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원의원이자 독일 연방은행 이사인 틸로 자라친Thilo Sarrazin이 『독일이 사라지고 있다Deutschland schafft sich ab』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언제나 합의를 추구하는 독일 사회에서 폭탄과도 같은 책이었다. 그 책에서 자라친은 독일인의 낮은 출산율과 지나치게 많은 이민 ─ 특히 무슬림 이민 ─ 유입 때문에 독일 사회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논쟁을 야기한 것은 아마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일수록 출산율이 높고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출산율이 낮은 탓에 독일이 전후(戰後)에 거둔 성공과 번영이 위험에 빠졌다는 주장이었을 것이다.


자라친이 주장한 것처럼, 독일에 온 이주자들이 사회에 통합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는 곳곳에 있었지만, 정치 엘리트들과 언론은 그의 주장이 이단이라며 그를 비판했다. 책 출간 이후 후폭풍이 일어난 가운데 자라친은 독일 연방은행 이사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리고 그는 독일의 정치적 좌파 출신이었는데도 메르켈의 기독민주연합(CDU)만이 아니라 그가 속한 당(사회민주당)까지 그와 거리를 두었다. 독일의 여러 무슬림 단체들이 그를 법정에 세울 것을 요구했는데, 가장 치명적인 일은 (역시 별 근거가 없었지만) 반유대주의 혐의로 고발당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책은 대중의 감정을 건드렸다. 그 무렵에 치러진 여론 조사에서 밝혀진 바로는 독일인의 47퍼센트가 이슬람은 독일에 속하지 않는다는 언명에 동의했다. 독일 정치인들은 이민과 통합, 이슬람을 둘러싼 논쟁에 대해 확고한 완충 지대를 설정했지만, 무엇보다도 자라친의 책이 2백만 부가 팔린 걸 보면 정치적 대표자들이 아무리 원치 않아도 사회 전반이 생각하는 것을 억제할 수는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란계 이민자 2세인 알리 다비드 손볼리Ali David Sonboly가 맥도날드에서 10대 일곱 명을 죽인 것을 시작으로 총기 난사로 아홉 명을 살해했다. 며칠 뒤에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시리아 난민이 마체테 칼로 임신한 여자를 난도질해 죽였다. 이 사건은 순간적인 흥분으로 벌어진 충동 범죄라고 알려졌다. 다음 날 또 다른 시리아 난민 모하마드 달릴Mohammad Daleel이 바이에른주 안스바흐에서 열린 음악 축제에서 표가 없다는 이유로 입장을 거부당했다. 그는 못과 나사로 속을 채운 폭탄을 갖고 있었는데, 결국 와인바 앞에서 폭탄을 터뜨렸다. 스물네 시간이 약간 지난 뒤 루앙에서 미사 중인 성당 안으로 남자 둘이 IS의 이름을 외치면서 들어가서는 수녀들과 신도들을 인질로 잡고 신부인 자크 아멜Jacques Hamel을 살해했다. 현장에 있던 한 수녀는 열아홉 살의 두 살인자 ─ 아델 케르미슈Adel Kermiche와 압델 말리크 프티장Abdel Malik Petitjean ─ 가 칼로 신부의 목을 베고는 죽어 가는 그의 몸 위로 아랍어 구호를 외치면서 녹음하는 내내 웃음을 띠었다고 말했다. 신부가 죽어 가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사탄아, 저리 가라〉였다.


이런 공격 가운데 일부는 최근 이루어진 이주 물결 속에서 유럽에 온 사람들의 소행이었다. 나머지 뮌헨 사건 같은 공격은 유럽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벌인 짓이었다. 손쉬운 답을 찾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테러의 원인을 유럽의 통합 전략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려는 사람들은 앞선 이주자들을 통합하는 데 그토록 서투른 대륙이 그렇게 많은 새로운 이주자를 수입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 애를 먹었다. 최근의 이주 물결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려는 사람들은 유럽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이들조차 왜 그런 공격을 저질렀는지 설명하는 데 애를 먹었다. 동기를 설명하려는 사람들은 공격 대상이 워낙 다양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세속주의와 반(反)유신론을 표방하는 시끄러운 잡지인 『샤를리 에브도』의 편집진이 어떻게 보면 〈자업자득인 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로부터 18개월 뒤에 미사를 집전하던 신부가 제단에서 살해당할 만한 일을 한 게 무엇인지를 설명하지 못했다. 2015년 11월 파리 테러 공격 이후 언론과 인터뷰를 한 마흔여섯 살의 파리 시민은 프랑스 사회가 학습 곡선의 어디에 있는지를 무심코 드러냈다. 〈단지〉라는 단어를 골치 아프게 사용하면서 그는 말했다. 〈파리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번 공격에 마음이 움직였어요. 전에는 단지 유대인이나 작가, 만화가였거든요.〉1


