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가다 사우디 대사관에서 꾸란얻는 글들 올라와서 써봄
1-1.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금 다르다'는 거다.
정확히 말하면 기독교에서 성경이 차지하는 위상과
이슬람에서 꾸란이 차지하는 위상은 차이가 있음.
이슬람에서 꾸란의 위치는 기독교의 성경보단 오히려 예수와 훨씬 비슷함.
기독교 신앙에서 예수라는 존재는 요한복음 1장에서 나오듯이
과거 구약성경의 엘리야같은 예언자의 지위를 넘어서
"태초부터 계신 말씀[로고스]" 즉, 육신을 입고 온 하나님 그 자체로 받아들여짐. (성육신)
그러므로 예수는 위대하긴 하지만 하나님은 아니고 피조물이란 주장은
이단으로 정죄되고 정통 신앙에서 배제됨.
대표적으로 니케아 공의회때 정죄당한 아리우스파가 있음
"...또는 하느님의 아들은 창조되었으며, 변할 수 있으며,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편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에서 파문한다." (니케아 신경)
1-2. 이슬람 신앙에서는 반대로 무함마드는 꾸란을 전달한 인간 예언자일 뿐이고
'꾸란'이 기독교의 예수 포지션을 차지함.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바스조 시대에 있었던 '꾸란의 창조성' 논쟁이 있음.
당시에 무타질라파라는 신학파 집단이 하나님의 유일성을 강조하면서 "꾸란도 창조된 피조물"이라고 했는데
이슬람판 아리우스파라고 보면됨.
그때 칼리프였던 알 마문이 무타질라파를 지원하면서 한발리 같은 뒷날 정통파 율법학자들을 박해하다가
알 마문이 죽고 다음 칼리프때부터 상황이 뒤집히고
"꾸란은 피조물이 아니고, 태초부터 있었던 말씀이다'(uncreated)라는 입장이 순니파 사이에서 정통으로 인정 받게됨.
기독교에서 예수를 피조물이 아닌 로고스로 고백하는 것과 비슷함.
예수가 하나님의 성육신(incarnation)이라면, 꾸란은 하나님이 책의 형태로 내려온것(inlibration)으로 볼 수있음
2. 그런 의미에서 꾸란은 성경이랑 그 위상 자체가 다름.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기독교인들도
그 하나님 말씀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인간 저자'들이 작성한 텍스트라는 것 까진 부정하지 않음
그치만 꾸란 같은 경우엔 이슬람 신학 속에선 인간 저자의 필터도 거치지 않은 하나님 그 자체임.
무슬림 사이에선 무함마드는 문맹이었다는 전승이 있는데 이건 진짜 문맹이었다기 보단,
무함마드가 하나님의 말씀인 꾸란을 아무런 왜곡없이 전달했다는걸 보증하기 위한 장치라고 보기도 함.
마치 죄없는 인간을 낳기 위해서 마리아는 처녀여야 했던것과 일맥상통함.
많이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기독교에선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저술된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예수보다 중요하진 않음.
반대로 이슬람에서 무함마드는 매우 존경받는 인물이고, 큰 위상을 차지하지만, 꾸란보다 중요하진 않음.
2-1. 사람들이 흔히 상식으로 알고 있는 "꾸란은 번역 불가능하다"는 것도 이 관점에서 나옴.
기독교에서 신의 최종적 계시는 예수의 가르침, 행적, 부활로 이루어졌고
성경은 이를 전하는 매체이기 때문에, 예수를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성경의 번역은 바람직한 것이고, 최대한 많이 되어야함.
헬라어 히브리어 성경이나 한국어 성경이나 예수의 복음을 전달하는 매체라는 면에서 동일한 신학적 위상을 지님.
반대로 이슬람에서 최종적 계시는 무함마드라는 메신저를 도구로 삼아서 전해진 꾸란임.
꾸란의 내용뿐 아니라, 운율, 순서배치 등 텍스트 외적인 부분도 신성함을 담고 있기에
계시될 당시의 아랍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번역된 꾸란은 신성함이 배제된 그저 의미의 번역본일 뿐임.
