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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재야의 남성 연구자 "제임스초이스"이다.



유사 이래로, 인류 사회에서 남성과 남성성의 지위와 성격은 역사의 부침을 겪으며 끊임없이 변화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를테면 전쟁이 빈번했던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의 경당, 신라의 화랑도 등 국가적인 차원에서 무력의 배양이 중시되었고,



군사적 역량은 당대 엘리트들에게 매우 핵심적인 능력으로 인식되었다.



고려는 귀주 대첩을 통해 거란의 핵심적 최정예 병력을 궤멸시키고, 금나라 건국 세력과 맞짱을 뜨는 등 당대 동아시아 최강국의 반열에까지 올라갔으나



서경 천도가 좌절되고 문벌 귀족을 중심으로 사회 질서가 왜곡되며 무신들이 차별과 소외를 받는 현상이 일어났으며,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무신정변>이 일어나 고려는 내부적으로 파탄국가화되어 붕괴한다.



조선 시대에는 고려 때와는 달리 무과 시험의 형식으로 엘리트 군인을 양성하는 제도가 존재했으나,



성리학 근본주의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상무적인 기풍이 존재했던 고려 시대와는 달리 사회 전반적으로 남성성과 군사적 능력은 거리가 크게 멀어졌다



필자는 근대 이후의 남성성에 대한 다각도에 걸친 연구 결과,



근대 이후의 남성성이 크게 <상남자>와 <상놈>으로 양분된다는 주장에 공감하게 되었다.



<상남자>와 <상놈>은 매우 대립적인 여러 특질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를 거칠게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상남자 특징:



- 정신적으로 단호하면서도 유연함.



- 정신적인 품위를 지킴.



-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의식과 책임감.



- 세계와 역사, 그리고 그 속의 자신에 대해 고민함.



상놈 특징:



- 정신적으로 뭔가에 세뇌되어 있음.



- 정신적 가치들에 대한 불신과 경멸.



- 일단 자기가 잘 살아야 함.



-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함.




필자는 이러한 고찰들을 기반으로, 세계 고전 문학의 남성 주인공들이 <상남자인가, 혹은 상놈인가>를 판단하는 연구들을 지속해오고 있다.



오늘은 그 연구의 일환으로, 19세기 러시아의 유명 소설인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상남자인지, 상놈인지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라스콜리니코프의 성격 분석에 대해서는 다양한 연구 결과들이 축적되어 있다.



그 중에서



<라스콜리니코프: 상남자와 상놈의 이중 시학>



<"죄와 벌"과 상남자의 전설>



<라스콜리니코프 안의 햄릿: 상놈이냐 상남자냐>



<예언자적 상남자>



<도스토옙스키, 상놈으로 추락하는 상남자를 위한 신학>



<도스토예프스키, 상남자를 위해 펜을 들다>



<상남자 만세!>



<상남자가 세계를 구원할 것이다>



등은 특히 추천할 만하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의 상남자적 성격과 상놈적 성격을 교묘하게 모호하게 혼합하고 있는데,



이것은 죄와 벌 도입부인 1부 1장의 마지막 장면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희대의 비열한 음모를 꾀하며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방문하고 나온, 노문학 4대 악인 중 하나인 라스콜리니코프가 술집에서 맥주를 한 잔 하며 기분을 전환하는 장면이다.



Он уселся в темном и грязном углу, за липким столиком, спросил пива и с жадностию выпил первый стакан. Тотчас же всё отлегло, и мысли его прояснели. «Всё это вздор, — сказал он с надеждой, — и нечем тут было смущаться! Просто физическое расстройство! Один какой-нибудь стакан пива, кусок сухаря, — и вот, в один миг, крепнет ум, яснеет мысль, твердеют намерения! Тьфу, какое всё это ничтожество!..» Но, несмотря на этот презрительный плевок, он глядел уже весело, как будто внезапно освободясь от какого-то ужасного бремени, и дружелюбно окинул глазами присутствующих. Но даже и в эту минуту он отдаленно предчувствовал, что вся эта восприимчивость к лучшему была тоже болезненная.




