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한자사용의 곤란함
한자는 읽는 것도 쓰는 것도 또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도 곤란한 문자인 것은 우리들이 쓸데없는 말을 보탤 것까지도 없는, 세간에서도 이미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納이라는 한자에는 ‘토우’라는 음도 있으며, ‘노우’라는 음도 있다. 또 ‘이루’라고도 읽는가하면 ‘오사무’라고도 읽는다. 그 외 경우에 따라서는 ‘츠즈루’라고도 ‘우케루’라고도 읽기 때문에 그 음편형은 몹시 곤란하며, 이것을 쓰는 것도 또한 곤란하다. 만약 그 변을 잘못 써서 ‘衲’이라고 쓰면 ‘도우’, 또는 ‘노우’의 음이 된다. 또 ‘츠키’, ‘누우’, ‘츠즈루’ 등으로도 읽는다. 또 잘못하여 ‘訥’이라고 쓰면 ‘도츠’라는 음이 되며 ‘도모루’라고도 읽는다. 그 자획이 복잡하여 이것을 손으로 쓰기에 수고로움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조금이라도 그 자획을 틀리면 다른 문자가 되는 것은 방금 예로 든 것과 같다.
또한 한자는 나열하는 위치의 여하에 따라서도 의미를 달리하는 것도 있기 때문에, 같은 문자라도 놓이는 장소에 따라 의미를 다르게 한다. 그렇기에 정확하게 한자를 쓰고, 또 정확하게 한자를 읽는다고 해도, 그 의미를 완전하게 이해하는 것은 더욱 곤란함을 더해갈 뿐이다. 이런 곤란함이 많은 한자는 넘칠 정도로 많다. 지금 인용한 예는 누구나가 아는 용이한 문자에 지나지 않지만, 무수히 많은 한자 속에는 얼마나 어려운 문자가 있을지 측정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것이다.
한자의 사용이 곤란하다는 것은 이와 같지만, 이것에 더해 근래에는 한자의 사용이 현저히 난잡하게 되어 있으니까, 보통 한자를 독해 가능한 사람이더라도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것을 이해하는 데 어려워하게 되는 언어 문장은 매우 많다. 특히 번역어에 이르면, 그 한자만의 의미로는 아무래도 이해하기가 힘들거나 억지로 이해했다고 한들 큰 오해를 낳을 수 있는 우려가 있다. 따라서 번역서만을 읽는 사람에게는 때때로 상당히 잘못된 이해가 들어가서 웃음을 자아내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거나 정확한 번역어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생각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어원이 어디에 있는가, 어원을 해석해야만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우리들도 유년 시기부터 다소 한적(한자책)을 배워왔기 때문에 불충분하긴 하나 어느 정도 한자를 해독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학의 소양이 없이 한자를 이해하려 시도하는 것은, 그 곤란함이 실로 생각하기 힘든 지경이 되어가는 한자 사용의 곤란함을 말하자면, 끝도 없는 일이므로 상세히 논하는 것은 그만두고, 시험삼아 이 한자를 배우는 사람의 상황에 대해 얘기해보자.
심상소학교(현재 한국의 초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고등소학교(현재 한국의 중학교)를 졸업한 자라 해도, 만족스럽게 보통 편지를 쓰기 힘들다, 보통의 서간문도 읽기 힘들다, 등등의 비난을 부모로부터 듣는 일이 적지 않지만, 이것은 교수법의 문제도 있겠으나 오늘날의 학제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사정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야기를 되돌리자면 한자 사용의 곤란함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학교 졸업생에 한하는 것이 아니라, 심상중학교(현재의 중~고등학교 수준)의 졸업생이라도 고등학교(이 당시의 고등학교는 대학 예과)의 졸업생이라도, 만족스럽게 한자를 읽고 한자를 쓰고 또한 그 의미를 이해하는 자는 그다지 없을 것이다.
대학졸업자인 학사라도, 때때로는 충분히 한자를 읽고 한자를 쓰고 또한 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람도 있다. 심하게는 누군가 박사라는 고등 학자인데도 자기 전문에 속하는 어디까지나 알아야만 할 내용을 유럽 언어로는 몰라도 일본 문장으로는 도저히 스스로 쓸 수 없다는 사람도 있다. 재차 일본 글로 쓴 부분이 비문이 되어 읽기에 곤란하다는 사람도 적지 않고, 이와 같이 교육을 한다는 사람조차 한자는 충분히 사용하기 힘들다고 한다면, 이런저런 원인도 있을 터이지만 한자 사용의 곤란함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일 것이다. 이러한 곤란한 한자를 영원히 대대로 사용해야만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을 터이다.
하루라도 빨리 한자를 절멸시키는 것은, 우리 문명의 진로에 지대한 편리함을 안겨줄 것이지만,
만능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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