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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오웰이 사회주의자였는데, 1948년 스탈린 통치에 회의감과 염증을 얻어 쓴것이라고 한다. 작풍이 염세적이고, 절망적이다. 왜 사회주의혁명이 권위주의로 역행할 수 밖에 없는가.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요점인데, 생산과 분배에서 정부의 개입이 적극적이라 정부의 권위도 커진다. 물질적인 생산수단 뿐만 아니라 관념적인 생산수단까지 정부에서 권위적으로 통제가 심하다. 이 책에서도 궁극적으로 정신까지 사회가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으로 끝난다. 겉으로만 드러나는 복종 뿐만 아니라 내심 깊은 속내의 반항심까지 뿌리 뽑아 통제하는 것으로 책이 끝난다.
책에서 중요한 메세지가 계급투쟁에 대한 내용이 있다. 상위 계급은 자신들의 계급을 보수하기 원하고, 아랫놈들은 치고 올라가 상위계급으로 진입하길 원하고, 상위계급은 그것을 방어한다. 중간계급도 안되고, 여유도 없는 자들은 먹고 사는 데 급급하여 가끔씩 중간계급이 만든 이데올로기에 현혹되어 혁명운동에 가담하는데, 또 중간계급이 상위계급으로 올라가는 데 그쳐 전과 같은 투쟁은 영원할 것으로 묘사한다. 그래도 계급투쟁은 영원하더라도 인지부조화,내로남불 등 사회모순이 심화되어 부패한 기득권은 물갈이 하는 게 사회진보에 나을 것 같다. 반권위주의적인 체제인 민주정에서도 그런 인간본능적으로 관성적인 움직임은 똑같다. 민주정 자본주의도 어떻게든 계급은 생겨나더라. 그리고 양극화는 심화되어 상위계급으로 진입할 구멍은 점차 좁아진다.
음모론적이지만 상위계급이 자기들 계급을 방어하려고, 일부러 진입구멍을 좁히는 행태가 없다고 단정하긴 힘들다. 거기에 중간계급이 불만 가지면 전복 움직임이 가세되고, 그런데 중간계급도 때에 따라 상위계급에 협조하기도 하며 일부러 근본적인 부조리한 문제를 은폐시키며 현 체제에 협조하기도 한다. 동아시아 과거제도 다른 문화권과 확연히 다른 세습제가 아니란 점에서 형평성에서도 혁신적이였다. 하지만 그것도 제도가 안착화 되면 온갖 권모술수와 꼼수로 특정가문이 권력의 중심을 독점하는 과두정적 모습을 보인다. 애초에 공권력이 주도한다는 점에서 한계이다. 애초에 기득권과 피기득권의 이권이 다르므로, 마냥 협력관계라 할 수 없고 권력이 다르므로 불평등 조약을 맺은것과 같다. 사회주의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개입이 적극적이고 중앙집권적인 형태를 띈다. 적당히 인력이 소비되고, 계급투쟁적인 반동적인 움직임을 차단하게 만든다. 유교세계관에서 인의예지가 순환논증에 기반하여 있듯이 공권력이 개입하면 순환논증적인 도덕관을 세뇌시킨다. 왜냐하면 근본을 따지는것을 더럽게 싫어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변화 그것은 곧 혁명과 연관된다. 따라서 공권력이 개입되면 깊숙하게 사고하지 못하도록 우민화를 피할수 없다고 볼수 잇다.
정치, 종교, 철학이 헤게모니를 잡았던것도 이데올로기적이며 윤리와 미학을 다루며 둘다 인간 삶의 고통에 대한 해소법을 다루기 때문이다. 반권위주의적인 민주정에서도 아이러니하고 모순적이게도 여론에 권위가 있다. 여론은 또 공권력이 개입된 교육으로 가치관의 형성에 영향을 받는다. 조지오웰도 공교육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를 낸적이 있었다. 그리고 1984에도 무산계급의 관심사는 맥주, 축구, 영화로 가득차 잇다고 묘사하였다. 내가 보기에도 대중문화는 스포츠, 대중가요, 연예계 등 너무 우상화가 심하다. 우상화는 권위가 있는 쪽을 한다. 그것도 겉만 휘황찬란하게 육감적인 쪽을 우상으로 채택한다. 곧 대중은 권력에 약하고 강자를 우상화 한다. 그런 여론을 뒤집을려면 기득권이 어지간하게 크고 누적된 실정을 저질러야한다. 전국민적인 굴욕적으로 자존심을 건들거나, 종교나 이데올로기적 문제를 심각하게 훼손해야할 것이다. 그 녀석들이 강자한테 붙는 성향이 있을수록 계급은 고착화된다. 그래서 어지간한 부패와 타락에도 덮고 넘어갈 것이다.
1984는 문학으로 묘사의 짜임새보다는 세계관 설정의 짜임새가 더 흥미로운 작품이다. 어떤 강력한 교훈이나 메세지가 담긴 작품이다. 권력이 나쁜짓해도 포장만 잘하면 넘어간다. 오히려 자기편이라는 이유로 바보들은 시비똥오줌도 분간 못하고 응원을 한다. 뿌리 깊은 진영논리. 자기편은 자기한테 나쁜 짓한다고 결코 믿지 않는다. 하지만 더 나쁜 것은 나쁜 짓을 포장하여 위선 떠는 경우이다. 하류층들은 진영논리를 스포츠 보듯이 대리만족을 한다. 소수 스타플레이어의 영광에 이입하듯. 소수 권력층의 영광에 이입하여 만족을 한다. 근데 못배워쳐먹은 스포츠 선수들 보면 팬서비스 개판이고, 호날두 같이 팬을 개좆으로 보는 경우 꽤 있다. 좀 영리한 권력층들은 그런거 티를 안내지만 진심이야 어떻든가 지들 위하는 척 보이는 게 중요하고, 빅브라더 처럼 사랑하게 세뇌를 시킨다. 아니 그 진절머리 나는 노예근성이 자발적으로 우상을 사랑한다고 보면 된다. 확실히 맹목적인 사랑이 판을 친다는 점에서 오늘날도 이 소설은 아직까지 문제의식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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