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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 먼지가 낀 채로 낡아가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 눈에 들어왔다.
투박한 겉표지에 한자로 설국이라 적힌 책이었다.
4년 전, 나리타 공항에서 올려다 본 하늘은 흐리멍텅한 회색빛 구름으로 가득했고, 태양의 시선은 조금도 닿지 않았다.
맑았던 서울 하늘과는 달라도 같은 하늘 아래에 있다는 생각에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공항 건물들 위에는 눈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 비행기에서 내린 아이들은 어찌나 신났는지 여기저기 소리치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도쿄에 눈이 자주 오는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가는 길은 온통 새하얀 밟자국으로 가득했다.
전철을 타고 숙소로 향하며 느낀 점이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사이에 얼어붙은 나뭇가지에 살포시 얹어진 눈이며, 도로 위의 눈밭에서 허우적대는 자동차며, 많은 것들을 보았다.
시내에서는 번듯한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꽤나 돌아다니고 있었다. 촌스러운 교복을 입고 발랄하게 뛰어 다니는 학생들도, 서로의 목도리를 꼼지락거리며 걸어다니는 연인들도 있었다.
나는 그들과 달리 누가봐도 여행자 같은 모양새였다. 여행자 보다는 이방인에 가까웠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숙소에 금새 도착해서 간단하게 짐을 풀고 나왔다.
잠깐 구경이나 할까 싶었는데 길을 걷다가 특이한 카페를 발견했는데, 블루보틀이었다.
얼마전 미국 서부에 다녀온 친구들이 꼭 가봐야 하는 곳이라고 방정을 떨었던 곳이었다.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달콤한 원두냄새가 풍겨져 왔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직원들의 눈인사도 받았다.
포근한 인테리어나 장식물들이 그냥 볼만하다는 느낌, 딱 그 정도였고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해서 갖고 나왔다.
근방에 있는 서점으로 향하는 사이, 커피 뚜껑에도 눈이 조금 쌓였다. 옷에도 달라붙어 있고 머리칼과 눈썹에도.
서점의 입구 근처에 서 있는 한 직장인은 입김인지 담배연기인지도 모를 것을 내뱉으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입구에서 코트에 붙은 눈을 털고, 신발을 툭툭 털며 들어갔고 나도 그들을 따라 들어갔다.
한국과 크게 다를것 없는 풍경이면서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렇게도 다를 수가 없다.
이처럼 가깝고도 먼 나라인 것을 서점에서도 실감했다.
나는 평소에 독서를 즐기는 편인데, 몇 년전만 해도 내 책장의 한 켠은 일문학으로 가득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다자이 오사무, 나쓰메 소세키, 모리 오가이 등...
이들 외에도 수많은 작가들의 책이 있었지만 유일하게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책은 없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만 이름이 입에 착 감기지 않는다거나 작품의 제목이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아서 같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근대문학을 다루는 코너에서 그의 이름이 보였다. 정중앙에 놓인 책 한 권이 바로 설국이었다.
무심코 책을 잡고 열자, 나는 작게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근대 일문학의 정수라고 불리는 그 문단에 전율을 느낀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일본어로 읊조리며 가슴 속에 새기고 말았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분명 비행기에서 창밖을 내다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광경이었다.
기차도 아니었고, 터널을 지난 것도 아니었지만 분명 설국이었다.
길가에 한가득 쌓인 눈, 그 속을 헤집고 다니는 수많은 사람들, 모두 가지각색의 모양으로 겨울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가깝고도 먼 그들의 모습, 조금의 여유를 가진다면 한국에서도 비슷하게나마 느낄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상하리만치 그때의 기억이 뇌리 속에 강하게 남아 있다.
아직까지도 책장에 꽂힌 저 책을 볼 때면 생생하게 떠오를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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