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경고 기능이 추가됐습니다.
(펼침 메뉴 > 설정에서 변경 가능)
일국의 최고 통치자였던 양반들에게는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특정한 이미지나 편견이 생겨나기 마련이지. 여기서 극명하게 대비된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이 바로 나폴레옹 1세와 나폴레옹 3세야.
두 사람은 각각 프랑스 제 1, 2 제정의 시조가 된 인물들이지만 공교롭게도 그들의 치세는 당대에 그치며 단명했다는 공통점이 있지. 그러나 이들에 대한 후세의 일반적인 평가는 하늘과 땅 차이야.
나폴레옹 1세는 역사상 최고의 명장을 꼽는 설문조사에서 알렉산드로스 3세, 한니발 등과 수위권을 다투는 '역대급 명장'이자 전쟁의 패러다임을 바꾼 군사천재로 추앙받고 있지. 또한 그가 주도한 30년에 걸친 대프랑스 전쟁, 또는 나폴레옹 전쟁은 '유럽에 자유, 평등, 박애의 프랑스 혁명 정신을 수출하는 역할을 하였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뒤따르지.
반면 나폴레옹 3세에 대한 평가는 이와는 완전히 배치돼. 나폴레옹 1세의 의붓 외손주이자 친조카로 태어나-나폴레옹 1세의 친동생과 나폴레옹 1세의 의붓딸 오르탕스가 결혼해서 태어남-보나파르티즘이라는 일종의 '이념적 금수저'의 일방적인 비호를 받는 무능력자인 주제에 운 좋게 프랑스 공화국 대통령이 되었으며 더 나아가서는 친위 쿠데타를 통해 황제가 되어 20년간 프랑스를 혼란스럽게 이끌다가-여기에는 그의 치세를 결코 좋게 평가하지 않았던 위고나 졸라 등 레전드급 프랑스 문인들의 영향력이 크지-급성장하던 프로이센에게 결정타를 얻어맞고 나라와 본인을 함께 나락으로 떨어뜨린 장본인이라는 가혹한 평가가 뒤따르지.
그렇지만 이런 일반적인 평가는 과연 정당한 것일까. 《나폴레옹》에 따르면 결코 황제는 완전무결한 전장의 신이 아니었어. 황제는 아우스터리츠나 이탈리아 원정, 1813년의 프랑스 본토 방어전처럼 본인이 통제할 수 있을 만한 규모의 전투에서는 비범한 능력을 보였지만 이를 벗어나는 거대한 전역(戰域)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어. 러시아 원정의 대실패는 본인의 역량을 과신한 황제의 오만함이 부른 참사였지.
게다가 얼마든지 동맹국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스페인에 섣부르게 개입하는 바람에 누구도 아닌 본인 스스로가 유럽대륙에서 제 2 전선을 만들어 버리는 결정적인 우를 범했지. 황제는 형 조제프를 스페인 왕으로 삼고 수십만의 프랑스군을 이베리아 반도에 진주시키며 스페인을 장악하려고 했지. 그렇지만 스페인인들은 격렬하게 저항-이 '스페인 독립전쟁'이 스페인사 시대 구분에서는 근대와 현대를 나누는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하네-했어. 영국의 웰링턴이 이들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각자 독자적인 지휘권을 가진 프랑스의 원수들은 이미 군벌화되어 여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었지. 황제 본인은 빠른 시일 안에 스페인을 안정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고 저지른 일이겠지만 이 '반도 전쟁'은 나폴레옹 제국의 수렁이자 블랙홀이 되어 안 그래도 전 유럽과 대결하느라 부족한 프랑스군의 인적, 물적 자원을 빨아들였지.
