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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여울      저자 이수익|황금알 |2016.06.20



1963년에 등단하신 노시인의 시집이다.

시인의 시 특징을 보아하니 운율을 맞추기보단 문장 다음에 핵심적인 단어 하나로 행을 쓰는 형식이다. 시인의 시 구성이 눈에 확 들어와 마음에 든다.

드문드문 시인의 연륜과 연배가 느껴지는 시들이 보인다. 확실히 젊은 시인들의 시와는 느낌이 다르다. 좀 더 고전적이다. 요즘 쓰인 세련된 시가 취향인 이들에겐 맞지 않을 시집이다.

불행 중 다행인지, 다행 중 불행인지 시집 뒷부분에 시집의 해설이 실려 있지 않다. 깔끔하게 시만 수록되어 있다. 시집의 뒷부분에 수록된 해설을 읽지 않는 나로선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일부 시들은 고은의 <오늘 너는 대한민국이었다>와 같은 시처럼 보인다. 지나치게 낡은 느낌이 들어 안타깝기도 하다. 김연아는 아름답기라도 하지. 어떤 노시인들이나 옛날 시 중에는 지금 읽어도 세련된 사례도 있는데 이 시집은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시대를 따라가지 못했다. 후배 시인들에게 기수 열외를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시인의 화려한 이력에 비해 실망스럽다. 노련함이나 세련됨, 기교에서 어지간한 젊은 시인들보다 부족하다.

시인이 시에 힘을 줘서 쓰는데 허세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힘을 주는 모습만 보여주려고 애를 쓴다.

시어들도 평범하다. 덕분에 시에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이보다 더 잘 쓸 수 있다는 의욕이 솟는다.

()과 생명을 의미하는 시들이 종종 보이나 정말 심연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특유의 생명과 그 기질을 감지하기 힘들다. 숟가락 들어 올릴 힘조차 남지 않았으면서 약발로 간신히 발기하는 노인의 안쓰러운 정력을 보는 기분이다. 차라리 시인이 힘을 빼고 이얍!’하는 기합을 중단하고 자연스럽게 썼다면 더 나았으리라. 지나치게 시를 작위적으로 쓴 듯해 안타깝다.

<살아 있다>란 시의 마지막 행 나만 이렇게 죽어 있다란 문구를 보니 모두가 살아 있다면서 살아 있다고 자위하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며 있는 그대로의 감성을 살렸다면 이 시처럼 진솔하고 괜찮았을 텐데 다른 시들은 그렇지 않아 아쉬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시인께 무례하다시피 한 감상문을 쓰면서도 필사할 시는 적지 않다. 이번에도 필사의 지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걸 보니 역시 나는 전생에 을사오적 중 한 명이 분명했던 것 같다.



분량 문제로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