만약 이 모든 사태가 유럽이 자신과 자신의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에 끔찍하게 비춰졌다면 아직 더 나쁜 일이 남아 있었다. 테러 공격은 대중에게 우려가 점점 커지는 가장 분명한 이유를 보여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훨씬 더 말하기 힘든 일에 관해 이에 못지않게,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한층 더 기본적인 우려가 나타났다. 테러 공격이 일어났을 때 그 원인을 놓고 왈가왈부했을지는 몰라도 거의 모든 사람이 공격을 인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점점 커지는 안보 관련 우려를 다룰 필요가 있다고 동의하는 한편에서 아무도 논의하려 하지 않고 모두들 다루기를 꺼려 하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났다.


2000년대 내내 이민자 무리가 현지 여성들을 성폭행하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어느 누구도 이런 일에 관해 말하려 하지 않았다. 이런 사건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뭔가 천하고 어쨌든 상스러운 일이었다. 피부색이 짙은 남자들은 백인 여성을 능욕하는 성향이 있다고 은연중에 말하는 것조차도 불쾌한 인종주의적 텍스트에서 유래한 게 너무도 분명해서 우선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 그리고 그런 일을 논의해야 한다는 것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영국 공무원들은 이런 범죄를 언급하는 것을 너무나 두려워했기 때문에 어떤 국가 기관도 오랫동안 전염병처럼 퍼진 성폭행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동일한 현상이 대륙에서 일어났을 때에도 정확히 똑같은 우려와 문제가 나타났다.


2015년에는 최근 유럽에 온 이주자들의 대다수가 젊은 남성인 것 같다고 언급하는 것조차 비난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이 모든 사람들이 현대적인 여성관을 갖고 있는지 묻는 것은 천박한 인종주의적 비방에 영합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영국에서와 똑같이) 일종의 금기였다. 유럽 각국 당국과 대중은 인종적 편견에 빠지거나 인종주의라는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서 이미 대륙 전체에 퍼진 문제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나라가 더 많은 난민을 받을수록 이 문제는 더욱 커졌다.


2014년 독일에서도 여성과 소년에 대한 성폭행 건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뮌헨에서 30세 소말리아 난민 신청자가 20세 독일 여성을 강간한 사건, 드레스덴에서 30세 모로코인이 55세 독일 여성을 강간한 사건, 뮌헨에서 25세 세네갈 난민 신청자가 21세 독일 여성을 강간하려 한 사건, 슈트라우빙에서 21세 이라크 난민 신청자가 17세 소녀를 강간한 사건, 슈투트가르트 근처에서 아프가니스탄 난민 신청자 둘이 21세 독일 여성을 강간한 사건, 슈트랄준트에서 28세 에리트레아 난민 신청자가 25세 독일 여성을 강간한 사건 등이 있었다. 이 사건들을 비롯한 여러 건이 법원으로 갔지만, 다른 많은 사건은 법원으로 가지 않았다.


독일인이 강간당하는 사건이 증가하는 것과 나란히 난민 보호소에서도 강간과 성폭력 건수가 점점 늘어났다. 2015년 독일 정부는 이주자를 수용할 시설이 너무 부족해서 처음에는 여성 전용 숙소를 제공할 수 없었다. 그러자 여성 단체들이 헤센주 의회에 서한을 보내 이런 보호소 시설 때문에 〈강간과 성폭력이 빈발〉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우리에게 접수되는 성매매 강요 신고도 늘고 있습니다. 이 사건들은 고립된 사례가 아님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후 몇 주 동안 바이에른주 전역의 난민 보호소에서 강간 사건이 기록되었다. 그리고 10년 전 영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당국은 이런 사실에 담긴 함의를 크게 우려한 나머지 많은 사건을 의도적으로 은폐한 것으로 드러났다. 난민 신청자가 열세 살 무슬림 소녀를 강간한 데트몰트에서 지역 경찰은 이 사건에 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베스트팔렌블라트Westfalen-Blatt』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이주자가 관련된 성폭행 사건이 정부의 문호 개방 정책에 대한 비판의 빌미가 될 수 있는 경우에 지역 경찰이 사건을 은폐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레멘의 시설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아동 강간 사건이 기록되었다.







