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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든과 비슷한 나이대가 되면 별별 생각을 하게 된다. 주변인들의 멍청해보이는 행동들을 속으로 깔보기도 하고, 세상의 다양한 위선을 조소하기도 한다. 흔히들 중2병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런 생각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계속되는 것 같다. 나도 그랬고, 책상 위에 엎드려 자는 척 하며 관찰해왔던 수많은 고등학생들도 그러했으리라.
학교에서 퇴학당한 홀든은 기숙사에서 주변인들의 끔찍하고도 위선적이며, 멍청해보이는 행동들을 목격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의 시간을 기숙사에서 보내지 않고 뉴욕을 방랑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렇게 떠난 뉴욕에서도 똑같은 사람들만 존재했고, 결국 홀든은 여동생 피비에게 돌아가 그녀의 귀여운 모습들을 감상하며 힐링한 후 가출을 끝마친다.
홀든은 그렇게 어른이 된다. 3일간의 가출은 추억으로 남았다. 심지어 그 3일동안 깔보았던 다양한 위선자들마저 그리움으로 남았다. 동시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열심히 공부하겠노라 다짐한다. 그렇게 <호밀밭의 파수꾼>은 그리움과 알 수 없는 앞날만을 남긴 채 끝이 난다. 나는 이 마지막이 좋았다. 지금 내 상황에 딱 들어맞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작 1년 전, 나는 본심을 숨긴 채 위선적인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싫었다. 방 안에 처박혀 있는 것이 일상이었던(심지어 지금도) 내게 그런 건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미성년의 마지막 졸업식 날 깨달았다. 난 그래야 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을 제외한 그 누구도 아무도 곁에 와주지 않았을 때, 나는 깨닫고 만 것이다. ‘지난 12년을 정말 멍청하게 살았구나.’
요즘은 교복입고 놀러다니는 학생들을 보면 후회가 밀려온다. ‘분명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었을텐데.’ 하면서. 멍청했던 그 때의 시간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그리워진다.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볼 때도, 주인공들이 교복을 입고 있으면 슬퍼진다. 새벽에 <하늘의 푸르름을 아는 사람이여>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고 왜 그렇게 살지 못했을까, 하며 운 적도 있다.
세상은 위선적이다. 지나간 시간들은 그립다. 몸에는 후회만이 남아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시간은 지나갔고 살 날은 아직 많이도 남아있으니 살아야 한다. 나는 재수를 준비할지도 모른다. 물론 포기할지도 모른다. 일본어를 공부할 것이다.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볼 것이다. 책을 읽을 것이다. 글을 쓸 것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이 계획의 동력이 되었길 바란다.
피비 같은 치유계 여동생이 갖고 싶어짐 - dc App
나도 어제 완독했는데 결말이 참 맘에 들었음... D. B 같은 형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