또 황제는 본질적으로 정복한 유럽 대륙의 통치권을 '전리품 분배하듯이' 다루었지. 대체로 무능했던 나폴레옹의 형제 자매들, 전장에서 황제의 명령에 따라 성과를 내는 데는 출중했을지 모르나 정치와 행정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폴레옹의 원수들은 밥먹듯이 황제 등에 칼을 꽂으며 제국의 몰락을 가속화 시켰어. 또 황제는 인선에 있어서도 치명적인 실수를 반복했지. 수없이 그를 배신했지만 백일천하 시기에조차도 경찰장관직을 꿰찬 푸셰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어.
그리고 가장 근본적으로, 황제가 주도한 전쟁은 프랑스 전역에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를 남겼지. 20년 동안 계속된 전쟁으로 약 백만 명에 달하는 프랑스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어. 군복무를 기피하는 젊은이들도 날로 증가해 입대 기피자들이나 탈영병을 수색하는 부대의 숫자도 이에 비례해 늘어났지. 상황이 이렇다보니 제국의 승리가 이어질 때는 황제를 찬양하던 백성들도 점차 전쟁에 염증을 느끼고 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게 되었지. 즉, 1제정은 잘 나갈 때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삐끗했을 때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탄력성이 극히 떨어졌는 체제였다고 할 수 있지.
과장된 비교일 수도 있지만 베를린 방어를 위해 십대 소년까지 차출해 실전에 투입한 히틀러나 러시아 원정, 독일 방어전에서 잃은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갓 성인이 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수십만 규모의 징병을 하고자 했던 황제의 선택 사이에 어떤 근본적인 차이가 있을까? 전쟁을 통해서만이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자들이 젊은이들의 피값으로, 또 미래의 국가 역량을 소모시키면서까지 권력을 잃고 싶지 않다는 갈 때까지 간 권력욕의 한 표지가 아닐까.
나폴레옹 3세의 경우는 백부의 사정과는 좀 달라. 큰아버지 같은 군사적 역량의 소유자가 아니었던 그는 외치보다는 내치에 집중하면서 성과를 내기 시작해. 오스만을 센 지사로 임명하여 중점적으로 추진한 파리 대개조나 노동자 서민층의 생활 개선을 위해 정력적으로 추진한 정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사람이 마르크스가 "역사는 반복된다."고 신랄하게 깠던 그 사람이 맞나 싶어.
또한 나폴레옹 3세는 30년간 계속된 대전쟁의 패배, 잇단 혁명의 발발로 지배층이 계속 교체되는 정정의 불안 등으로 그때까지 완성되지 못했던 프랑스의 산업구조를 개편하여 '프랑스식 산업혁명'을 일단락 지은 지도자라고 해. 이런 이유로 이탈리아 독립전쟁에 실익 없이 개입한 것이나 소위 '멕시코 제국' 삽질 사건, 결정타였던 보불전쟁 참패 등으로 외치에서는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내치에서는 그래도 최근 들어 재평가하는 기류가 생기도 있다고 하네.
두 사람의 행적에 대한 서술과 평가를 읽어보면서 '진짜 지도자'가 가져야 할 역량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더라. 그런데 군사적 역량 만큼은 있으면 좋지만 그렇다고 통치자가 과도하게 의존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만큼은 분명해지더라구. 나폴레옹 1세는 계속된 승전으로 민심을 얻어 제정까지 열었지만 동시에 승리하지 못하면-곧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켜야만 하는-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갇혀 결국 파멸했지. 나폴레옹 3세 또한 큰아버지를 동경해 타국에 군사적인 개입을 끊임없이 시도했고 프로이센과의 대결 시에는 친정까지 했지만 좋은 꼴은 못 봤지.
결국 좋은 지도자란 어떤 정치 국면에서 어떤 카드를 뽑아쓸지 적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군사력 투사 또한 그 카드 중 하나일 뿐이여야지 유일한 선택지가 되어서는 안 되고.
- dc official App
나폴레옹 1세와 3세의 대비되는 측면을 잘 정리해줬다고 생각됨. 암튼 저 두 책 읽어봐야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