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불교 입문서들을 읽다 든 생각이다.
우리가 괴로운 이유는
내가 무언가를 욕망하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내 마음 속에 괴로움이 생겨나서 그렇다.
'그것'을 없앨 수는 없다. 내가 살아있는 한
'욕망'을 없앨 수는 없다. 내가 살아있는 한
'이루어지지 않음'을 없앨 수는 없다. 내가 신이 아닌 한
그럼 무엇을 없애야 하는가.
'나'를 없애야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어떤 욕망에 사로잡힌 나'를 없애는 것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게슈탈트 붕괴라는 용어가 있다.
학술용어는 아니고 그냥 인터넷 신조어라는 듯 하다.
원숭이 라는 단어를 반복해 말해보자.
원숭이 원숭이 원숭이 원숭이...
그러면 어느순간 실제 동물 원숭이와 음성기호 '원숭이' 간의 관계가 깨진다.
즉 동물 원숭이가 떠오르지 않고 음성기호 원숭이만 들려서
그 음성 자체가 생소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동물 원숭이와 기호 원숭이 간에는 사실 아무런 관련이 없다.
잔나비라 부르든 monkey라 부르든 아무 상관이 없다.
괴로움을 해결하는 법도 마찬가지다.
야스하고 싶다 야스하고 싶다 야스하고 싶다 계속 생각하다보면
? 내가 왜 야스하고 싶지? 야스란 뭐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온다.
그것은 나 자신이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견고해보이기만 하던 '야스하고 싶은 나'가 사실 모래성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 자신을 순간적으로 해체, 붕괴시키는 방식으로
우리는 괴로움에 대응해나갈수있는것이아닐까
새벽에 책읽다 헛소리함해봤다
우리가 괴로운 이유는
내가 무언가를 욕망하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내 마음 속에 괴로움이 생겨나서 그렇다.
'그것'을 없앨 수는 없다. 내가 살아있는 한
'욕망'을 없앨 수는 없다. 내가 살아있는 한
'이루어지지 않음'을 없앨 수는 없다. 내가 신이 아닌 한
그럼 무엇을 없애야 하는가.
'나'를 없애야 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어떤 욕망에 사로잡힌 나'를 없애는 것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게슈탈트 붕괴라는 용어가 있다.
학술용어는 아니고 그냥 인터넷 신조어라는 듯 하다.
원숭이 라는 단어를 반복해 말해보자.
원숭이 원숭이 원숭이 원숭이...
그러면 어느순간 실제 동물 원숭이와 음성기호 '원숭이' 간의 관계가 깨진다.
즉 동물 원숭이가 떠오르지 않고 음성기호 원숭이만 들려서
그 음성 자체가 생소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동물 원숭이와 기호 원숭이 간에는 사실 아무런 관련이 없다.
잔나비라 부르든 monkey라 부르든 아무 상관이 없다.
괴로움을 해결하는 법도 마찬가지다.
야스하고 싶다 야스하고 싶다 야스하고 싶다 계속 생각하다보면
? 내가 왜 야스하고 싶지? 야스란 뭐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온다.
그것은 나 자신이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견고해보이기만 하던 '야스하고 싶은 나'가 사실 모래성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 자신을 순간적으로 해체, 붕괴시키는 방식으로
우리는 괴로움에 대응해나갈수있는것이아닐까
새벽에 책읽다 헛소리함해봤다
파하고 마늘 많이 먹어
이거랑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지는 끌당법칙이랑 싸우면 어케댐
대한민국 모든 20대 여성과 야스하고 싶어요
나는 해체하거나 붕괴한다기 보단 '나'라는 것이 단지 기호적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해에서 모든 문제가 다시 정의되거나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햇음
맞아요 존재론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나를 인식함에 있어 통합되고 고정된 내가 존재하지 않죠
애초에 '나'라는건 어떤 것이나 그러하듯 어떤 현상에 대해 이름을 붙인 것일 뿐이라 '나'가 없다는건 진짜로 그게 아예 없다는 뜻이 아니라 항존하는 나 곧 힌두의 아트만으로서의 나 같은건 없다는 뜻인듯 실재를 그대로 표상하지 못하는 한계가 분명한 언어에 사로잡혀 집착에 빠졌다는... 소위 언어적 착각이라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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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가르침과 팔정도 - 월폴라 라홀라 저는 이 책이 참 쉽고 좋았던 것 같아요.. 역시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필수인 것 같고요.. - dc App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게슈탈트는 심리학쪽 학술용어임. 독일어인데 '형체화'정도로 치환할 수 있음. 쉽게 말해 올림픽 문양 볼때 원 다섯개로 생각하지 누가 잘라진원, 겹친 부분들 이런 식으로 나눠보겠음. 근데 게슈탈트 붕괴라는게 신조어라는건 신기하네;
'그것'과 '이루어지지 않음'을 없앨 수 없는 건 맞는데, 욕망(과 성냄)은 무상 고 무아의 지혜를 통해 무지를 격파함으로써 없앨 수 있음. 즉 쓰니 말대로 '나'라는 모래성을 무너뜨리는 게 무아를 철견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거고, 그게 곧 욕망을 없애기 위함인 거임. 그게 상좌부 불교에 한해서는 종교 생활의 궁극적 목표이기도 하고.
그리고 '무아'라는 단어는 단순히 '내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김아무개'라는 본질을 지닌 실체가 없다는 걸로 이해해야 함. 그 둘이 뭐가 다르냐 말장난 치지 말라고 할 수도 있는데, 중요한 차이임. 불교는 세속적 진리인 세속제와 궁극적 진리인 승의제 둘 다를 인정함.
우리는 바퀴와 축, 나무 상자가 연결된 무더기를 보고 '수레'라고 이름하는데, 세속제의 관점에서 본다면 수레는 존재하지만, 수레를 바퀴와 축, 나무 상자로 해체한다면 그것들 중 어느 것에서도 수레의 본질을 찾을 수 없으므로 승의제의 관점에서 수레는 존재하지 않음. 불교는 이 둘을 모두 인정함. 불교는 수레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회부적응자의 종교가 아님.
그렇기에 붓다를 비롯한 깨달은 자들이 스스로를 '여래' 또는 '나'라고 표현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임. 요약하면 '나'는 임시적으로 가립된 상태로는 존재한다고 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간혹 무아와 공을 잘못 이해해서 공병에 빠지는, 즉 허무주의, 도덕부정론 비스무리하게 빠지는 경우가 많아 혹시나 해서 댓글 남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