1990년 10월 5일 한 이슬람 종교 지도자가 정부 지원금을 받는 암스테르담 라디오 방송국의 한 프로그램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이슬람, 즉 이슬람의 질서에 저항하거나 알라와 그의 예언자에 반대하는 자들은 샤리아에 따라 죽이거나 목매달거나 도살하거나 추방해도 됩니다.〉








포르퇴인이 이슬람에 반대한 또 다른 주된 이유는 남성과 여성을 바라보는 태도의 차이였다. 그는 네덜란드의 무슬림 여성들도 여느 네덜란드 여성들과 똑같은 해방의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성 소수자에 대한 이슬람의 태도에 격렬하게 달려들었다. 네덜란드 사회는 남녀평등과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평등을 규범으로 만드는 법률을 통과시키고 문화를 조성하는 데서 세계를 이끌었다. 그러나 무슬림이 다수인 나라들의 관행을 보면 엄격함의 정도는 다를지언정 이런 원리들이 이슬람과 양립할 수 없음이 입증되었다. 따라서 충돌이 명백한데도 네덜란드 사회는 자신들의 관용이 급속하게 증가하는 일부 인구의 불관용과 공존할 수 있는 척 가장하려 했다. 포르퇴인은 그런 공존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신문 칼럼과 인기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포르퇴인은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는 일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도발해 견해를 끄집어내는 일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한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서 그는 네덜란드의 어느 이슬람 지도자 앞에서 일부러 현란하게 행동했다. 결국 그 지도자는 포르퇴인의 동성애 성향에 대해 분노를 폭발시켰다. 주류 정치인들 또한 포르퇴인에 관해 생각하는 바를 그에게 털어놓았다. 포르퇴인이 1997년에 쓴 〈이슬람화〉 책에 관한 텔레비전 토론에서 노동당의 주요 정치인이자 전 장관인 마르셀 반 담Marcel van Damn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아주 열등한 인간입니다.〉6 그것은 앞으로 등장할 신랄한 비평의 맛보기일 뿐이다.


미국에서 9·11 공격이 일어날 무렵, 네덜란드 사회는 이미 몇 차례나 이런 토론의 핵심적인 부분들을 거쳤고 포르퇴인은 정치에 에너지를 쏟기 시작했다. 그는 이슬람을 〈후진적인〉 문화라고 묘사해 당에서 쫓겨났지만 곧바로 독자적인 당인 리에스트 핌 포르퇴인Lijst Pim Fortuyn(LPF)을 만들었다. 네덜란드 정치는 투표 방식 때문에 신생 정당이 원내로 비집고 들어가기가 비교적 쉽다. 2002년 총선을 앞둔 몇 주 동안 포르퇴인은 네덜란드 정치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다.


동료들이 제지하지 않는 가운데 그는 점점 네덜란드의 정체성, 그리고 특히 자유주의적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다문화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무슬림 게토가 커지는 가운데 평행 사회의 성장을 목도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위기 일보 직전〉이며 네덜란드는 방향 전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타고난 쇼맨십에 미디어의 규칙을 거부하는 독불장군식 태도가 결합되자 2002년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은 기꺼이 포르퇴인에게 나라를 맡기려는 듯 보였다. 정치적 적수들은 닥치는 대로 그를 공격했다. 그가 인종주의자라고 비난했다. 히틀러라고도 말했다. 비교적 온건한 적수들은 그를 무솔리니에 비유했다. 포르퇴인은 죽기 직전에 한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자신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면서 만약 자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자기를 악마화하는 데 혈안이 된 정치적 적수들이 암살자를 준비한 책임의 일부를 져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적수들은 책임을 지지 않았다. 선거를 불과 일주일여 앞두고 포르퇴인이 힐베르쉼에서 라디오 인터뷰를 마치고 나가던 길에 30대 남자 하나가 근거리에서 그의 머리에 총을 몇 발 쏘았다. 국민

들은 살인자가 무슬림으로 밝혀질까 두려워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범인은 극좌파 비건 활동가였다. 재판에서 범인은 포르퇴인이 무슬림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생각해서 죽였다고 설명했다. 살인 사건 직후에 네덜란드는 애도에 빠졌고, 이어진 선거에서 포르퇴인의 당은 가장 많은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당은 이 선물을 유권자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철저한 무능(워낙 순식간에 부상한 터라 어쩌면 불가피한 일이었다)과 옹졸한 내분으로 되갚았다.






팔라치는 알제리의 전 대통령 우아리 부메디엔Houari Boumedienne이 1974년 유엔 총회에서 한 말을 인용했다. 〈언젠가 수많은 사람들이 지구 남반구를 떠나 북반구로 쏟아져 들어갈 겁니다. 하지만 친구로 들어가는 게 아닙니다. 정복하기 위해 쏟아져 들어갈 것이고, 자녀를 낳아서 인구를 늘리는 방식으로 정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승리는 우리 여자들의 자궁으로부터 도래할 겁니다.〉29 팔라치가 비슷한 맥락에서 쓴 세 번째이자 마지막 책이 뒤이어 나왔다.






한국도 중국 이슬람 이민자들 받아들여야 할텐데 암울한 책이네

중국애들 늘어나면 합법적으로 국회의원 대통령 중국계로 뽑아올려서 중국에 합병시킬 수 있고

그렇다고 이슬람을 받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