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문제의식은 당대 세계가 데카당스, 즉 삶을 부정하고 피안으로 도피하는,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의 결여인 허무적 의지(허무에의 의지. Willer zum Nichts) 에 가득 차 있다는 것이었음. 그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의 『니벨룽겐의 반지』를 '종교적' 색채, 엄밀히 말하면 그리스도교적 색채를 띄었다 해서 '데카당스'예술이라 비판한 데서도(『바그너의 경우Der Fall Wagner』)드러나듯 그는 "노예 도덕Sklavenmoral"(『도덕의 계보』제 1~2논문)에서 시작된 그리스도교를 그 데카당스의 근원이라고 말하고 있음.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칸트Kant의 도덕철학에서 '도덕'이라고 불리는 도덕이 사실은 계급 시대에서 지배계급에 복종해야 했던 노예들이 자신의 실패와 약함을 정당화하기 위해 고안한 개념이라고 분석하고 있음. 니체는 주인적 도덕이란 르네상스 양식의 덕Vith라고 말했음. 주인도덕과 노예도덕의 차이는, 주인도덕은 '도덕적' 과 '비도덕적'을 '좋음gut(탁월함)'과 '나쁨(저열함)'으로 구분하는 반면, 노예도덕은 "선함"과 "악함"으로 구분한다는 거임. 노예도덕에서의 "선함"은 데카당스적 상태인 무욕함과 이웃에게 무조건적인 베푸는 것을 '자신은 저열한 것이 아니라 선한 것이다'라는 식으로 정당화한 결과임. 니체는 노예 도덕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데카당스의 정당화인 노예도덕"을 확실히 정당화하기 위해 세운 개념이, "형이상학적 이원론(플라톤)"에 기반한 "종교"였음. 이전에 "신"이란 주인도덕을 가진 민족들이 자신의 힘Macht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노예 도덕을 가진 사람들이 형이상학적 이원론과 신 개념을 가져다가 자기 도덕을 정당화하기 위해 쓴 것이란 거임. 이후 이런 태도가 그리스도교를 탄생시켰고 무욕함과 이웃 사랑의 원리, 생의 부정과 피안으로의 도피 등을 "교리"로 하는 그리스도교가 서양 문명 전체를 지배함으로써 "데카당스의 시대"가 되었다는 거임.
여기서 니체의 철학의 제1원리인 관점주의가 드러나게 됨. 니체는 자신의 관점주의에 기초해서 이 데카당스의 시대, 즉 데카당스 도덕과 데카당스 예술과 데카당스 철학(플라톤 철학, 칸트 철학 등)에서 벗어나 다시 피안을 긍정하는 것이 아닌 현생(육체적 삶)을 긍정하고 디오니소스적-아폴론적 예술(르네상스적 예술)로 복귀해 건강한 문명으로 돌아가는 것이 니체 철학의 제1과제로 설정되고 그 과제가 그의  "모든 가치의 전도"에서 수행됨. 모든 가치의 전도 작업은 제 4권으로 기획됐지만 제 1권인 『안티크리스트』 만이 완성됨. 그러나 니체 자신은 이 한 권만으로도 모든 가치의 전도가 완성되었다고 보았음. 니체의 이러한 생각은 데카당스의 기초를 그리스도교로 보는 니체의 생각이 잘 드러난다고 볼 수 있음.
즉 니체는 "르네상스적 문명"으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라, "르네상스적 문명의 태도" 즉 "디오니소스적 문명"으로 돌아가자는 거임.
또한 니체의 "신은 죽었다got ist töt"라는 선언은 "신이 불완정하다" 등의 의미가 아니라, "모든 가치의 전도를 통한 데카당스 가치의 파괴, 그리고 그를 통한 건강한 문명으로의 이행"을 의미하는 것임.
미학에서도 니체는 "그리스인이 쓰던 걸 그대로 만든다"가 아니라, "그리스적 예술"으로의 복귀, 즉 데카당스적 예술의 파괴를 말하는 거임.
다시 말해, 목적은 문명의 역행이 아니라 옛 건강한 문명의 태도를 기반으로 한 건강한 문명으로의 이행/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