이 대목을 여러 번역자들은 이렇게 옮기고 있다:



열린책들: 그는 어두침침하고 지저분한 구석 자리의 끈적거리는 탁자 앞에 앉아 맥주를 시킨 뒤, 첫 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내 마음이 편해지며, 생각도 맑아졌다. <이 모든 게 헛소리야.> 그는 희망적으로 말했다. <당황할 이유라곤 전혀 없어! 그냥 몸이 약해져서 그래! 맥주 한 잔과 설탕 한 조각, 이거면 금세 정신력도 강해지고, 생각도 분명해지고, 의지도 견고해지지! 퉤! 이 모든 게 얼마나 쓸데없는 짓인가......!> 이렇게 경멸하듯 침을 내뱉자, 그는 곧 어떤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기라도 한 듯이 갑자기 홀가분해졌다. 그는 따뜻한 시선으로 술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이 순간 모든 것을 좋은 쪽으로만 보려는 마음의 움직임조차 병적이라는 사실을 막연하게나마 직감했다.



문학동네: 그는 어둡고 지저분한 구석자리, 끈적거리는 탁자에 앉아 맥주를 주문해서는 첫잔을 허겁지겁 들이켰다. 금세 모든 것이 가라앉고 생각이 맑아졌다. '다 별거 아냐.' 희망을 품고 그는 말했다. '당황할 이유가 없었어! 그냥 육체적으로 혼란스러웠을 뿐이야! 맥주 한 잔과 말린 빵 한 조각에 이렇게 순식간에 정신이 강건해지고, 생각이 명료해지고, 의지가 굳건해지는데! 제길, 모든 게 정말 하찮기 짝이 없구나!......' 하지만 경멸하듯 뱉어내는 이런 말들에도 불구하고, 그는 갑자기 지독한 중압감에서 벗어나기라도 한 듯 이미 즐거워 보였고, 선술집 안의 사람들에게 정다운 눈길을 던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순간조차도 이렇게 모든 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역시 병적이라는 느낌이 어렴풋이 들었다.



을유문화사: 그는 컴컴하고 더러운 구석의 끈적거리는 탁자 앞에 앉아 맥주를 시킨 다음, 첫 잔을 기갈이 난 듯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자 모든 것이 금방 사라지고 생각도 맑아졌다. '모두 터무니없는 거야.' 그는 희망을 느끼면서 말했다. '당황할 건 아무것도 없었어! 그냥 몸이 약해져서 그래! 맥주 한 잔과 건빵 한 조각으로 금방 이렇게 정신력이 강해지고, 생각이 분명해지고, 의지도 굳어지는데, 뭐! 퉤! 다 쓸데없는 걱정이야......!' 그러나 이렇게 경멸하듯 침을 내뱉으면서도, 그는 무언가 끔찍하고 무거운 짐에서 갑자기 벗어나기라도 한 듯 벌써 기분 좋게 주위를 바라보며,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정한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그는 무엇이든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려는 이런 마음 역시 병적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다.



민음사: 그는 어둡고 더러운 한쪽 구석, 끈적끈적한 탁자 앞에 앉아 맥주를 주문하고는 첫 잔을 게걸스럽게 들이켰다. 이내 모든 것이 누그러지면서 생각도 맑아졌다. '이 모든 것이 허튼수작이다.' 그는 희망에 달떠 이렇게 말했다. '이제 와서 당황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냥 몸 상태가 흐트러졌을 뿐이다! 맥주 한 잔에 수하리 한조각이면, 자, 한순간에 머리도 튼튼해지고 생각도 또렷해지고 계획도 확고해진다는 말씀! 쳇, 이 모든 것이 얼마나 하찮은가......!' 이렇게 경멸하듯 침을 뱉었음에도 그는 이미 어떤 끔찍한 짐을 느닷없이 떨쳐 버린 양 즐거워 보였으며 그렇게 정겨운 눈으로 술집 안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 순간조차도 모든 것을 낙관적으로만 보려는 태도가 역시나 병적인 것이라는 예감이 어렴풋이 들었다.



