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미디어나 소설에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소재 중 하나를 생각해보자. 반지의 제왕, 왕좌의 게임, 스타워즈 등 대형 컨텐츠들은 하나의 소재를 공유하고 있다. ‘영광스러운 옛 시대가 사라져 가고, 그 시대의 마지막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 이런 소재는 특히나 미국이나 영국 즉 영어권 문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대공황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대공황은 전 세계 금융, 경제에 큰 피해를 주었다. 그 중에서도 영국과 미국의 피해가 가장 컸는데 그 이유는 이 두 나라가 20세기 초반 세계 경제의 큰 축이었기 때문이다. 1차 대전의 승리로 가장 큰 수혜를 보았으나 뒤이어 찾아온 대공황은 그것들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영국의 대영제국은 해체되기 시작하였고 미국은 엄청난 공황이 찾아와 위대한 미국’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미사여구를 백지장으로 만들어버렸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대공황으로부터 4년 전, ‘위대한 미국의 최후에 쓰인 소설이다.


 개츠비는 누구일까?’ 소설 속의 인물들과 독자들 모두 가지는 궁금증이다. 톰 뷰캐넌의 폭로가 있기 전까지 우리는 개츠비의 정체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 없다. 그가 옳은 행적을 해서 부를 얻었는지, 추악한 일을 하며 명성을 쌓았는지 확신할 수 없다. 소설의 후반부에 가서야 개츠비는 성공을 위해서 물불 안 가리고 손을 더럽혀가며 부를 쌓은 졸부라는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맥이 빠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숨겼는데 고작 이런 캐릭터란 말이야? 왜 이 소설의 제목은 위대한 개츠비지?’


 개츠비의 행적은 대공황 직전까지의 미국의 역사와 닮았다. 풍요가 권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미국과 개츠비를 동일하게 엮을 수 있는 소재다. 그 생각은 두 존재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꿨다. 개츠비는 손을 더럽히면서까지 물질을 추구했다. 데이지와의 사랑을 다시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데이지가 개츠비에게, 미국의 역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었을까?


데이지는 ‘20년 대까지의 미국의 정신과 닮았다. 무결점과 완벽한 모습이면서도 더욱 높은 곳으로 향하려 한다. 데이지와 미국의 정신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본질적인 것들을 포기하면서도 상승의 욕구를 갈망한다. 하지만 그 대가로 공허함을 얻게 되었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외적인 것들에 집착하게 된다. 데이지는 그렇게 자신은 닳고 닳은 여자가 되었다며 자조하며 그렇게 본질을 잃은 그들은 쾌락을 좇는다.


개츠비가 쓰인 1920년의 미국. 그들의 역사는 흘러가지만 정신의 발에 맞출 수는 없었다. 역사와 정신은 두개의 칼날을 맞댄 가위와 같다. 시대 앞에 쌓인 더미들을 정갈하게 가르기 위해서는 역사와 정신은 한 뜻으로 움직여야 한다. 만약 그것이 갈라서게 된다면 독립된 칼날들은 그것들을 난도질하게 되며 난잡하게 비산하는 더미들 속에서 자기 파멸밖에 남지 않는다.


 개츠비는 시대를 믿었다. 역사는 지금껏 같이 걸어온 정신을 믿었던 것이다. 개츠비가 위대하다라는 호칭을 얻을 수 있었던 건, 뒤틀리고 변해가 에리시크톤처럼 스스로 파멸하는 시대에서 순수한 정신을 찾으려고 노력한 것이다. 그렇기에 개츠비는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개츠비는 데이지의 마음을 돌려 세울 수 없었다. 그리고 윌슨의 총에 맞아 아무도 없는 황량한 저택의 수영장에서 숨을 거둔다. 윌슨은 무능력하다. 부인의 불륜을 제대로 인식조차 하지 않았고, 톰의 거짓을 곧이곧대로 믿어 부인은 개츠비와 불륜을 맺었다고 확신한다. 윌슨은 스스로의 판단이 불가능한 인물이다. 윌슨이 개츠비에게 겨눈 권총은 곧 톰이 개츠비에게 겨눈 권총이기도 하다. 미국의 역사는 그렇게 쾌락과 환락 속에서 끊기고 말았고, 그 속의 정신 역시 묻혀버리고 말았다. 윌슨은 개츠비를 쏜 뒤에서 스스로 자살을 했다. 흥미로운 대목이다. 작품 내내 윌슨은 선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인간인데,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는 것은 자의이기 때문이다. 윌슨은 왜 개츠비를 피살한 뒤에 자살한 것일까?

 단순히 복수가 끝났기 때문에, 더 이상 삶에 미련이 없었기 때문에, 비록 불륜녀이긴 했지만 아내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같은 대답보다는 미국에 개츠비를 대입시켜 생객해보자. 윌슨은 쾌락의 세계에서 낙오된 무기력한 존재이며 개츠비는 망가진 세계에서 살아가지만 여전히 옛 시절을 꿈꾸고 있는 존재다.


 현실에 무너진 군상들은 이상을 더 이상 좇을 수 없게 되며 꿈을 가진 자들의 믿음 역시 헛된 것으로 치부한다. 윌슨이 개츠비를 그렇게 허무하게 죽인 것은, 미국의 이상 역시 이상이 없는 자의 간단한 손짓 하나에 사라질 수 있다는 상징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 사회의 은유가 가득 담긴 소설이며 집필된 지 100여년이 되었다. 현대인의 잣대에서 바라본다면 소설은 전개와 인물들의 감정들이 허술하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개츠비를 인물로만 바라본다면 무모하며 충동적이고 고집 많은 인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100년 전, 그것이 미국이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는 걸 떠올리자.

위대한 개츠비가 쓰이고 대공황이 찾아왔으며, 미국이 이 공황을 이겨낸 것은 또 한 번의 세계 대전이었다. ‘과거를 반복할 수 없다고요? 아뇨, 반복할 수 있고 말고요!’ 라는 개츠비의 믿음은 결국 실제로 실현된 것이다. 미국은 자신들의 절망을 미국적인 것을 통해 다시 한번 최강대국의 위치로 올랐다. 닉이 읊조린 대로, 개츠비는 옳았다.


 난 모든 것을 옛날과 똑같이 돌려놓을 생각입니다. 그녀도 알게 될 겁니다.’


 개츠비는 데이지와 다시 이어질 수 있었을까. 개츠비의 죽음 이후, 피츠제럴드의 죽음 이후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츠비는 여전히 살아있다. 미국은 현재까지도 미국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강함을 과시한다. 하지만 사토 속에 파묻힌 데이지는 사라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으며, 개츠비는 오늘날 까지 녹색 불빛을 보며 데이지를 그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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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65점... 제가 좀 더 글을 잘썼으면 개소리가 설득력으로 다가왔을텐데 스스로도 되게 부족해보이네요.


8월까지의 독후감 목록을 정했어요.


01. F. 스콧 피츠제럴드 - 위대한 개츠비

2. 움베르토 에코 - 장미의 이름

03. 표트르 도스토예프스키 - 백치

04. 모옌 - 열세 걸음

05. 응구기 와 티옹오 - 한 톨의 밀알

06. 응구기 와 티옹오 - 피의 꽃잎들

07. 안토니오 스카메르타 -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

08. 미시마 유키오 - 금각사

09. 가즈오 이시구로 -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10.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 월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