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 대한 평가 중에는 중에는 '하이브리드 작가'라는 평이 있어요.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고 관습을 거스른다고 하죠.
소설, 비소설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씁니다.
가끔은 하나의 책 안에서도 그러죠.
소설은 규칙을 가진 적이 없어요.
다른 장르들은 선형적으로 발전하는 경향이 있지만 소설은 그렇지 않습니다.
<돈 키호테> 같은 초기 유럽 소설을 보면
지금 우리가 '메타 픽션', '아이러니', '자기 지시적'이라 부르는게 다 있죠.
제가 <돈 키호테>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
2편에서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누추한 여관에 당도합니다.
그런데 얇은 벽 건너로 자기들에 대해 말하는 게 들리는거예요.
옆방 사람들이 <돈 키호테> 1편을 읽고 있었거든요.
400년 전에 이런 기막힌 작법을 만들어 낸 거예요.
정말 재치있어요. 자기 지시적이라 부르든 포스트 모던이라 부르든요.
작가는 절대 자기 책의 독자가 될 수 없어요.
책을 쓰는 중이든 다 쓴 후든 말입니다.
어떤 작가는 높은 의자에 앉아 독자들에게 고압적으로 얘기합니다
'이게 내가 설명하는 세상이고 진리이다'
저와 제 독자는 그보다 훨씬 협력적 관계입니다.
함께 야외 카페 테이블에 앉아 있는 느낌이랄까요?
마주보는게 아니라 말 없이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그저 길 건너편 일들을 구경할 뿐이죠.
저는 이런 질문만 하죠.
'저 둘이 뭘 하는걸까요?'
'둘이 사귀는 걸까요? 아니면 사귀는 척하는 걸까요?'
'아니면 둘이 바람을 피우는 것 같나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당신이 그렇다면 고려해 봐야죠'
옆길로 새서 독자에게 강의를 하고 있다면 그땐 멈춰야 해요.
저는 결론을 던지는 작가가 아닙니다.
'제가 보는 세상은 이렇지만 어떻게 살지는 당신이 결정하세요.'
저는 공감보다 흥미를 생각해요.
인물이 좋은지 나쁜지 결정하는 건 독자에게 맡기죠.
한번은 독서 모임에서 <보바리 부인>을 놓고 토론했어요.
그런데 누가 이렇게 말했죠.
"나는 보바리 부인이 싫어요. 나쁜 엄마잖아요"
전 이렇게 생각했어요.
'도대체 뭐부터 설명해야 하지?'
소설에 나쁜 어머니가 등장하면 안 되나요? 그런 뜻이에요?
이런 생각은 위험한 것 같아요.
독자들이 소설에 자기 삶이 투영되길 바라는 거요.
소설 속 세상을 관찰하는 게 아니라요.
그런 생각도 존중할 수는 있지만
저는 세상을 만나고 이해하게 하는 문학을 원합니다.
제 얘기를 하는 책 보다는요.
문학에 대한 제 사견입니다.
세월이 가면 또 바뀔지도 모르죠.
닉값 뭐여... 반스가 ebs에서 강연도 했구나 처음 알았네
<보바리 부인> 말하는 부분이 인상 깊네요. 그 젊작상 10주년 책에 <고두>가 빠진 것과 비슷한 맥랄일까요
마지막 일화 ㄹㅇ 공감... 친구한테 호밀밭의 파수꾼 추천해줬는데 조금 훑어보더니 주인공 성격이 짜증나서 안 읽는다길래 소설을 그런 태도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했더니, 내 말솜씨가 부족한 탓인지 오히려 시비로 받아들이고 짜증을 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