문예출판사: 그는 어둡고 더러운 한쪽 구석 끈적끈적한 탁자 앞에 자리를 잡고는, 맥주를 주문하고 첫 잔을 단숨에 쭉 들이켰다. 그러자 곧 기분이 안정되고 생각도 선명해졌다. '이건 모두 어리석은 생각이야!'하고 그는 한 가닥 희망을 느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당황할 건 아무것도 없어! 모두가 육체적인 장애 때문이야! 고작 맥주 한 잔, 빵 한 조각으로...... 이렇게 금방 머리가 명석해지고 의식이 맑아지고 의지도 확고해지니 말야! 쳇, 세상만사가 이렇게도 어리석다니!' 그러나 이렇게 침이라도 뱉고 싶은 경멸감을 느끼면서도 그는 어떤 무섭고도 무거운 짐에서 해방되기라도 한 듯한 홀가분한 기분으로 주위를 돌아보며 그곳 사람들에게도 정다운 눈길을 보냈다. 그렇지만 그는 이 순간조차 모든 것을 좋은 각도로 받아들이려는 그 감수성 자체가 역시 병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예감하고 있었다.



범우사: 그는 어둡고 불결한 한쪽 구석에 유달리 끈적끈적한 작은 테이블 앞에 걸터앉아서 맥주를 주문하여 처음 한 컵은 걸신 들린 것처럼 단숨에 비워버렸다. 그랬더니 삽시간에 우울증이 가셔지고 생각도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짓은 전부 어리석은 짓이야.' 그는 희망을 찾은 듯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뭐, 아무것도 꺼림칙한 것은 없단 말야! 단순히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뿐이야! 맥주 한 컵이나 건빵 한 조각 정도로 - 이것 봐라, 이렇게 단번에 머릿속이 깨끗해지고 생각도 착실히 떠오르며 의지도 견고해지지 않느냔 말이다! 쳇, 모든 것이 추잡한 짓들이구나!......' 하지만 그는 이런 식으로 경멸하고 타기唾棄하고 싶은 생각에 우울해지면서도 갑자기 무엇인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이, 벌써 활짝 갠 얼굴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그리운 사람이라도 만난 것처럼 둘러보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순간조차도 그는 무엇이든 좋다고 생각하는 쪽을 택할 기분이 드는 것도 역시 병적인 고질이구나 하고 희미하게 의식했다.



홍신문화사 구판(1992): 그는 컴컴하고 더러우며 끈적끈적한 테이블 앞에 앉아 맥주를 청하고, 처음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자 곧 기분이 가벼워지고 정신이 맑아졌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어리석은 짓이다." 그는 어떤 희망을 느끼면서 중얼거렸다. "그렇게 허둥대지 않아도 좋았을 걸. 그저 몸이 좀 아팠을 뿐이니까! 단 한 잔의 맥주와 건빵 한 조각으로 이처럼 기분이 상쾌해지고 머리도 가벼워진 게 아닌가!...... 정말 바보 같은 짓이야!......" 그는 몹시 무거운 짐이라도 내려놓은 듯한 기분으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다정한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마음 어느 한구석에서 이러한 행복감이 일종의 병적인 것임을 예감하고 있었다.




1. 원문을 최대한 뉘앙스를 제거하고 문장 구조와 단어를 1:1로 대응시켜 최대한 직역해보면 대충 이런 번역이 나온다:



그는 컴컴하고 더러운 구석, 끈적끈적한 테이블 앞에 자리를 잡고, 맥주를 청하여 첫 잔을 게걸스레 들이켰다. 그 즉시 온 가슴이 후련해지고, 그의 생각들도 뚜렷해졌다. <이 모든 게 다 헛소리야, - 그는 희망을 느끼며 말했다, - 거기서 당황할 이유라곤 없었는데! 그저 몸의 이상일 뿐이잖아! 아무런 맥주 한 잔, 건빵 한 조각이면, - 봐라, 한순간에, 두뇌가 단단해지고, 생각이 명료해지고, 목적이 굳건해지고! , 이 모든 게 무슨 쓸데없는 짓이냐!...>그러나, 이 경멸스런 침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미 유쾌하게 보였고, 마치 어떤 끔찍스런 무거운 짐에서 갑자기 놓여난 듯이, 그리하여 다정한 눈길로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심지어 이 순간에조차 그는, 이 모든 더 좋게 받아들이는 감수성 역시 병적인 것이었음을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다.




소설 번역은 매우 어려운 일인데, 흔히 생각하듯 번역을 통해 '작가가 쓴 그대로를 읽고 싶다'는 생각은 그다지 좋은 생각은 아니다.



