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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전쟁과평화야말로 문학,역사,철학,종교가 다 합쳐진 인문학이 신화형태를 띌 때 원시적 원류성을 보존하고 있다. 종합예술에 가깝다. 러시아 문학이 철학적 농도가 짙다. 사상을 문학을 통하여 전파한다. 19세기 전제왕정을 유지하던 후진적 러시아에서 사상을 설파하는 데에는 문학이 효과적이였을 것이다. 그 마저도 검열 때문에 눈치 보면서 해야했겠지만. 그들이 만약 표현의 자유가 허용됐다면 문학가가 됐을 지 의문이다. 종교론자나 사상가나 사회운동가가 됐을 수도 있을 거 같다.
톨스토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자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등장인물이 끊임없이 삶의 본질을 질문한다. 심적인 면모에서 관심이 강하고, 거기에서 감흥을 느낄 줄 안다. 그것이야말로 철학적 태도인데, 일찌기 토마스모어나 에라스뮈스 몽테뉴도 철학 범주에 속하기도 하고, 현대에 샤르트르 에코 카뮈에 이르기까지 철학과 문학은 끊임 없이 연계가 된다. 톨스토이는 특히나 그 농도가 짙다. 그에게 대충 평범한 사람이 그러듯이 분위기에 맞춰 살아가는 습성은 전혀 물들지 않았다. 그런 습성이 굳어서 고정관념이 되고, 그 고정관념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공격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도전적이고 혁명적이고, 독립적인 기질이 다분하다. 높은 교양과 심적인 고상함을 즐길줄 아는 감각이 있다.
다만 내가 어릴 때 그의 사상에 감흥을 받았으나 나이 들고 좀 독자적 노선이 생기니 동의하기 힘들고 감흥도 덜했다. 안나 카레니나와 비교하여 스케일이 너무 커서 캐릭터성 발굴이 약하고, 밀집도와 정교함이 좀 덜한 느낌이였다. 그리고 일리아스에서 영감 받았듯이 시각적 심상에 치우쳐진 느낌이 강한게 흠이였다.
내 생각에는 냉정하면서 명예를 중시하는 볼콘스키가가 전쟁을 상징하고, 천진난만하고 명랑한 로스토프가가 평화를 상징한다고 끼워 맞출수 있을 거 같다. 톨스토이 친가와 외가를 모티브로 했다는데 피에르가 톨스토이 사상을 대변한다면 베주호프가는 그 중간 정도 되는 거 같다.
첨 읽었을 때 로스토프가의 천진난만함이 맘에 들었지만 나중에 읽으니까 별로 맘에 들지가 않는다. 유독 근왕사상에 심취하는 가문이던데, 그 때 보통 대중의 관념을 대변한다. 톨스토이는 그런 감정을 고상한 감정이라고 여기고 묘사한것 같기도 한데, 지나고 보면 좀 글쎄스럽다. 상대가 시민혁명을 성취한 프랑스인걸 생각하면 톨스토이 영웅사관을 반대하고 민중사관을 찬성한걸 생각하면 좀 근왕사상은 묘하긴 하다. 근왕사상이 영웅사관과 비슷한 우상이지 않은가... 나중에 가면 그 전제왕정에 대한 충성이 100년간 러시아의 발전에 발목을 잡는다. 나중에 데카브리스트의 씨가 냉정하고 영광에 대한 감각이 있는 안드레이 가에서 나온것은 적절했다. 흔치 않은 위에서부터 개혁이고, 안타깝게 실패해서 유럽의 헌병 니콜라이 1세에게 자유주의 사상은 탄압을 받는다.
근왕 사상이란게 민족주의 국가주의적이고 사대주의적이다. 민족과 국가의 상징이고, 살아있는 신과 같이 숭배의 대상이다 황제란 권력의 정점이라 권력에 아첨하는 소인배적 근성이 함유된거 같다. 하지만 황제도 인간인지라 인간적 결함이 있고, 공동체 이익보다 자기 이익을 우선 챙기는 결함에 빠질 가능성이 높을 수 밖에 없다. 로스토프가의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함은 우민들의 근시안적이고 권력에 비굴한 충성과 같은 것 같기도 하다. 그 가문도 분위기에 민감한지라 절개 버리고 변덕 부리기도 하여 실책을 범하기도 했다. 그리고 유독 정에 넘친다. 그 정은 인륜적으로 가족공동체에서 시작된다. 가족에서 점차 사회 민족 국가로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의 일상 삶의 이권에 영향을 끼치는 한도내에 제한되어있고, 국가간의 관계는 무정부상태와 같으므로 그걸로 인류를 사랑한다고 보기 힘들고, 국가와 민족이 정의 영역의 맥스인것 같다. 그러므로 정의 지향 대상은 권력구조에 사대주의 하는 것과 같다고 볼수 있다.
로스토프가의 지향하는 관념은 국가주의 민족주의와 상당히 가깝다. 하지만 국가주의 민족주의는 비근하게 다른 국가와 민족을 깔아뭉갬으로서 영광이 성취 된다. 다른 국가와 민족의 자산과 인력을 강탈하여 자국민에게 분배하는 것 그것도 공익적 행위라고 볼 수 있따. 그런 국익지상주의자들이 위대한 정치인으로 존중 받아왔다. 우리가 짱개 조선족 쪽바리 타령하듯이 민족주의 국가주의에는 차별과 혐오가 엄청 당연하게 여겨진다. 톨스토이는 사랑을 인생의 본질적 요소로 내세웠는데, 그 정에 가까운 사랑으로는 개인과 이권이 밀접하게 연계되어 운명공동체인 국가와 민족 넘어서 인류애적 유대감을 느끼긴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나랑 아무상관 없는 외국인에게 어떻게 유대감을 느껴야한다는 것인가.. 프랑스 혁명으로 인권이란 개념이 탄생했지만 국익지상주의와 제국주의의 절정이였다.
인류애적 사랑을 실천하려면 기존에 친근감에 가까운 사랑으론 부족한 것 같다. 친근한 유대감 느낄 수 있는 건 기껏해야 국가와 민족이 한계이다. 국가와 민족의 한계 틀을 뿌술려면 좀더 독립적인게 맞는 거 같다.
지금 전평 읽는중인데 완독하고 이글 읽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