책방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그래서 널찍널찍하게 책들이 정리되어서 책을 구경하고 찾는 환경이 무척 쾌적하였음.
입구층인 1층은 카페를 겸하고 있었는데, 원두커피 향기가 서점을 감싸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음.
헌책방 특유의 퀘퀘한 냄새가 아니었고, 처음부터 쾌적한 분위기에 많은 신경을 쓴 것을 잘 알 수 있었음.
또한 모든 책의 위치가 DB화되어 찾기 쉽게 정리되어 있어서, 각 층마다 원하는 책을 DB로 찾아볼 수 있었음.
여기 독서갤러리에서 종종 논의되던 희귀본도 그렇고, 꾸준히 찾아다니던 책을 금새 찾을 수 있어 놀라기도 하였음
- 채수동 번역의 학원사판 죄와벌 : 신고서점에 가자 마자 찾았음. 고골리와 푸시킨 책들과 합본이었음. (일신서적 구자운 번역과 동일한 번역)
- 마이클 크라이튼의 절판 소설 터미널 맨 : 왕년의 크라이튼 작품 중 평타 이상인 것으로 유일하게 사 읽지 못한 것이었는데 구할 수 있었음.
- 마르셀 에메 - 집달리 : 벽을 통과하는 사나이(백상) 단편집에 빠진 유명한 작품이 집달리여서 찾아다니고 있었는데, 모디아노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신영세계문학전집과 합본으로 나온 책이 있었음.
- 최인호 적도의 꽃 : 최인호 대표작 레벨의 작품 중 21세기 들어서면서 거의 유일하게 재출간되지 못한 작품임. 실은 뿌리서점과 숨어있는책 등에서도 발견하긴 했는데 책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거의 A급인 책이 있었음.
- 김동인 전집 : 김동인 전집이 다 있지는 않았지만, 오랫 동안 찾고 있었던 을지문덕 등이 수록된 책을 여기서 구함
무엇보다 아주 큰 건물은 아니지만 건물 전체를 통채로 헌책방으로 꾸민 것이 가장 멋지게 느껴짐.
헌책방 자체의 크기만 놓고 보면 잠실나루역의 서울책보고 등이 훨씬 더 크겠지만,
건물의 5개 층 전체를 사용하여 아기자기한 맛과 책을 찾기 편하게 구성한 것은 아주 훌륭한 느낌이었음.
기업형으로 운영되는 알라딘중고서점, YES24 헌책방 등이 성공한 이유가 쾌적함과 책상태라는 것을 인식하고,
신고서점이 쌍문동으로 이전하면서 나름 많은 책을 진열하면서도 쾌적함을 놓치지 않으려 애 쓴 것이 훌륭하다고 생각됨.
코로나 터널을 지나면서 오랜세월 드나들었던 헌책방들이 하나 둘 없어져서 아쉬움이 컸는데...
신고서점은 오히려 더 멋진 모습으로 환골탈태하여 등장한 것은 거의 충격이었음.
알라딘중고서점, YES24 헌책방 등이 일원화된 느낌이고 희귀본이나 방판전집물은 아예 취급을 안해서 아쉬움이 있었는데,
신고서점은 이런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광활하고 쾌적한 헌책방이라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음
아쉬운 점이라면...
전반적으로 헌책방치고는 가격대가 세다고 생각됨.
뿌리서점 드나들다가 신고서점 가니 딱 두 배 느낌이었음. (그래도 헌책 가격이지만)
그리고 너무 먼 곳에 있고, 지하철이 경전철만 가는데 그게 몇 량 안되고 사람 만땅이어서... 체력이 필요함.
왕년에 외대앞-회기역 라인에 헌책방이 몇 개 있었음. 신고서점이 메인이었고, 한 때 대로 건너 신고서점 맞은편에서 헌책방이 있었으며, 최교수 헌책방 이런 곳도 있었음.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 둘 없어짐.
헌책방 못 간지 오래됐네....가고 싶다.....신촌,서울대앞, 뿌리서점, 배다리 열심히 다녔는데
집에서 가까운데 한번 가봐야겠네
굿입니다 그럼 채수동이랑 구자운이 한쪽이 가명이고 동일인물인 건가?
일단 구자운 시인이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10 년 정도의 기간 동안 엄청나게 많은 번역을 많이 한 것은 맞음. 일본어와 러시아어 원서를 같이 놓고 번역을 했다 하고, 번역으로 먹고 살았던 세월에 대한 증언은 꽤 남아 있음. 심지어 구자운 시인은 러시아문학 외에 전원교향악, 데카메론 등의 일어 중역도 함. 채수동이 외교관이 된 것은 1970년인데, 그 무렵 구자운 시인이 작고함. 구자운 시인은 작고하던 순간까지 번역하던 원고가 집에 흩어져 있었음. 채수동 번역의 죄와벌이 1970년대 초에 나왔는데, 구자운 시인이 베낀 것인지, 출판사들이 채수동 번역본을 카피하면서 작고한 구자운 이름을 가져다 역자로 표기했는지 불명확함. 구자운 시인의 자녀들은 어린 나이였고, 저작권료를 챙길 상황이 아니었음
이야 자세한 답변 감사함다
채수동은 한국외대 나오고 미국 뉴욕 유학까지 다녀온 금수저 출신의 엘리트 외교관이자 러시어문학 번역가이고, 구자운은 고학으로 알바하면서 대학에 겨우 들어갔지만 6.25로 중퇴하고 회사 다니다가 실직하여 번역으로 입에 풀칠하며 어렵게 살았던 흙수저 출신의 시인이자 번역가
옛날 다니던 중고서점 이제 남은 게 몇 안됨. 코로나도 그 계기일 수 있지만, 2년전 부동산3법 개정 후 수도권 부동산 대란이 벌어진 게 크다고 생각함.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올라서, 상대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싼 지역에 있던 헌책방까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됨
신고서점 정말로 역사가 긴 서점인데, 같은 사람이 여전히 계속 운영한다면 거의 40 년 가까이 되었을 듯
신고서점은 이사가면서 오히려 더 넓어지고 좋아졌다니 다행임. 공씨책방도 몇 년 전 성수동으로 이사가면서 더 넓고 좋아짐
오래된 헌책방들은 더 값싼 곳으로 이사하거나 문을 닫고 있음. 홍익대학교 바로 앞에 있었던 온고당의 경우에도 그 동네가 핫플레이스가 되면서 결국 홍대입구역에서 홍익대학교 반대편에 있는 값싼 동네로 이사했음. 연세대학교 교문 바로 앞에 있었던 정은서점의 경우에도 가산디지털단지 로터리에서 가장 싼 동네인 북가좌동으로 이사했음. 왕년에는 연세대학교 앞에서 정은서점에서 출발하여 신촌로타리의 숨어있는책, 공씨책방을 거쳐 홍익대학교 앞의 온고당까지 헌책방 투어를 다녔는데... 이제는 그 동네에 숨어있는책만 남은 셈이고, 공씨책방 별관이 신촌 옛 자리 근처 지하에 있기는 한데 좋은책은 성수동 공씨책방 본점에 다 가있고 신촌 지점에는 책이 별로 없음
난 집근처에 헌책방 없는데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