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잘 쓴 비극은 때론 잘 쓴 희극보다 사람의 마음을 자극한다.
그리고 안나 카레니나는 내가 읽었던 비극 중 가장 잘 쓴 작품이다.
내가 지금까지 본 비극들의 전개는, 감정선을 점차 쌓아가다가 한 순간에 그걸 터트리는 방식이었다.
최고의 일이 최악의 일로 바뀌는 그 한 순간의 격렬한 감정, 나는 이게 비극의 아름다움이라 생각했다.

안나 카레니나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부터 안나와 브론스키의 감정선을 보여주고, 그들이 사랑으로 인해 희생한 것들을 사랑으로 극복하는 것을 보여줬다. 어느 순간까지는 말이다.

그 어느 순간 이후로 모든 것이 바뀐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 사랑한다. 그렇지만 그 사랑으로 인한 오해가 점차 생겨나고, 결국 비극적으로 끝난다.
안나 카레니나는 비극이 한 순간에 벌어지지 않는다. 작은 갈등이 어떻게 점차 커져가는지, 왜 돌이킬 수 없는 순간까지 두 남녀가 오게 되었는지까지 담담하게 서술한다.

일반적인 비극을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발을 헛디뎌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이라 한다면, 안나 카레니나는 차가운 늪 속에 발을 짚어넣는 느낌이었다.
파국의 순간은 점차 다가오지만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고, 비극적인 순간을 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미약한 희망도 있지만 그건 희망 그 이상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이 비극이 빠르게 끝났으면, 하는 바람까지 들 정도였다.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그저 비극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이 글을 읽은 내 현재 심정을 책의 서문에 비유하며 마치겠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아마 며칠 간은 이 책의 여운으로 인해 내 감정의 해석을 '저마다의 이유'로 해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P.s : 해피엔딩 순애물 추천좀, 마의 산 읽을까 하는데 이것도 감정 쥐었다폈다 하는 부류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