좋은 번역은 단어를 하나하나 옮기는 번역이 아니라, 표현력을 극대화하는 번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술번역>에 대해 생각해야 하고, 그것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외국인 독자로서, 개인적으로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원문으로 읽어도 뭔가 엄청나게 대단한 것이 느껴지지는 않는 편이다.



그리고 번역이 존중되지 않는 문화 속에서는 결코 좋은 번역이 생산되지 않는다.




2. 이 구절에서 가장 흥미롭고 중대한 문제는, 라스콜리니코프가 과연 실제로 침을 뱉었는가, 침을 뱉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점은 라스콜리니코프의 상남자적/상놈적 본성을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일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실제로 테이블에 침을 뱉었다면, 그 순간 라스콜리니코프는 상남자 실격인 것이다.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다 뜬금없이 테이블에 침을 뱉는 사람은 상놈이라고밖에는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테이블이 '끈적끈적하다'는 것은, 테이블이 이미 손님들의 침으로 뒤덮여 있다는 암시인가?)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구절을 매우 교묘하게 처리하고 있는데,



원문에서 괄호 안에 Тьфу(체, 퉤, 제기랄)가 들어있긴 한데, 그 뒤에 несмотря на этот презрительный плевок(이 경멸스런 침에도 불구하고)가 나온다.



그렇다면 도대체 라스콜리니코프는 테이블에 침을 뱉은 것인가, 뱉지 않은 것인가??



이 구절이 역자들을 당혹스럽게 했음은, 대체로 최근 역자들이 라스콜리니코프가 실제로 침을 뱉은 것으로 번역하고 있는 데 반해서(열린, 을유, 민음)



1세대 번역가들(문예, 범우)과 문학동네판의 역자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실제로 침을 뱉지 않은 것으로 번역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감탄사 Тьфу(체, 퉤, 제기랄)가 독백을 표시하는 괄호 안에 포함되어 있고,



несмотря на этот презрительный плевок(이 경멸스런 침에도 불구하고)에 침을 실제로 뱉었음을 명시하는 동사가 없으므로,



문제의 침은 아마 독백 속에서 뱉어진 관념적인 침이고, 실제로 뱉어진 침은 아닌 것 같은데??



3. 고르디우스의 매듭



그런 점에서 채수동역 홍신문화사 구판(1992)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고 있다.



Тьфу(체, 퉤, 제기랄)와 несмотря на этот презрительный плевок(이 경멸스런 침에도 불구하고)를 모두 생략해버린 것이다.



채수동역의 번역 스타일은 전체적으로 일종의 하드보일드한 압축적인 번역을 보여주는데,



Тьфу(체, 퉤, 제기랄)와 несмотря на этот презрительный плевок(이 경멸스런 침에도 불구하고)를 생략해버려서 문장 자체가 훨씬 깔끔해지고 견고해졌다.



Тьфу와 несмотря на этот презрительный плевок에서 표현된 경멸감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이야!......'에 충분히 표현되어 있기 때문일까?



필자는 번역 문체의 이런 압축적 경향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고 보는데,



번역어는 단어를 1:1로 옮기려 하기보다는 표현력을 강화하고자 애써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전술한 정도의 압축에 놀란다면 우리는 백석의 번역을 읽을 수 없을 텐데, 백석은 번역하다가 늘어지는 것 같은 장면은 통째로 들어내 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현대에는 그 정도 생략은 허용되지 않는다. 백석은 자기 번역에 대해 무한한 권리를 가질 수 있었던 극소수의 예외적인 몇 명에 속한다)



4. вся эта восприимчивость к лучшему(이 모든 더 좋게 받아들이는 감수성?)에 대한 번역도 흥미롭다.



이런 것은 직역을 할 수 없는 종류의 표현에 속하는 것 같은데, 이 표현을 역자들이 대체로 다들 자연스럽게 의역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이 이상한 표현을 <행복감>이라고 과감하게 의역한 채수동역이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필자는 한 젊은이가 <이 모든 더 좋게 받아들이는 감수성>을 <행복감>이라고 옮길 수 있었던 어느 감동적인 깊은 밤을 상상해 보게 되는 것이다.



