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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명한 독자들은 왜 <좋은> 문학을 읽는가?
- 문학은 순전히 허구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좋은 문학 작품들은 고도로 복합적인 방식으로 사실, 감정, 상상, 정보 들을 조합하며, 이런 조합의 결과물은 현실 이상의 고밀도를 갖는다.
즉 단순한 정보 전달 수단으로서의 책들과 달리, <좋은> 문학은 사실과 허구를 조합하기 때문에 한 차원 더 복합적이며 더 강력한 생각의 도구이다.
- 서사로서의 <좋은> 문학은 '그럴듯함'에 대한 판단력을 강화한다. 어떤 이야기가 '그럴듯한가', '그럴듯하지 않은가'에 대한 판단력을 강화하는 것은 전쟁터와 같은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서 필수적인 운동이다.
- <좋은> 문학은 감각 정보와 자극에 대한 수용력과 감식력을 강화한다.
온갖 방식으로 감각을 자극하는 현대 세계를 제정신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딘 신경을 갖거나 매우 강화된 신경을 가져야 하는데, <좋은> 문학은 신경 강화와 단련을 위한 가장 강력한 도구이다.
- 문학의 가치를 묻는 것은 생각의 가치를 묻는 것과 같다. 세계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으며('무언가가 존재한다'라는 단순 명제조차 하나의 이야기이다) 인간은 이야기로 사유하기 때문이다.
전쟁터와 같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거나 현명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좋은> 문학의 고도로 발달된 서사 구조는 그대로 생각의 구조로 활용될 수 있다.
즉 문학의 서사 구조는 기본적으로 독자 자신과 그 주변의 친구, 동료, 적 등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 문학의 가치를 묻는 일은 근본적으로는 시의 가치를 묻는 것이다. <돈 키호테> 이후의 근대 산문은 근본적으로 시에 대해 2차적으로 복잡화된 체계이기 때문이다.
언어적 표현의 극치로서의 시에 대한 교양은 인간이 자기 존재를 강화하기 위해서 경주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이다.
왜냐하면 표현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은 주로 언어로 자기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즉 강력하고 견고하게 존재하고자 한다면 - 다시 말해 자기를 보다 강력하게 표현하고자 한다면 문학에 대한 교양이 필요하다.
단순한 정보 습득만으로는 표현력과 설득력을 강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문학은 삶의 방향을 보다 올바르게 설정할 수 있도록 해주는 나침반과 같은 도구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위에서 정신 단련의 도구로서의 문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러한 단련은, 보다 궁극적인 목적, 즉 궁극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오히려 사악한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악인들이 궁극적인 선에 대한 고민 없이 감각과 생각의 단련을 위한 도구로서 문학을 이용할 경우에, 그것은 악을 강화하고 악을 단련시키는 결과를 낳을 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조영웅전>의 홍칠공 노개처럼 "악을 원수같이 미워하는" 인물상은 선악이 복잡하게 뒤섞인 현대 사회에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좋은> 문학은 가장 복합적인 윤리적 판단 능력을 강화해줌으로써 정신적으로 불결한 것들로부터 청결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 이런 점에서는 <나쁜> 문학들 역시 나름대로의 가치들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나쁜> 문학들이야말로 <좋은> 문학에 대한 판단력을 강화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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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초이스로 검색하면 웬만한 건 나올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