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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를 무너뜨리려 드는 글들이 있다. 고작 글줄을 보고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변하겠냐만은, 자기도 모르게 비극에 압도되어 잠시 숨을 흡, 들이마시는 순간이 있다는 것까지 부정하기는 힘들다. 누군가가 다치는 모습을, 예를 들어 예리한 면도날에 천천히 베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힘든 것처럼, 한 가정이 점차 무너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참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형언할 수 없는 일종의 운명에 의해서 무너져간다면 더더욱 그렇다.
인세를 벗어난 운명에 의한 몰락은 고대 비극에는 꽤나 빈번한 소재다. <어부들> 역시 그렇듯, 정신 나간 예언자의 예언을 계기로 가족이 속에서부터 썩어들어가 몰락하는 모습을 그려낸 글인데, 그 모습이 어찌나 고전적이고 솔직한지 이 시대에도 아직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와는 다른 감흥이 들었다. 아직도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러나 저러나, 숙명적인 몰락은 끔찍한 장엄함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끼리의 다툼, 예를 들어 탐욕 등의 이유로 인해 몰락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나름대로 흥미롭기는 하지만, 고전적인 비극이 가져다주는 매력을 진정으로 되살리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는 고아함이 없다. 거기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 김동리의 <역마>를 읽었을 때 비슷한 감상이 들었는데, 이런 운명론은 우리를 하나의 결코 파악하지 못할 거대한 체계의 일원으로서 바라보게 해주며, 소위 비극의 카타르시스를 한층 더 순수하고 강도 높게 불러 일으킨다. 절대자 앞의 자그마한 개인으로서.
<어부들>은 상당히 서슬 퍼런 이미지들로 이런 감정을 더 자극하는데, 가족을 사로잡은 예언의 폭력적인 이미지가 실현되는 과정이나, 죽음에 대한 여러 비유들이 점차 쌓이며 어느새 이 이상 몰락을 향해 달려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보자의 곰팡이에 대한 비유가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일전, 만화 <헬터 스켈터>에서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완전히 썩어서 문드러져 이빨로 물자마자 이를 깨닫게 되는 이라고 비유하던 표현을 봤을 때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 언젠가 <어부들>의 곰팡이에 대한 비유도 비슷하게 떠올리게 되지 않을까.
작가를 싫어하려면 최소한 책을 두 권은 읽어봐야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는 기대했던 것에 비해 영 아니었건만, <어부들>은 상당히 심금을 울리는 구석이 있다. 차기작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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