5. 여담으로 глядел을 두고 어떤 역자들은 '(즐거워) 보였다'고 옮기고, 어떤 역자들은 '(기분 좋게) 바라보며', '(홀가분하게) 둘러보며'라고 옮겼는데,



이것은 이 동사가 보다, 보이다 두 가지 뜻을 다 갖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 다의어들은 물론 옮기기 매우 찜찜한 요소들이다.



이 동사를 역자들이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가 하는 것도 흥미로운 요소인데,



범우사판에서 '벌써 활짝 갠 얼굴로'라고 처리하고 있어서 눈에 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위의 거의 모든 역자들이 맥주 앞에 붙은 какой-нибудь(아무런, 아무거나, 하찮은, 변변치 않은)를 대체로 생략하거나 약화시켜서 표현하고 있는데,



사실, 우리는 라스콜리니코프의 구체적인 맥주 취향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은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한 바이다.



그러나 라스콜리니코프가 '맥주 아무거나 한 잔'에도 기분이 전환된다고 말하고 있다고 해석한다면,



우리는 그가 원래는 꽤 까다로운 맥주 취향을 갖고 있었다고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6. 번역 추천



다들 좋은 번역이지만, 억양과 어조가 가장 강한 70년대 번역을 좋아하는 필자에게는



문예출판사(김학수역)나 홍신문화사(채수동역) 판이 좋게 느껴진다.



문예출판사판은 전통적으로 최고의 번역으로 칭송되어 온 김학수 선생님의 뛰어난 번역인데,



원문에 대한 충실성과 표현력을 둘 다 잡은 좋은 번역이다.



홍신문화사 구판(1992)은 앞에서 살펴보았듯 패기 넘치는 강렬한 압축적 번역인데,



표현력 면에서 김학수역을 능가하지만 원문을 압축하는 만큼 당연히 원문에 대한 충실성은 떨어진다.




7. 필자가 <죄와 벌>을 재독한다면?




김학수역과 채수동역 중에서 필자는 채수동역을 선택할 것인데,



위에서는 한 구절만 서로 비교해 보았기 때문에 잘 느껴지지 않겠지만,



책을 전체적으로 통독할 경우에 채수동역에 비해 김학수역은 매우 늘어지는 느낌을 주게 된다.



그리고 대사 번역에서 채수동역이 훨씬 뛰어나다는 강점이 있다.



채수동역의



"이것도 저것도 모두 어리석은 짓이다." 그는 어떤 희망을 느끼면서 중얼거렸다. "그렇게 허둥대지 않아도 좋았을 걸. 그저 몸이 좀 아팠을 뿐이니까! 단 한 잔의 맥주와 건빵 한 조각으로 이처럼 기분이 상쾌해지고 머리도 가벼워진 게 아닌가!...... 정말 바보 같은 짓이야!......"



이 독백은 위에서 비교한 모든 번역본들 중 가장 뛰어나며,



이에 비해 김학수역의



'이건 모두 어리석은 생각이야!'하고 그는 한 가닥 희망을 느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당황할 건 아무것도 없어! 모두가 육체적인 장애 때문이야! 고작 맥주 한 잔, 빵 한 조각으로...... 이렇게 금방 머리가 명석해지고 의식이 맑아지고 의지도 확고해지니 말야! 쳇, 세상만사가 이렇게도 어리석다니!'는



상대적으로 어쩔 수 없이 표현력이 떨어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채수동역이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장황함을 보완해주면서, 대화 번역이 핵심적인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특성을 잘 살려준다.




8. 그렇다면 채수동은 <죄와 벌> 원툴인가?



필자는 이동현역 <카라마조프네 형제들>을 더 좋아하지만, 채수동(채대치)역 학원판 <카라마조프 형제들>도 매우 훌륭하다.



학원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된 채수동(채대치)역 <가난한 사람들>도 매우 뛰어나다.



동서문화사판은 문장을 다 쪼개놔서 안 읽는 것이 좋을 듯.



<악령>은 범우사판 이철역이 더 나은 것 같다.



9. 결론



여기까지 읽었다면, 독자들은 라스콜리니코프가 상남자인지, 상놈인지 다시 한 번 자문해 볼 수 있으리라.



라스콜리니코프의 침은 실제로 뱉어진 것인가, 뱉어지지 않은 것인가?



- 추천은 필자의 남성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