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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고향이기에 떠나고 싶지만 고향이기에 떠날 수 없는 이야기. 주인공 이블린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난폭하고 무능한 아버지와 어린 동생들을 홀로 부양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중 젊은 선원 프랭크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함께 떠나려 하지만 끝내 이블린은 가족에 대한 의무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에 마비된다.

이는 아일랜드 전체로 확대해 볼 수 있다. 아일랜드는 영국의 식민지였고, 수탈로 인해 지독하게 가난한 곳이었다. 감자 대기근으로 100만이 아사, 100만이 이민하여 800만이었던 인구는 지금도 회복하지 못했을 정도다. 아일랜드는 그렇게 마비되어 있었고, 독립할 수 없었다. 고향을 싫어했던 제임스 조이스는 그 점을 이블린의 모습으로 날카롭게 찌른다.

이 작품에서 가족은 영국, 이블린은 아일랜드다. 이블린은 가족에 대한 의무감에 마비된다. 이는 아일랜드가 영국의 지배로 마비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이블린은 떠나지 못한다. 미래를 불안해 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아일랜드도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독립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의무감에 대한 마비와 불안에 의한 제자리 걸음이 실패의 이유다.

제임스 조이스는 아일랜드의 불안을 비판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아일랜드인들이 불안할만 했다고 생각한다. 온갖 수탈과 대기근으로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운 시대에 미래를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블린>이 소름끼치는 작품인 이유는, 작품을 읽고 있는 나 역시 미래를 불안해하며 나아가기를 주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