아랍어 꾸란과 같은 신성한 위상은 보유할 수는 없단 것임.
이슬람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꾸란의 번역은 옛날부터 존재했지만
번역본은 어디까지나 이슬람의 이해를 돕기위한 도구로서의 위상만 지님.
대중신앙에선 꾸란을 신비한 효험을 지닌 부적으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번역본으론 이런 위상을 지닐 수 없다는 뜻임.
2-2. 그치만 이슬람에선 기독교처럼 정식으로 이단 정죄하는 공의회가 있던 것도 아니고,
역설적으로 꾸란 속에서 요한복음처럼 명확하게 꾸란은 "태초부터 계셨고, 피조물이 아니다"라고 규정하는 구절이 없어서
오늘날에도 꾸란도 결국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시선이 이슬람 내부에서도 많이 존재함.
아리우스파들 전부 파문시켜버린 기독교와는 다르다
이슬람의 공식적인 신앙 고백인 샤하다도
"하나님은 한분이시고,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다."까지만 고백하지
꾸란이 하나님이시다는 샤하다 속에 들어있지 않음
대표적으로 시아파는 꾸란 성립 과정에서 칼리프 우스만이 의도적으로
무함마드가 알리를 자기 후계자로 지명했다는 전승을 삭제했다고 보기도 함
하지만 그렇다고 꾸란에 대해 단순한 인간 창작물로 본다는 건 아니고
신의 계시로서 극도의 존중을 표하는건 순니랑 다르지 않음.
3. 꾸란은 '창조되지 않은 신의 말씀'이기에 그 위상은 절대적이고, 꾸란에 대한 비판은 상상할수 없으니까
이슬람이 현대에 여자들 히잡씌우는 보수꼴통이 된걸로 생각하기 쉬운데
아이러니하게도 현대 이슬람계에서 소위 '꾸란주의자'(Quranist)들은 역설적으로 상대적으로 진보 포지션에 있음.
왜냐하면 내가 아주 예전에 짧게 쓴 글에서(https://m.dcinside.com/board/reading/216752)
언급했던건데 꾸란 자체는 논어 원문마냥 맥락 설명 1도 없이 말씀만 툭툭 나오는
소위 'Text without context'라 해석하기가 극도로 어려움.
그래서 꾸란의 해석은 보통 초기 이슬람 학자들이 수집 정리한 무함마드의 언행록(하디스)에 의지해서 이루어지는데
권위의 최종원천은 꾸란에 있지만, 이슬람 율법과 전통의 상당부분이 하디스를 통해 형성되었음.
현재 최대 분파인 순니파의 '순니'(전통)가 이런 하디스의 권위에 따라 형성된 '꾸란의 해석전통'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임.
그 종교가 전통적으로 보유한 고유의 해석전통없이 무턱대고 경전 읽어나가면
그 종교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건 이슬람이나 기독교나 불교나 마찬가지임
이에 반해서 '꾸란주의자'들은 하디스 이런거 다 무시해버리고 꾸란만 집중하자는 입장이라
천년 넘게 자리잡은 이슬람의 전통과 율법들을 의심하고 일부는 배격하게됨.
그래서 무슬림 페미니스트 중에 이런 꾸란주의자들이 존재하고, 하디스의 권위를 존중하는 기존 율법학자들하고는 갈등을 빚게 되었음.
4. 흔히 아는 돼지고기 금지는 꾸란에 직접적으로 명시된 사항이니까
무슬림 되고 싶으면 걍 먹지 말자
동성애 지지하는 lgbt 무슬림도 돼지고긴 안먹고
일부 나일롱 무슬림들이 먹더라도 나중에 회개하면 되지라고 생각하고 먹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아님
5. 왜 재업하냐면 정성들여 썼는데
조회수 72에 추천수 1로 걍 묻혀서 추하게 재업함
삼위일체처럼 꾸란도 알라랑 동급취급받는건가
개추 - dc App
오... 텍스트의 혁명성을 강조하는 사사키 아타루도 쿠란을 중요하게 언급하더라 - dc App
신이 육화된 텍스트 간지난다.. - dc App
너무 재밋다. 더 써줘!
그저 개추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