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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주의.



최근에 우연히 화제작 <드라이브 마이 카>를 관람했는데,



필자의 감상으로는, 이 영화는 체홉과 <바냐 삼촌>을 잘 모르는 관객들을 대상으로 겨누어 만들어진 영화인 듯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본질적으로 대중 영화이다)



<바냐 삼촌>을 잘 아는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다소 단조로울 것인데,



이 영화가 <바냐 삼촌>을 영화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은, 대체로 인스타그램 인용구와 같은 느낌으로 <바냐 삼촌>의 대사를 이야기와 장면에 맞춰 인용하는 식이다.



즉 <바냐 삼촌>은 소재로서 이용되고 있는 것이고, 영화의 줄거리 속에서 진지한 고찰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를테면 영화의 오디션 장면에서, 하나의 장면은 하나의 방식으로만 재현되는데,



<바냐 삼촌>이 영화 안에서 진정한 무게감을 가진 제재였다면, 감독은 오디션을 통해 한 장면을 최소한 한 번 이상 다른 해석으로 반복해서 보여주었을 것이다.



이밖에도 대체로 모든 것이 겉치레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 이를테면 등장인물들은 <바냐 삼촌>을 자신들에게 대단히 큰 존재감을 가진 무언가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이런 것이 바로 겉치레라는 것이다)



이 영화의 사유의 폐쇄성을 드러내주는 결점들 중 하나는 소냐인데,



소냐 역을 맡은 배우가 말을 못 해서 수화로 연기를 한다는 유치한 설정은 그냥 넘어간다고 쳐도,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소냐가 바냐를 수화로 위로해주는 장면은 제한적인 감상주의 위에 구축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소냐의 <독백>을 바냐에 대한 <위로>로 변형시키는 방식 속에서 소냐는 지극히 도구적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소냐는 자기의 이야기를 상실하고, 안아주며 위로해주는 기계 역할을 수행한다.



(영화 안에서 소냐 역의 배우 역은 사실 입체적인 인간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이 역할의 주된 기능은 '말을 못 하는 건 저에겐 평범한 일이에요' 등의 가소로운 대사를 발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에서 다소 불쾌감을 주는 겉치레와 상업적인 감상주의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성공 요인은,



1.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뛰어난 촬영 기술



2. 그럴듯한 분위기 연출



3. 뛰어난 배우 활용



4. 능숙한 대화



정도로 생각되는데,



사실 이 영화의 근본적인 정신 자체는 공허하고,



그러므로 필자에게는 이 영화가 일종의 퇴폐주의에 속하는 작품으로 생각되었다.