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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스트라빈스키와 니진스키의 「봄의 제전」부터 1929년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거쳐 나치의 집권까지.


이 책은 대전쟁을 겪은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대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청년들의 화두는 '전복'이었다.


프로테스탄티즘에서 유래한 부르주아 도덕관, 산업-기술 사회의 진부한 생활양식이 바로 그 전복의 대상이었다.


예술가들은 아방가르드로서 이를 주도했다.


「봄의 제전」은 원시적인 음향과 우아함을 버린 아이 같은 춤 동작으로 그러한 전복을 시도한 하나의 사례이다.


대전쟁은 이를 총체적으로 실현 시킬 기회로 여겨졌고 결과적으로 확실히 그러했다.


병사들은 자신의 신념에 의거하여 전선을 지켰지만 도덕적으로 마비되었으며,


전통적으로 열을 맞춰 진군하는 보병들 위에는 비행기가 날아다녔다.


이러한 모순이 대전쟁 내내 줄곧 보이던 풍경이었다.


그 기이함 때문에 전후 아무도 병사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들은 철저히 외면 받았다.


따라서 병사들은 함구했고 자식들은 아버지의 경험을 몰랐다.


그러나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반전을 가져왔다.


그 책이 전세계에서 단기간에 100만 부 이상 팔리면서 대전쟁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고 병사들도 각자 입을 열기 시작했다.


봇물처럼 터져나온 논의는 사실 절규와 자기 연민이었다. 특히 독일이 그러했다.


얻은 것이라고는 훈장밖에 없는 독일인들은 패전으로 인한 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영국과 프랑스라는 '구체제'에 맞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고 했던 그들의 꿈은 난데없이 끝나버린 것으로 인식됐다.


나치는 그 국민 감정을 이용했고 마침내 독일은 거대하나 아무런 내용도 없는 상징이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다.


나치의 고대 게르만 문화 숭배, 인종주의 등 여러 사상과 이벤트는 그저 사람을 흥분시키고 도취시키는 동시에 온갖 환멸은 저 다른 곳으로 추방시키기 위한 행위였다.


나치에 따르면 독일은 그 자체로 예술이 되어야 했다. 나치의 표어 중 하나는 "독일인은 매일 아름다워질 것이다"였다.


토마스 만이 나치를 '호고주의(好古主義)의 폭발'로 이해한 것과 달리, 그들은 기술주의에도 매료된 것으로 보인다.


라디오와 영화를 통한 선전, 첨단 병기, '효율적인' 독가스 처형소 등이 이를 받침한다.


이를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의고주의적 기술주의?


나치의 기괴하고 모순으로 뒤덮인 사고 구조는 그 최후에도 나타난다.


괴벨스의 아내, 마그다는 지하 벙커에서 자식들에게 독약을 먹인 다음 자살하기 직전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하랄트 크반트에게 이렇게 마지막 작별 편지를 썼다.


"우리의 훌륭한 구상은 점차 사그라지고 있고 그와 더불어 내가 인생에서 알아온 아름답고 훌륭하고 고귀하고 좋은 모든 것도 사라져가고 있단다. 지도자와 국가사회주의 뒤에 등장할 세상은 살아갈 가치가 없는 세상이야. 그래서 난 아이들을 이곳으로 데려왔단다. 우리 뒤에 올 세상을 살아가기에 그 애들은 너무 착해. (...) 사랑하는 하랄트, 난 너에게 인생이 내게 가르쳐준 가장 귀한 것을 줬단다. 바로 진실하라는 것이야. 너 자신에게. 인류에게. 조국에게. 모든 면에게 진실하렴."


본 책의 저자는 이에 대해 "키치, 가치 전환, 삶 속의 죽음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계속됐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